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독전' 이해영 감독 ② "노력파 류준열? 성실한 천재"

2018-06-11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작은 카페, 오랜만에 만나는 이해영 감독이었다. 영화 '독전'이 호평과 함께 개봉 전부터 쾌조의 예매율을 기록했고, 이를 흥행으로 이어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광풍 속에 주춤했던 한국영화인지라, 더욱 반가운 흥행세였다. 

그럼에도 "오늘은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떡볶이 이야기를 하러 나왔다"고 인사를 건넸다. 올해 초 tvN '수요미식회 - 떡볶이 편'에서 타고난 언변을 바탕으로 섬세한 떡볶이 예찬론을 펼쳤던 이해영 감독이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자신만이 극히 애정한다는 서울 상일동의 떡볶이 맛집을 추천해줬다. 역시 영화가 잘 되니, 모든 대화에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인터뷰였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이해영 감독이 '독전'에 앞서 제일 최근에 메가폰을 잡은 건 2015년 '경성학교' 때의 일이다. 본인 말대로 '떡볶이 성애자'가 본업이고, 영화 감독이 '부업'인 모양새. 하지만 이제 다시 부업을 이름 앞에 내세웠다. 그리고 이젠 '영화 감독' 앞에 하나의 추임새를 더 붙여도 될 것 같다. 바로 ‘흥행’이라는 두 글자다.

사실 ‘독전’은 이해영 감독에 여러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안 쓰던 뇌근육을 쓰고 싶었다”라고 본인이 말할 만큼, ‘독전’은 “정말 이해영 감독이 만든 영화가 맞아?”라는 물음표를 낳는 영화였다. 글쓰기에 장기를 보이며, 섬세한 영화 연출을 선보였던 이해영 감독은 ‘독전’을 만나 장르 영화도 이정도 그려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거기에 본인 특유의 섬세한 내면 묘사를 더해 장르 영화의 품격을 높였다. 

‘신인 장르 영화 감독’ 이해영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나누었던 영화 ‘독전’에 대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 펼쳐본다. 혹자는 “’독전’은 이해영의 변신”이라고 말하겠으나, 알고 보면 “변신이 아닌 발전”이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1편에서 이어

‘독전’은 류준열이 왜 충무로의 대세인가를 느낄 수 있던 영화다. 기대주에서 기둥이 된 느낌이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해냈다. 사실 ‘독전’은 ‘락’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질 영화였다.
준열이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흔히 말하는 배우병, 예술병이 없다. 보통 그 병에 걸린 어린 배우들은 자기 감정 유지하려고 혼자 있거나, 구석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다. 촬영을 마쳐도 캐릭터에서 못 빠져 나와 하늘을 보며 멍하게 있는다. 류준열은 딱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현장에서 스태프 챙기고, 선배들에게 애교를 떤다. 정말 너무 대단했다.

재미있는 건, 전 류준열을 부단하게 공부해서 연기를 해내는 노력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엔 천재파 같다. 영화를 참 수월하게 찍어내며, 후반부의 어떤 신에 돌입하기 전 리허설을 하는데 준열이가 대사를 못 외웠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제가 볼 땐 아직 준열이가 스위치를 안 켰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단 슛을 들어갔더니 원 테이크로 해냈다. 너무 완벽해서 깜짝 놀랐다. 진짜 천재 같다. 성실한 천재다. 그 신을 찍고 나서 촬영감독에게 “준열이는 이병헌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 했다. 분명 될 거다. 그 시기가 내일이냐, 모레냐의 문제일 뿐이다.

조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영화다. 특히 농아 남매가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염전 폭발 신에서 이주영의 시크한 총질 연기가 참 좋았다.
많은 관객들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사실 얻어걸린 신이다. 주영이가 정말 운동신경이 0이다. 팔에 힘이 하나도 없다. 총 드는 것부터 연습 시켰을 정도다. 액션스쿨에서 연습하는 걸 보는데 ‘그루트’(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나무 캐릭터)보다 더 나무 같다. 너무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다.

