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진범' 유선 "걸크러시 이미지? 실제로는 여린 편이에요"
[제니스뉴스=이혜린 기자] "'스릴러 퀸' 수식어요? 한 장르에서 인정받은 것 같아요"
배우 유선이 영화 '진범'으로 다시 한번 '스릴러 퀸'의 입지를 다졌다. '진범'은 피해자의 남편 영훈(송새벽 분)과 용의자의 아내 다연(유선 분)이 마지막 공판을 앞두고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한 공조를 펼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의심을 숨긴 채 함께 그날 밤의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극중 유선은 깊이 있는 감정신, 폭발적인 에너지로 인물 간의 텐션을 끌어올린다. 풀리지 않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 남편의 무죄 판결을 위해 눈물 흘리며 호소하는 모습 등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을 심도있게 녹여낸다. 이에 '진범'의 진짜 범인,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제니스뉴스와 유선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진범' 인터뷰로 만났다. 영화 '검은 집', '이끼', '돈 크라이 마미', '퇴마: 무녀굴' 등 다양한 스릴러 작품에서 활약해온 유선이다. 스릴러 퀸이라는 수식어에 "모든 퀸이면 좋은 거 같다"고 말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유선, 그와 나눈 대화를 이 자리에 전한다.
Q. '진범' 출연 계기가 궁금하다. 어떤 매력을 느꼈는가?
지난해 3월쯤 시나리오를 받았다. 가족끼리 아이 봄 방학을 맞아 여행 중이어서 휴대폰으로 보게 됐는데, 목이 아플 정도로 부동자세를 유지하면서 계속 봤다. 정말 단숨에 읽었다. 평소에 추리 소설을 워낙 많이 보니 다른 사람보다 추리는 앞서간다고 자부하는데도 결말을 파악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완성도가 높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송새벽 씨가 이미 캐스팅돼 있었기 때문에 호흡을 맞추고 싶은 기대도 있었다. 멋진 스릴러가 나올 거 같았다.
Q. 이번 작품은 '영훈의 집'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촬영은 4~5월에 바로 했고, 한 달 반 정도 찍었던 거 같다. 대전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했고, 공간이 워낙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90%를 실내에서 촬영했다. 인물들도 많이 등장하지 않다 보니 집중해서 몰아 찍었다.
Q.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적인 배경도 인상적이다.
'진범'은 오늘이라는 베이스를 놓고 과거를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오늘 시점은 몰아붙여서 촬영했고, 다른 시간들은 나눠 찍었다. 때문에 첫 신부터 감정신이었다. 이후에는 다른 시점의 감정신이 이어졌다. 쉽지 않았다. 하하.
Q. 감정에 몰입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연결하는 것 또한 어려웠을 것 같다.
모든 배우들이 시간의 재배치를 해야 했고, 각자의 감정에 따라 연기를 맞췄다. 또한 연기를 계속 강하게만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보시는 분들이 지치기 때문에 완급 조절이 필요했다.
Q. 송새벽의 주도 하에 MT를 다녀왔다고. 장르와는 상반되게 현장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나 보다.
MT를 가면서도, 가는 게 맞는 건지 우려하긴 했다. 하하.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는 게 연기 집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처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온전한 친밀감 속에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쌓이면 편안하다는 걸 느꼈다. 보통은 처음부터 친분을 만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친해지니 오히려 더 믿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고, 호흡도 편해졌다. 더욱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팀 워크로 작품을 만드는 느낌을 이번 작품에서 많이 알았다.
Q. 송새벽과 이번 작품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작품 초반에 제가 송새벽 씨가 묵고 있는 모텔을 찾아가서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새벽 씨는 저의 계속되는 애원 속에 등지고 가방을 싸다가 결국 던져버린다. 속으로 감정의 에너지를 쌓고 있던 거였다. 그러다가 저에게 확 소리를 지르는데, 그 눈빛이 주는 분노, 울분과 복잡한 감정이 확 느껴졌다. 주고 받는 그 에너지가 정말 좋았다. 그 신을 찍고 감독님은 '혼자 옥상에 올라가서 웃는 시간을 가졌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하. 저희도 그런 기분이었다.
