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왕이 된 남자' 여진구 ① "중저음 목소리, 언젠가 넘어야 할 무기"

2019-03-14     이혜린 기자

[제니스뉴스=이혜린 기자] 배우 여진구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그동안 다양한 사극 작품에서 사랑받은 그에게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특별했다. 대학 진학으로도 풀리지 않았던 연기 갈증을 해소했을 뿐만 아니라 아역 배우라는 틀을 벗어던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어지러운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임금 ‘이헌’(여진구 분)이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닮은 광대 ‘하선’(여진구 분)을 궁에 들여놓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진구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첫 1인 2역에 도전했다.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임금과 광대 각각의 특성을 소름 돋게 살려 호평을 자아냈다.

여진구는 지난 2005년 영화 ‘새드 무비’로 데뷔해 15년 차에 접어든 배우다. 장르 구분 없이 수많은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다져왔으며, 특히 사극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드라마 ‘자명고’, ‘무사 백동수’, ‘해를 품은 달’, ‘대박’, 영화 ‘대립군’ 등을 통해 ‘여진구는 사극’, ‘왕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제니스뉴스와 여진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을 한 카페에서 ‘왕이 된 남자’ 종영 인터뷰로 만났다. 차분한 중저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똑바르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던 여진구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Q.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
오랜만에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기뻤다. 그러지 않았어도 '왕이 된 남자'는 저에게는 참 소중한 작품이다. 새로운 연기에 도전한다는 것도 컸고, 감독님의 방식으로 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 스스로 답답하거나 막막한 부분을 깰 수 있게 됐다. 배우 여진구, 인간 여진구에게 잊지 못할 작품이다. 연기 칭찬도, 작품도 사랑받아서 정말 행복했다. 

Q. 막막했던 건 어떤 부분일까?
그게 뭔지 몰라서 답답했다. 왜 그런지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학교도 진학했다. 하하. 그런데 그건 결국 대하는 방식의 차이였다. 감독님은 촬영할 때 모든 신을 리허설했다. 카메라도 맞췄지만, 배우들이 모이면 "한 번 해보세요"라고 했다. 저에게는 그게 컸다. 감독님은 어떤 말씀도 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어렵고 막막했는데, 그게 제 역할에 빠지게 하고 오롯이 제 역할을 견디게 만들었다. 막막할 때 의견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풀어내려고 고집을 부리는 게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연기적으로 성장을 느끼며 촬영했다.

Q. 여진구가 생각하는 고집은 뭘까?
예전에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선배들, 감독님의 말이 '인생의 경험이 많아서 맞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제가 원하는 걸 했을 때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약간의 차이가 연기할 때 확실하게 도움이 됐다. 그래서 스스로의 연기에 소름이 끼칠 때도 있었고, 감정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다. 이런 건 처음이어서 행복했다. 

Q. 어떤 장면에서 소름 끼쳤는지 궁금하다.
15회 엔딩에서 '이규'(김상경 분)가 죽을 때, 제 연기를 보면서 "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자랑 같지만, 정말 처음 겪어보는 순간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맞절신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 순간들도 행복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시청자로서 제 연기에 집중한 게 처음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Q. 기존 작품들은 모니터링하는 게 힘들었는지?
힘들었다. 제가 놓치고 간 것들이 보였다. 근데 이번에는 시청자 모드로 봤다. 드라마 자체를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이 훌륭하게 만들어주셔 제 연기를 하나의 작품을 보듯이 봤다.

Q. 1인 2역에 첫 도전했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지는 않았을까?
저는 다행히 그런 작업이 어렵진 않았다. 영화 '화이'를 촬영할 때 선배들이 "몰입하고, 역할에 빠져서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빠져서도 안 된다. 너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도 배우의 일 중 하나다"고 이야기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말투 같은 게 남아 있을지는 몰라도 '잘 끝냈다'는 느낌이 강했다. 

Q. 두 캐릭터가 동시에 나오는 장면에서는 상상만으로 연기해야 했겠다.
한 쪽 역할을 할 때 저를 대신하는 배우분들이 있어서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렵긴 어려웠다. 감도 안 서고, 제가 머릿속으로 계힉을 하면서도 이헌과 하선의 표정, 투 샷의 감이 안 잡혔다. 그게 너무 답답했는데, 방송을 보고 나서야 풀렸다. 

오히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면, 현장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했는데 제가 저를 못 믿고 머뭇했던 부분이다. 조금 더 확신을 가졌더라면 보여드렸던 두 사람보다 새로운 표현을 했을 거 같다.

Q. 이헌과 하선을 표현할 때 눈빛 연기가 돋보였다. 어떤 요소에 집중했을까? 
정말 감사한 말이다. 가장 신경 쓴 게 눈빛이었다. 두 인물을 가장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눈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른 말투, 행동, 걸음걸이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님, 조명 감독님이 고민을 많이 했다. 의상, 소품도 이헌과 하선에 차이를 두려고 많은 열정을 쏟아 주셔 더욱 잘 느껴진 거 같다. 

Q. 이세영과의 호흡은 어땠는가?
세영 씨는 성실하면서도 항상 자신을 의심한다. 그래서 뭐든지 정리를 하는 스타일이다. 까먹을 때도 있는 제가 배워야 할 점이기도 했다.  

Q. 우연의 일치인지 자주 사극 장르를 소화했다. 
제가 골라서 하는 건 아니다. 운이 좋은 거 같고, 작품적으로 저에게 행운적인 장르 같다. 자주 한다고 해서 '앞으로는 깨야지'라는 생각은 아니다. 앞으로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시도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뻔뻔해졌다. 하하. 

Q. 목소리가 영향력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제가 생각해도 목소리가 낮은 톤이어서 사극 톤에 어울리는 거 같다. 목소리를 컨트롤하느냐에 따라서 장르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장점이자 제가 앞으로 넘어야 하는 제 무기다.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자'는 생각도 있고, '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Q. 생각해 본 방법이 있다면?
이상한 목소리를 말하는 건 아니다. 하하. 이번에 장광 선배님이랑 마주치며, 많은 걸 배웠다. 목소리가 좋으신데, 무거운 역할을 할 때는 무게감이 느껴지다가도, 따뜻할 때는 너무 행복한 게 담겼다. 그걸 보면서 '나도 목소리만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 지르고 악에 받친 목소리는 잘 낼 자신 있는데, 따뜻하고 웃음 주는 목소리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