덕분에 리허설을 엄청 오래 했다던데.
잘 안 되니까 여러 번 갔다. 현장에서도 진짜 구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결국 본 촬영은 한 번에 갔다. 주영이가 도착한 곳에 우연히도 빛이 떨어지는 바람에 표정까지 잘 살았다. 또 총이 불발탄이 나서 오랫동안 총을 들고 있을 수 있었다. 그 표정 한 번 잡아보자고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 됐었는데, 결국 그렇게 얻어걸렸다. 그랬더니 주영이가 명언을 남겼다. “될 놈은 어떻게든 되나봐요”라고.

진서연 씨도 강한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사실 처음엔 ‘너무 심하게 미친 여성 캐릭터라 배우까지 비호감으로 비춰지면 어쩌나’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 관객들이 많이 좋아해주셨다. 반대로 남성 관객들은 무서워하셨다. 의도대로 나온 것 같아서 참 기분 좋다. 참 좋은 배우인데 활동을 많이 안 했다. 앞으로 서연이에게 “‘독전’ 보고 연락했다”는 전화가 더 많이 갔으면 좋겠다.

‘독전’의 배우 이야기를 하면서, 김주혁 씨를 빼놓을 수 없다. 아마 이 영화를 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것 같다. 물론 겉으로야 “허허” 하고 웃고 말았겠지만.
진하림은 뜨거운 캐릭터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뜨거운 배우가 하면 재미없겠다. 다른 온도의 배우가 확 폭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비밀은 없다’ 때 김주혁 선배님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뜨거움을 발견했다. 그 길을 제가 닦아서 열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공조’가 먼저 그 길을 열었다.
‘공조’를 보고 정말 낙담했다. “거기서 다 하시면 어떡해요”라며 엄살도 많이 부렸다. 선배님은 정말 사무실에 마실 나오듯 나오셨다. 그리고 담배 태우면서 정말 많은 질문을 하셨다. 진하림의 눈빛, 눈동자, 걸음걸이까지 질문하셨다. 그런데 대답은 없다. 마치 스님이 선문답 하듯, 그렇게 묻고, 그냥 가셨다.

덕분에 진웅 선배가 조바심이 생겼다. 진하림의 페이커를 해야하는데, 주혁 선배가 어찌 연기하실 지 이야기를 안하니까. 그래서 “워크샵을 가자”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또 주혁 선배님은 안 가셨다. 그렇게 한 마디 언급을 안 했던 진하림의 연기를 첫 장면에서 그렇게 걸어들어오며 선보이셨다. 아직도 우리끼리 그때의 촬영을 전설처럼 회자한다.

‘이해영’ 하면 떠오르는 영화 색깔과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다른 뇌근육을 써보고 싶었다”는 바람을 이뤄낸 것이다. 나아가 흥행도 따라붙고 있다. 이쯤 되면 다음 영화가 어떤 스타일일지 궁금해진다.
차기작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독전’이 내 안에 너무 남아있다. 그래도 일단 두 가지 생각이 있다. ‘독전’을 작업하면서 너무 재미있었다. 안 해본 걸 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또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다 보니 이제야 감독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아가 다음에도 장르 영화를 한다면 보다 즐기면서 유연하게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규모가 큰 영화를 하면 부담도 있고, 중압감도 생긴다. 그래서 ‘독전’이 정장을 차려 입은 느낌이었다. 확실히 슬리퍼 신고 산책하는 느낌으로 나가는 현장은 아니었다.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안 쓰던 뇌근육을 써봤으니까, 언제든 쓸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는 전 신인 감독의 마음으로 ‘독전’을 장르 데뷔작이라 부른다. 그래서 아직 달성하지 못한 부분도 느껴진다. 그래서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분명 더 나아질 거다. 더 보강될 부분이 이젠 명확히 보인다. 다음 번엔 보다 넓어진 스펙트럼으로 연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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