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흑기사’ 서지혜, “또 짝사랑? 다음 번엔 안할래요”
[제니스뉴스=이혜린 기자] 서지혜가 인생 캐릭터 샤론을 만나 주인공보다 더 돋보이는 악역으로 활약했다. 서지혜는 드라마 '흑기사' 속 샤론으로 분해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밉지 않았던 캐릭터 소화는 물론 샤론만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해 눈길을 끌었다.
서지혜가 분한 '흑기사' 속 샤론은 과거에 큰 죄를 지어 250년 동안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가는 악한 인물이다. 또한 샤론은 변함 없는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샤론양장점의 패션 디자이너로서 화려한 패션 감각을 뽐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시청자의 마음까지 설레게 했다.
또한 이번에 서지혜가 보여준 샤론은 지금껏 드라마 '질투의 화신', '펀치', '귀부인' 등에서 보여줬던 냉미녀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는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의 샤론을 연기하며 솔직한 모습 속에서 귀여운 매력을 이끌어 내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제니스뉴스와 서지혜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흑기사' 종영 인터뷰로 만났다.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와 달리 따뜻하고 밝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던 서지혜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Q. 드라마가 종영했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한 작품을 무사히 잘 끝내서 뿌듯해요. 샤론 캐릭터를 많이 사랑해 주셔서 행복하게 끝냈어요.
Q. 마지막회 노인 분장이 화제가 됐어요.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분장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재미있었어요. 한쪽 손만 해도 1시간 반이나 걸렸고, 머리 분장도 한시간 정도 걸렸어요.
원래부터 점층적으로 노인이 되는 설정이었어요. 새치가 생기고, 손, 그리고 전체 머리가 하얗게 되고, 죽기 전에 완전한 노인이 되는 거죠. 특히 하얀 머리로 분장할 땐 리얼해 보이려고 머리 앞부분에 신경 많이 썼어요.
Q. 노인이 된 자신을 본 기분은 어땠어요?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쫑파티 때 다 같이 마지막 회를 봤어요. 마지막 노인 분장은 CG로 처리했기 때문에 혹시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보지 말라는 말도 들었지만 꿋꿋이 마지막 회를 봤어요(웃음).
Q. 결국 샤론은 죽게 돼요. 죽음에 대해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샤론은 할 걸 다했어요. 고통스럽고 아픈 것보다는 참아내는 자세로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수호(김래원 분)와 모든 이들에게도 더 이상 여한이 없기 때문에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자세로 표현한다’고 감독님에게 이야기했어요. 마지막 회는 '살아남겠다'는 감정이 아니라 정리하는 형식의 연기였어요.
Q. 극중 샤론은 250년 동안 살아있는 인물인데,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해요.
‘흑기사’를 선택한 이유도 샤론의 독특한 캐릭터와 설정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250년 동안 살아 있는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상상도 안돼서 샤론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어려웠어요. 어떻게 표현할지, 연기할지 고민이 커서 감을 잡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극중 샤론은 250살이 돼도 철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시간이 멈춰 쭉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촬영 중간중간의 과거 신을 토대로 캐릭터를 잡아가기도 했어요.
Q. 샤론은 악역이지만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초반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했지만 샤론은 악행을 저지르고, 해라(신세경 분)를 괴롭혀요. 그런데 샤론이 안타깝고 불쌍한 느낌이 들었죠. 샤론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감정을 살려 연기했더니 시청자분들이 이해를 잘 해주신 것 같아요.
Q. 감독님이 샤론에 대해 요구했던 부분이 있나요?
감독님이 “샤론이 너무 무겁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너무 코믹적인 부분을 살리면 샤론의 악녀 캐릭터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Q. 극중 샤론은 문수호만 바라봐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저도 의문이었어요. 이렇게 예쁜데 유독 한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지 말이에요. 샤론을 이해해야 연기를 하니까 샤론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어요. ‘250년을 죽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런 부분을 다 털어놓았을 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라고 말이에요. 그런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첫사랑에 대해 집착한 것 같아요.
Q. 현실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배우인데, 극 중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샤론을 표현하며 상처를 받지는 않았나요?
섭섭할 때도 있었어요. 그리고 촬영하면서 샤론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죠.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니까요. 래원 오빠도 철벽 방어로 리액션이 없어서 오빠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번을 마지막으로 짝사랑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다음번엔 짝사랑 안 하고 싶어요(웃음).
Q. 샤론의 직업이었던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눈에 띄었어요.
샤론은 사랑에는 바보 같고 한없이 약하지만 패션이라는 분야에서는 달랐죠. 그런데 촬영할 때 일하는 척을 한 게 아니라 직접 미싱을 하기도 했어요. 심지어 자동이 아니라 발로 굴리는 수동이었죠. 끝 무렵에는 수동이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도 연기할 수 있었어요. 만약 전문적인 부분이 없었다면 마냥 미저리 같은 캐릭터였을 것 같아요(웃음).
