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리뷰] '안나 카레니나',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한 여자를 만나다(feat. 드레스)

2019-06-12     이혜린 기자

[제니스뉴스=이혜린 기자] 안나의 사랑은 겁 없이 뜨거운 불꽃으로 뛰어드는 한 마리의 불나방 같다. 그렇게 브론스키와의 시간은 화려하게 시작돼 거침없이 흘러갔고, 차갑게 사그라들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지난 2016년 러시아의 대 문호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3대 소설 중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를 원작으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러시아에서 성공적인 공연 후 지난 2018년 국내 초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이번 재연에 관객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후반 러시아를 배경으로, 고위 관리 카레닌의 아내인 안나 카레니나가 젊은 백작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후 망가진 삶으로 기차에 몸을 던지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안나의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부터,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은 100년여 전에 쓰여졌으나, 오늘날의 삶의 의미까지도 다시 되새기게 한다. 

뮤지컬로 재해석한 '안나 카레니나'의 관람 시간은 약 2시간가량이다. 1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원작을 압축해 무대 위에 올렸다. 때문에 원작을 사랑한 관객이라면, 세세한 디테일을 담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스토리, 캐릭터의 상황 이해에는 문제없다. 오히려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 처음 '안나 카레니나'를 마주한 관객이라면, 더욱 쉽게 안나와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극중 안나는 카레닌의 아내이자, 귀부인으로 사교계와 가정생활, 어린 아들만이 전부인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 스티바 부부의 다툼을 중재하기 위해 간 모스크바에서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새로운 사랑과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브론스키를 향한 집착과 사교계에서의 몰락으로 후회와 절망 속에 비극을 맞이한다.

이에 이번 시즌 합류한 김소현의 활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소현의 안나는 카레닌과 브론스키와의 관계, 아들에 대한 사랑, 사회적 모욕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순간들을 노래한다. 특히 그동안 '명성황후', '엘리자벳' 등에서 보여온 여성스러운 이미지와는 결이 달라 안나를 표현하는 김소현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때문에 운명적인 사랑, 아들에 대한 미안함, 절망의 감정을 흔들림 없는 넘버와 연기로 쏟아내는 김소현의 안나에는 노력의 흔적이 가득 묻어난다.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놨다. 이를 위해 무대 뒤편에 LED 스크린, 4개의 이동식 타워에 장착된 8개의 패널이 쓰였다. 눈 내리는 러시아의 모습부터 중요한 배경이 되는 기차역, 경마장, 사교계의 화려한 파티장까지 마치 영화같은 리얼하고 빠른 무대 연출로 관객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다양한 요소를 접목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무대를 빙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스케이트신, 발레, 조명이 어우러져 러시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 가수 패티로 분한 강혜정의 아리아는 객석에 소름 돋는 전율을 일으킨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안나의 드레스다. 극중 안나의 드레스는 시대적 이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인물과의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 예를 들어 안나가 카레린의 아내일 때는 검은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지만,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면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 안나는 누군가와의 관계예 엮이지 않고, 홀로 기차에 몸을 던지며 새빨간 드레스로 의상을 변경한다. 고혹적인 겉모습과는 상반되게, 비극적인 상황에 앞선 불안한 안나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유럽 문화에서 철길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안나의 사랑,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안나 카레니나'를 추천한다. 

한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오는 7월 14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