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공작' 황정민 ① "난 반공교육 세대, 김정일 보자마자 위압감 甲"

2018-08-31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배우 중 하나인 황정민이 영화 ‘공작’으로 돌아왔다. 연기면 연기, 흥행이면 흥행,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챙겨가는 모두에게 보증수표 같은 배우다. 언제나 작품성에 있어 좋은 평가를 받은 윤종빈 감독과 함께 했다. 덕분에 ‘공작’은 개봉 전부터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대됐고, 흥행 역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황정민에게 ‘공작’은 쉬운 작품이 아니었다. 평소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황정민이다. 허나 이번만큼은 힘들었단다. 특히 김정일과 마주하는 연기에서는 “내 연기의 밑바닥을 드러냈다”며 혀를 찼다. 단지 감사했던 건 혼자만 보여준 건 아니라는 것. 영화 속 파트너 이성민과 함께 바닥을 쳤다. 어려움은 함께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베테랑 연기자가 바닥을 친 이유가 과연 연기력이 나빠서일까? 아니다. 그만큼 어려운 작품이 ‘공작’이었다.

제니스뉴스와 황정민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밑바닥과 마주했던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밝은 표정, 아니 홀가분해 보였다. ‘공작’ 이후 초심을 되짚어 보게 됐고, 이어 셰익스피어 극본의 연극 ‘리차드 3세’로 관객과 마주하며 기운을 되찾았단다. 결국 모든 희노애락을 연기로 윤회하는 진정한 광대 황정민이었다.

마치 1인 2역을 연기한 기분일 것 같다. 흑금성과 박석영의 외모적 연출이 많이 달랐다.
처음부터 그런 작업을 거쳤다. 아마 실제 흑금성은 그러지 않았을 거다.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말도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말로 나눴다.

안경도 있다. 흑금성일 때만 안경을 쓴다.
안경 쓴 사람이 우리 영화에 정말 많이 등장한다. 윤종빈 감독님의 생각이셨던 것 같다. 사실 안경을 쓰면 연기하기 불편하다. 반사가 돼서 눈을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고집을 했던 건 바로 그런 부분이다. 눈이 잘 안 보이니 상대가 날 잘 파악하기 힘들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리고 참 민감했던 소재다.
제가 90년대를 살아왔다. 그것도 잘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일을 모르고 그 시기를 관통했다. 일반 관객들도 모르고 살아온 관객도 많을 것 같았다. 말 그대로 “헐 대박 사건”인 거다. 제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 감정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 이 일을 알리고 싶다는 게 가장 큰 생각이었다.

배우로서 책임감인걸까?
전 광대다. 관객에게 재미있는 걸 보여드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알려주고 싶다. 마찬가지로 분명한 책임감도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니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영화적인 요소를 찾아 재미있게 봐주실 부분을 찾으려고 했다.

‘흑금성’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어땠을까?
전 박석영이라는 인물의 신념이 굉장히 궁금했다. 어떤 신념과 사고를 가졌기에 가족을 뒤로 하고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할 수 있는 상황에 자신을 던질 수 있을까? 거기엔 국가에 대한 충성심 등 여러 감정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자기 일을 믿고 행했다. 하지만 신념이 있던 만큼, 그게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걸 느꼈을 때 자괴감이 더 심했을 거다. 그래서 그 신념이 궁금했던 거다.

그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거겠다.
보통 실화 바탕 영화를 할 때 전 이야기만 듣지 그 당사자를 보려고 하진 않는다. 우리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창조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면 그분의 프레임에 갇힐 수가 있다. 하지만 ‘공작’의 대본을 본 뒤에 그 분이 너무 궁금했다. 일반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고 살 사람 같았다. 보통 사람으로서 김정일과 만난다는 게 가당하기나 할까? 아마 저였으면 심장이 터져나갈 상황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도 궁금했다.
 
