[Z인터뷰] '그것만이 내세상' 이병헌 "2018년은 무계획, 너무 달려왔다"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이병헌이 또 해냈다. 언제나 작품의 중심에서 뛰어난 연기로 극을 이끌어갔었던 이병헌이지만 '그것만의 내세상'에서의 위치는 사뭇 달랐다. 중심에 서 있지만 동생 '진태'(박정민 분)와 엄마(윤여정 분)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했다.
그렇기에 이병헌의 연기가 더 중요했다. 박정민이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인상 강한 여기를 펼칠 수 있게끔, 이병헌은 그 바탕을 마련한다. 현실적인 연기로 튀지 않고 담담하게, 하지만 웃음 포인트는 확실히 잡고 가는 노련한 연기의 절정체를 선보인다.
제니스뉴스와 이병헌이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분 좋은 웃음과 뜨거운 눈물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였던 만큼, 함께 나누는 대화의 온도 또한 겨울날 차가운 공기를 녹일 만큼 따뜻했다.
영화를 본 소감은?
처음엔 우려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깔끔하게 후반작업이 끝난 거 같다. 윤여정 선생님도, 정민이도 정말 많이 울었다. 전 그렇게 까진 아니었다. 하하. 하지만 분명 뭉클한 영화다. 의외였던 건 윤여정 선생님께서 워낙 하이 코미디를 하시는 분이라 웃음 소리를 많이 못 들었는데, 영화 보시면서 많이 웃으셨다. 또 후반부에는 휴지로 연신 눈물을 닦으셨다. “내 영화 보면서 울 줄 몰랐다”고 하셨다. 보통 배우들이 영화를 끝내고 시사를 볼 때 관객의 입장에서 보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번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신 것 같다.
예고편이 공개된 후 JK필름 스타일의 엄청난 신파가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담백한 결과물에 놀랐다.
꼭 신파라는 것으로 영화를 나눌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영화라는 장르가 시작된 이래 공식이라는 건 차곡차곡 만들어졌다. 흔히 말하는 신파 같은 뻔한 공식도 마찬가지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런 작품이 만들어질 거다. 액션 영화에서도 대개 정의가 이기고, 권선징악이 이뤄진다. 물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기본적인 공식을 지켜나간다. 어쩌면 영화는 모두 진부하다.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각 영화의 다른 점이다.
‘내부자들’ ‘마스터’ 같은 영화와 ‘싱글라이더’ ‘그것만이 내세상’의 연기톤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떤 연기가 더 수월한지?
앞서 말한 영화에서의 극단적인 캐릭터들은 상상에 의존하면서 연기를 해야한다. 비슷한 경험을 토대로 내 감정을 극대화 시켜야 한다면, 생활 연기는 제 생활, 또는 지인의 모습에서 가져올 수가 있다. 그래서 내 연기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촬영 분위기는 어땠는지?
영화의 분위기 만큼이나 따뜻하고, 즐겁게 지나간 것 같다. 현장은 아무래도 시나리오가 가진 정서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유독 웃음 코드가 많고, 그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영화였다. 스태프하고 배우들하고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조하는 엄마와 진태를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극을 이끌어 간다.
누구 하나가 끌고 민다는 생각은 안 했다. 저나 정민이나 윤여정 선생님이나, 한 이야기에 얽히고 설켜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오진태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기도 어려울 거고, 잘 해냈을 때와 못 해냈을 때의 차이가 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인 ‘진태’인데, 감독이 피아노신을 CG 없이 가기로 했다.
처음에 감독님이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입봉 감독의 겁 없는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보지 않았다는 사람인데,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캐릭터에 대한 연구할 시간이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차라리 피아노는 CG에 기대고, 역할을 잘 소화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과로 봤을 때 박정민 씨도, 한지민 씨도 정말 대단하다. 집념과 의지, 그리고 노력이 엄청났던 것 같다.
조하와 진태의 하모니가 중요한 영화였다.
