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알함브라' 박훈 ② "강한 비주얼? 망가지고 싶어요"
[제니스뉴스=이혜린 기자]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속 '차좀비'로 사랑받은 박훈. 극 중에선 아쉽게도 레벨업을 이루지 못했으나, 그가 선보인 연기 내공은 이미 만렙이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은 스페인 그라나다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참신한 소재가 더해져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극중 박훈은 IT 기업 뉴워드 대표로 '진우'(현빈 분)의 친구이자, 라이벌 '차형석'(박훈 분)을 연기하며 안방극장을 긴장 속으로 빠뜨렸다.
박훈은 매회 시청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극 초반 사망했고, 매회 NPC(게임 속 도우미 캐릭터)로 다시 살아나고 죽는 걸 반복했다. 하지만 그가 막연하게 죽는 모습만을 그린 건 아니다. 한 마디의 대사 없이 눈빛과 리액션만으로 분노, 슬픔 등의 감정을 표현해 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에 '차좀비', '사이버 좀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임팩트 있는 순간들을 완성했다.
제니스뉴스와 박훈이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알코브 호텔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종영 인터뷰로 만났다. 선이 굵고 강한 눈빛의 인상, 하지만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박훈은 부드러운 남자였다. 현장 비하인드부터 스태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까지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박훈과의 대화 시간을 이 자리에 전한다.
Q. 13년 차 베테랑 배우다. 지난 2007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로 데뷔했고, 2016년에는 '태양의 후예'로 안방극장에 데뷔했다. 주로 장르물에서 활약한 것 같다.
선이 굵은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주얼이 저런 사람이면 어울리겠다는 기대가 있어서 주로 그런 역할을 맡는 것 같다. 예전에는 주로 무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요즘엔 남성적인 이미지로 보는 이들이 많다. 나중에 잘 늙으면 백수 삼촌 같은 역할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알함브라'를 소화하며, 선배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는가?
기본적으로 모두 선배다. 이번 작품에서도 김용림 선생님, 김의성 선배님 등 많은 분들에게 배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스페인에서 촬영 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봤던 김용림 선생님 모습이었다. "대작을 연기하는 게 처음이고, 설레고, 떨린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날 이레 씨는 첫인사를 하면서 "너무 좋다"고 울기도 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숙소로 돌아와 반성을 많이 했다. '감히 나 따위가 이 작품을 단순히 다음 작품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정신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Q. 박훈 씨는 첫인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주목받는 자리를 부끄러워하는 편이다. 그래서 "차형석을 맡은 박훈입니다"라고 마무리했다. 하하.
Q. 무대에서 하는 연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는 일이 아닐까?
오히려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 객석이 잘 안 보인다. 상대 배우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하하.
Q. 안방극장 데뷔 2년 만에 주연 자리까지 오른 것 같다. 비결이 있을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제가 능력이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 동생들이 찾아와서 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드는 예가 있다. 바닷가에 빈 페트병을 던지는 걸 상상해보라고 한다. 물론 실제로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 하하. 뭍으로 밀려 나올 테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던지면 우연한 기회로 페트병이 물살에 휩쓸리고, 어딘가로 빨려 나가게 된다. 지금 저도 어디인지 모르는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깊은 바다로 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필요한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Q.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인기도 많아졌을 것 같다.
체감은 못하고 있다. 하하. 젊은 분들에게 화제가 되는 거 같은데, 사람이 많은 곳을 자주 가지 않는다. 집 바로 뒤에 산이 있는데, 그곳을 찾는 등산객들과 오가며 인사하는 정도다. 하하.
가끔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반갑다. 특히 제 작품을 나열하면서 역사를 기억해주신다. 정말 의미 있는 것 같다. 배우가 작품으로 기억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게 기분 좋다.
Q. 차기작으로 '해치'에서 활약할 예정이다. 어떤 역할인지 궁금하다.
악역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알함브라'와 같이 '해치'에서도 현실적인 인물을 맡았다. 그렇게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저잣거리의 왕이다. 때로는 적이고, 때로는 친구인 매력적인 인물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차형석도 악역은 아닌데, 유진우가 왜 선역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 잘생긴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선입견 같다. 하하.
Q. 앞으로 불리고 싶은 수식어가 있을까?
수식어보다 아직은 주어진 걸 해내야 하는 시기 같다. 아직 완성형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담금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칭찬도, 질책도 받은 후 시청자분들이 인정하는 시간이 되면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Q. 욕심나는 어떤 캐릭터가 있다면?
겉으로는 남성적인 모습이지만, 망가지는 코미디 장르도 계속하고 싶다. 재미있고, 연극 무대에서는 많이 했었다. 제가 여러 면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캐릭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올해의 소망이나 목표는?
계속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원래 하고자는 방향대로 집중해서 가려는 게 목표다. 그런 면에서는 데뷔작이 '태양의 후예'인 게 감사하다. 경험이 없으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서 모두가 관심을 갖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한 거였다. 하하. 많은 분들의 관심이 기분 좋지만, 길게 평가받기 위해 조급하지 말고 제 길을 꾸준히 가려고 한다. 마인트 컨트롤하면서 집중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사진=김신혜 포토그래퍼(스튜디오 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