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리의 1열중앙석] '로빈훗',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뭉클하고 벅찬 영웅담

2015-02-15     임유리 기자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다양한 소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로빈훗은 부자들을 약탈하여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의적이다.

하지만 올해 한국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로빈훗' 속 로빈훗의 모습은 그 것과는 조금 다르다. 유준상, 엄기준, 이건명의 화려한 트리플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은 뮤지컬 '로빈훗'은 영국의 적통 왕위 계승자인 필립 왕세자를 돕는 영웅담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이 영웅은 외롭다. 믿고 있던 친구이자 동료인 길버트에게 전쟁 중에 배신당해 리처드왕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전부 잃는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자 마리안까지 노팅엄의 영주가 된 길버트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쫓겨 숨어들어 간 셔우드 숲에서 도적들을 만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프랑스에서 셔우드 숲을 지나 왕궁으로 향하는 적통 왕위 계승자 필립 왕세자를 위해 싸우게 된다. 그 과정에 함께 했던 동료들을 하나 둘씩 잃게 되고, 권력에 눈이 먼 존 왕자와 길버트 일당에게 승리해 왕관을 되찾게 되지만 결국 그 끝에 영웅 로빈훗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로 로빈훗 역을 연기한 세 배우들은 이 작품을 하면서 엄청난 눈물을 흘렸노라고 고백한 바 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셔우드 숲에서 로빈훗과 도적들을 만나 진정한 지도자로 성장해가는 필립 왕세자 역은 슈퍼주니어(SUPER JUNIOR) 규현, 비스트(BEAST) 양요섭 그리고 박성환이 맡았다. 현역 아이돌이면서 뮤지컬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도 차근차근 쌓아나가고 있는 규현과 양요섭은 이번 작품에서도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양요섭은 특유의 귀여운 캐릭터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철부지 왕세자에서 한 나라의 왕의 재목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그 밖에도 길버트 역의 박진우, 조순창, 존 왕자 역의 서영주, 마리안 역의 서지영, 김아선, 그레고리 역의 홍경수, 조이 역의 김여진, 다나 등 탄탄한 조연들이 작품을 든든하게 받쳐주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왕위를 노리는 광기 어린 존 왕자를 연기하는 서영주는 자칫 어둡고 무거워질 수 있는 작품에 웃음을 불어넣는 한 축을 톡톡히 담당하며, 히스테릭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 시선을 끈다.

2005년 독일에서 초연된 뮤지컬 '로빈훗'은 '삼총사', '잭더리퍼',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이 이끄는 국내 제작진에 의해 재창작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영상을 적절히 활용한 무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셔우드 숲과 왕궁을 신비롭게 표현해냈고,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음악은 배우들의 힘 있는 가창력이 더해져 한층 더 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라 십여 명이 같이 움직이는 격렬한 액션신과 짜임새 있는 군무는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짧은 공연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담느라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부분들이 조금 아쉽지만, 단순히 발랄하고 즐겁고 통쾌한 영웅담이 아닌 이 시대의 현실마저 돌아보게 하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왕이 되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거든, 정치를 잘 아는 놈들에게 정치를 맡기고, 세상 이치를 잘 아는 놈들에게 법을 만들게 하고, 정직한 놈들에게 권력을 줘. 우리는 나라를 흔들고 권력을 갖고 싶은 게 아냐. 이거 하나면 돼.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 그 것만 빼앗지마. 우리가 이 숲에서 시작한 혁명은 이거야. 희망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이라는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로빈훗의 대사는, 이 작품에서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결국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뮤지컬 '로빈훗'은 오는 3월 29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사진=쇼홀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