그리고 실제로 박채서 씨를 만났다.
촬영 들어가기 전 출소하셔서 함께 식사를 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질문도 많이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 눈을 보면 그 성향이 꽤 읽힌다. 그런데 그 눈을 읽을 수가 없었다. 정말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진짜 잘 안 듣는다. 벽 같은 느낌이랄까? 자기 이야기만 하는데, 그 말의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과연 내가 이 사람과 만난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흑금성은 결국 대북간첩이다.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영화니까 어쩔 수 없다. 실제와 다르기에 미화가 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을 거 같다. 박채서 선생님 조차도 영화를 굉장히 쉽게 생각하셨다. 영화 만드는 과정을 잘 모르시니 어쩔 수 없다. 정말 “우다당탕”하면 만들어지는 줄 아신다. 본인이 이야기하는 바로는 이미 ‘공작’은 ‘미션 임파서블’이 돼있어야 했다. 헬기가 막 날고, 탱크가 막 돌아다니는 그런 이야기를 저희에게 전해주셨다. 그런 모습은 또 어떤 면으로는 귀여우셨던 것 같다.

김정일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궁금했다고 했는데, 그 긴장과 위압은 영화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세트 공간이 주는 위압감도 엄청났다. 우리끼린 “촬영인데도 이렇게 벌벌 떨리면, 실제였다면 난 오줌 쌌겠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그 신에 대사도 정말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이었다. 그 사이에 그 신 촬영을 제대로 못하면 우리에게 화살이 날라오는 거였다. 그래서 준비도 탄탄하게 했다. 하지만 정말 주입식 교육이라는 게 무섭나 보다. 하하. 제가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다. “장군님 들어오십니다”라고 하니 정말 김정일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들어오는 거다. 대사를 씹거나 하진 않았는데, 정말 너무 너무 힘들게 했다.

그럼 모든 배우가 힘들어했단 이야기일까?
기주봉 선배님은 다른 의미로 힘들었다. 분장만 5시간을 했다. 아침 7시에 촬영이면 새벽 2시에 일어나서 분장을 하셨다. 연기 끝나면 주무시기 바빴다. 성민이 형은 나랑 똑같았다. 성민이 형하고 저하고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계속 틀렸다. “형 우리 왜 이러지?”라고 물으면, “정말 미치겠다”라고 답이 왔다. 그래도 잘 끝냈다. 뭔가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었다. 위압감도 심했고, 차렷 자세로 많은 대사를 해야 하니까 이게 또 어색했다. 제스처도 못하고, 눈도 못 처다 보고, 외운 대사만 하는데, 거기에 감정까지 얹어야 하니, 정말 힘들었다. 몸이 밧줄에 묶인 것 같았다.

주지훈 씨는?
우리 다음날이 지훈이 차례였는데, 우리끼리 “지훈인 내일 죽었다”라며 키득댔다. 그런데 얘가 너무 잘하는 거다. 단번에 OK를 받았다. 뒤에서 보면서 “헐, 대박”을 내뱉었다. 반공 교육을 덜 받아서 그런가 보다. 하하.

말 그대로 구강액션의 진수인 장면이었다.
우리가 말로는 구강액션을 내세웠는데, ‘과연 실제로 이게 가능할까?’ 싶었었다. 감독님의 주문은 “모든 신이 액션신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였다. 그게 참 말이 쉬운 거다. 하여 늘 물음표를 가지고 있었다. 긴장감이 넘치는 공기를 어찌 전달할까 고민이 많았다. 입으로는 참 1차원적인 대사를 던지고 있는데, 그 밑으로는 칼이 오가야 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 그만 하자!’라고 말할 정도로 바닥을 쳤다. 제가 쉽게 생각했던 것도 있다. 안일했던 거다. ‘평소 했던 방식대로 하면 되겠지’ 한 거다. 그 이후에 정말 긴장하고 연기했다. 학생시절 연극하듯이 한땀 한땀 호흡을 맞추며 촬영했던 것 같다.

▶ 2편에서 계속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