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현장] ‘네버 더 시너’가 던지는 화두,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종합)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국내 초연되는 ‘네버 더 시너’는 우리나라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사랑 받아온 뮤지컬 ‘쓰릴 미’와 같은 소재의 연극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연극 ‘네버 더 시너’는 우리 사회의 사형제도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연극 ‘네버 더 시너’의 프레스콜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변정주 연출을 비롯해 배우 박은석, 이율, 정욱진, 조상웅, 이형훈, 강승호, 윤상화, 이도엽, 이현철, 성도현, 윤성원, 이상경, 현석준이 참석했다.
‘네버 더 시너’는 1924년 시카고에서 실제로 벌어진 아동 유괴 및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목적과 이유가 없는 살인을 저지른 19세 부유한 청년 리차드 롭과 네이슨 레오폴드의 재판에서 변호사 클라렌스 대로우와 검사 로버트 크로우가 주고받았던 열 두 시간에 걸친 논쟁 기록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당시 많은 대중은 이 극악무도한 용의자들에게 사형을 요구한다. 하지만 노련한 인권변호사 대로우는 레오폴드와 롭의 교수형을 막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최종 판결은 사형이 아닌 종신형으로 결정됐다. 이후 이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뮤지컬 ‘쓰릴 미’도 동일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뮤지컬 ‘쓰릴 미’에선 네이슨 레오폴드를, 이번 작품에선 리차드 롭을 맡은 배우 정욱진은 두 작품의 차이점에 대해 “뮤지컬 ‘쓰릴 미’는 네이슨과 리차드의 심리게임 같은 느낌으로 많이 열려 있는 대본이었다. ‘네버 더 시너’에서는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제시 돼 있다. ’쓰릴 미’가 네이슨과 리차드, 둘의 사랑과 범죄를 저지르는 쾌락에 대한 이야기라면 ‘네버 더 시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인간이다 라는 이야길 하는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욱진의 말대로 ‘쓰릴 미’가 두 인물의 관계에 집중했다면 ‘네버 더 시너’는 두 사람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변호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변호사, 그들의 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하기를 요구하는 검사의 팽팽한 신경전이 돋보인다. 특히 재판과정에서 레오폴드와 롭의 죄를 인정하지만,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Hate the sin, never the sinner)”라는 변호사 대로우의 법정 변론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연출을 맡은 변정주는 이날 “정권이 바뀐 이 세상에서 우리 사회도 사형제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타이밍이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했다. 사형제도를 법률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한번쯤 고민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연출을 맡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변정주 연출은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인 두 인물과 거기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그 와중에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자. 크게 이 다섯 주체가 조직적으로 이뤄지면서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라며, “어떤 인물 하나의 입장에서 전하지는 않는다. 다섯 주체가 하나의 사건을 갖고 서로 다른 관점, 입장에서 관객과 소통한다”라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여론은 국내에서도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 또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로우 역을 맡은 배우 윤상화와 이도엽은 각각 “작품 안에서 대로우를 만났을 땐 벅차서 많이 부딪혔다. 내가 그만한 인물이 못되서 어떤 감정을 연기하고 표현하는 걸로 완성되지 않는단 생각이 든다. 인간 윤상화로서 많이 부딪히고 있는 역할이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말은 알겠는데 사실 솔직하게 지금 절반만 연기하고 있다. 나는 사형제도에 대해서 찬성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은 그 반대에 있던 사람이다. 앞으로 많은 공연을 올려야 하는데 그 시간 안에 대로우의 발뒤꿈치 정도나 알 수 있을까 싶다. 이 공연에서 중요한 건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자기만의 논리는 있겠지만 아직 나도 여행중이다. 나머지를 채워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대로우 역을 맡은 고민을 전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선 레오폴드와 롭 사건의 최종 결말을 그대로 옮겨놨다. 결말에 반대하는 입장도 분명히 존재할 터. 하지만 대로우 변호사의 명대사를 인용한 공연 제목처럼,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할지 한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극 ‘네버 더 시너’는 오는 4월 15일까지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한다.
사진=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