Q. 샤론의 패션도 인기에요.
이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은 오피스룩처럼 단정한 옷을 많이 입었는데 이번엔 디자이너여서 조금 더 화려하고 카리스마 있는 느낌으로 의상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평상시에는 심플하게 입는 편이여서 마음껏 예쁜 옷을 입어서 좋았어요.
코디네이터가 1회부터 20회까지의 옷을 정리했는데 100여 벌 정도가 됐어요. 한 회당 7~8벌 정도의 옷을 입은 꼴이에요. 옷을 많이 입어서 정신이 더 없었나 봐요(웃음).
Q. 극중 백희 역을 맡았던 장미희 씨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장미희 선생님과는 전에 드라마 ‘귀부인’ 이후 두 번째 만남이어서 편했어요. 선생님도 독특한 캐릭터를 맡아서 신나셨고,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의견을 나누니까 훨씬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장미희 선생님은 정말 소녀 같아요. 너무 편하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극 중에서는 엄마 같기도, 언니 같기도, 친구 같기도 해요. 그런 느낌들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서로 등지는 신에서는 울컥하고 슬펐어요.
Q. 장미희 씨가 서지혜 씨의 목을 잡으며 위협하는 신이 있었어요. 촬영 분위기는 어땠나요?
굉장히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15년 동안 이런 신들을 해보지 않아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저희는 너무 신나서 오히려 “이렇게 더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기도 했어요.
Q. 승구 역을 맡았던 김설진 씨와는 어땠나요?
아무래도 설진 씨라고 하면 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제가 쓸쓸하게 와인잔을 들고 혼자 마시는 신이 있었는데, 그 심리를 승구의 춤으로 표현했었어요. 설진 씨가 뒤에서 추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고 있다가 단독으로 출 때 모습을 봤는데 눈물 날 뻔 했어요. ‘춤도 연기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고, 설진 씨의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이유인 것 같아요.
Q. 새로운 서지혜의 발견이 아닐까요?
그동안 차가운 이미지를 주로 보여드렸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표현하는 건 익숙했어요. 그런데 “내가 예뻐? 정해라가 예뻐?”라고 했던 부분처럼 새롭게 보여드리는 연기가 낯설게 느껴져서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주변에 “괜찮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많은 버전들을 준비해서 촬영했는데 방송을 봤을 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나중에는 코미디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Q. 배우는 드라마나 작품을 많이 본다고 하는데, 최근 봤던 작품 중에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드라마 ‘쌈 마이웨이’ 속의 최애라 역이 눈에 띄더라고요. 애교 부리는 건 잘 못하지만 알콩달콩한 느낌의 드라마에 밝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차갑고 딱딱한 모습을 주로 보여 드렸는데 앞으로는 망가지거나 풀어진 캐릭터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Q. 배우로서 갈증이 있나요?
물론 있죠. 그런데 이번에 샤론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한 작품을 했는데 4~5작품을 한 것 같아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어요. 갑자기 스릴러로 갔다가 코믹으로 갔다가 액션으로 가기도 했죠. 정신력과 몸은 힘들었지만 '흑기사'로 많은 장르를 경험해서 배우로서 한을 풀었어요.
Q. 1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했는데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거나 성장이 느껴지나요?
20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패기와 열정으로 달렸어요. 중간에 한 번 삐거덕 거릴 때도 있었고,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시기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1~2년 쉬었는데, 그때 연기만 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가 문득 “버티는 이가 승자다”라고 선배들이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고, “그래. 한 번 버텨보자”라고 20대 후반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30대에는 연기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좀 더 깊이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마음에 여유도 생겼죠. “왜 서브만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의 저는 캐릭터를 잘 소화는 게 목표예요. 마음을 놓다 보니까 보는 눈이 달라지고 저만의 깊이감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오히려 더 연기에 재미를 느껴요.
Q. 샤론 캐릭터가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요?
터닝포인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매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올해도 어떤 캐릭터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그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게 제 목표고 소원이에요.
Q.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는 주로 뭘하나요?
놀러 다니기도 하고 일생생활을 즐겨요.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최근에는 영어공부를 꾸준하게 했었어요. 작년에는 뷰티 프로그램 MC를 해서 시간이 바쁘게 흘러 갔지만 이번에는 요리를 배워서 음식을 하는 게 목표예요.
Q. 이상형은 있나요?
이상형이 없어졌어요. 거창한 이상형보다 마음 편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게 이제는 힘들어요(웃음). 편안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
Q. 지금이 결혼 적령기지 않을까요?
집에서는 이제 그런 이야기를 안해요. 30대 초반에는 하셨지만 지금은 오히려 포기하셨어요. 여동생이 먼저 결혼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간 가겠지만 연애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이미지 때문인지 의외로 대시가 없어요.
Q. 올해 예능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요?
예전에는 예능이 연기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연기와 작품에 대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 혼자 산다'도 도전해볼 생각이 있어요.
사진=HB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