그래서 현장 분위기가 중요했다. 두 캐릭터가 적대적으로 가야할 상황이 아닌 이상, 이런 성격의 영화는 두 사람이 평소에 잘 지내면 그 분위기가 작품에 배어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민 씨는 어떤 후배였나?
말이 별로 없다. 웃기만 한다. 재미있는 말을 하며 주도하는 사람이 하는가 하면, 그걸 받으면서 많이 웃는 편인 사람이 있다. 그럼 둘이 잘 맞는다. 정민이는 늘 조심스럽고 말이 없어보였다. 사실 많이 챙겨줬어야 했는데, 제가 제 연기 하느라고 그럴 여력이 없었다. 늘 제 걸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늘상 미안한 부분이다.
윤여정 선생님과는 어땠는지?
돌직구 화법을 구사하시지만 여린 부분도 있으신 분이다. 촬영장에서 “나 너 때문에 이 영화 결정했는데, 너가 책임져야해”라고 하셨다. 처음엔 농담으로 들었는데, 여러번 말씀하시니 나중엔 ‘진짜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다 제가 “다시 한 번 가면 안 될까요?”라고 하면, “암,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타려면 그렇게 해야지”라고 농담을 하셨다. 나중엔 선생님이 “내가 아까 대사를 틀렸나? 다시 해야하나?” 하시길래,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타시려고요?”라고 답해드렸다. 정말 존경스러운 선배님이다. 대본 숙지도 엄청나시고, 웬만하면 한 번 촬영으로 끝내신다. 순간 몰입도가 정말 대단하시다.
영화에서 많이 망가졌다. 빼놀 수 없는 막춤 이야기를 해보자.
정말 막춤이다. 연습도 안 했다. 다만 걱정했던 건 제가 싸이의 ‘I LUV IT’ 뮤직비디오에서 춤을 췄었다는 거였다. 만약 영화를 보시는 관객들이 조하의 춤에서 싸이 뮤직비디오를 연상하면 안 될 일이었다. 여튼 대사도 없는 신이라 열심히 춤을 췄다. 분위기도 즐거웠고, 덕분에 날것의 웃음이 나왔다. 윤여정 선생님도 많이 웃으셨다. 처음 보는 광경이셨을 거다.
검게 그을린 피부도 인상적이었다.
한 여름에 가만히 있어도 옷 모양으로 자국이 난다. 전단지를 돌리는 친구이니,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돼서 일부러 반팔 입고 다니면서 태웠다. 촬영 초반엔 자국이 선명했다. 나시티를 입었을 땐 확연히 보였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졌다. 그땐 분장의 힘을 빌렸다.
진태-수정과 게임하는 신도 너무 웃겼다. 게임은 하는 편인가?
한다. 다만 꾸준히 하지는 않았다. PC 게임은 안 하고 콘솔 게임을 한다. 몇 년에 한 번씩 꼽히는 것 같다. 전혀 생각 없다가도 누군가 하고 있을 때 같이 하다가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놈놈놈’ 촬영 직전에 일본에서 제가 주인공인 ‘로스트 플래닛’이라는 게임이 나온 적 있다. 아무래도 제가 주인공이니까 해봤다가 푹 빠진 적이 있다.
잘 나가던 전직 복싱 선수인데, 실제로 복싱하는 모습은 안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로 연습은 했는지?
권투 연습은 조금 했다. 국대 출신 무술감독을 소개해줘서 그 친구하고 권투 동작을 익혔다. 인천에 있는 도장을 가기도 했다. 복싱 체육관의 분위기를 보고 싶어서 섭외를 부탁했다. 사람들이 연습하는 모습들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관장님이 너무 의욕이 넘치셨다. “글러브 가져와 봐”하시고는, 셰도우 복싱을 보여주셨다. 너무 열정적으로 해주셔서 몸살 걸리셨을 거 같다.
‘그것만이 내세상’과 함께 2018년도 시작했다. 새해 계획이 있다면?
몇 년 동안 너무 달려왔다. 그래서 무계획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또 어떤 것이 생길지 모른다. 아직은 아무것도 생각이 없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