Q. 다연은 남편의 무죄를 위해 자신을 던지며 나서는 인물이다.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저도 처음엔 남편을 위해서 굳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던지는 모습이 공감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본을 보다 보니 다연은 남편의 무죄, 석방이 아닌 아이의 아빠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모성으로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엔 모든 과정이 받아들여졌다. 다연은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났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는 인물이다. 때문에 내 아이만큼은 온전하게 자랄 수 있게 하고 싶은 모성애가 발동했을 거 같았다.
Q. 만약 실제로 '진범'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가?
저도 아이에게 행복한 가정을 주고 싶다. 가장 많이 웃었으면 좋겠고, 밖에서 느낀 힘듦은 안에서 힐링하길 바란다. 그래서 제 최고의 목표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거고, 이를 위해 부부, 아이와의 관계에 힘쓰고 있다. 예전에는 내 자아의 행복이 중요해서 일의 성취에 중점을 뒀다면, 결혼 후에는 가정이 첫 번째가 됐다. 그래서 '일에 가정이 치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메이크업한 상태에서 옷만 갈아입고 요리, 청소할 때도 있다. 가사를 스트레스도 여기고 푸는 순간 가정은 내 일보다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것에 대한 조율, 우선순위를 지키려고 한다.
Q. 두 가지 일을 조율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의지로 노력하는 것도 있다. 가정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과 직결된다. 그리고 러키하고 감사한 건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워킹맘이 혼자 일과 육아를 다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슈퍼우먼이 될 수는 없다. 빈자리를 채워주는 부모님과 남편이 있어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은 친정어머니가 도와주고, 나머지 2일은 저와 시간을 보낸다. 시부모님은 아이가 3살일 때까지 봐주셨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친정어머니가 봐주시지만, 워낙 가정적이고 헌신적인 분들이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Q. 지난 1999년 영화 '마요네즈'를 시작으로, 올해 데뷔 20년을 맞이했다. 감회가 어떤가?
제대로 따지면 올해 데뷔 18년이다. 신인 때 커리어를 늘리기 위해 프로필에 온갖 걸 썼는데, 사실 '마요네즈'에는 제가 2컷 나온다. 심지어 포커스 아웃돼서 나온다. 하하. 그래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는 '4인용 식탁'이 데뷔작이다.
Q.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느낌을 더 선호하나?
'어떤 작품을 인상 깊게 기억해주시느냐'에 따라서 저에 대한 이미지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 안에 두 가지면이 모두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확대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실제 제 내면은 생각보다 유약하고 여린 편이다. 상처도 많이 받고, 겁도 많다. 오히려 센 역할은 '되고 싶다'고 동경하는 편이다. 그래서 대리만족을 느낄 때도 있고, 더 많이 선호하기도 한다.
Q. 스크린에서는 '검은 집', '이끼', '돈 크라이 마미', '퇴마: 무녀굴', '진범'까지 주로 스릴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이유가 있을까?
장르의 겹침은 상관없는 것 같다. 이전에 했던 역할과 감정선, 롤이 부딪히면 안 했을 거다. 하지만 '장르가 겹칠지라도 작품 안에서의 역할이 다르다면 새로운 에너지와 느낌을 관객분들에게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 했던 작품과 '진범'의 다연 또한 부딪히지 않는 것 같다.
Q. 때문에 '스릴러 퀸'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거 같다. 이에 대한 유선의 생각이 궁금하다.
감사하다. 모든 퀸이면 좋은 거 같다. '스릴러 장르를 너무 많이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시 보면 결과도 좋았고 잘 된 거 같다. 스릴러 장르에서 인정받은 느낌이어서 내심 기분 좋다.
Q. 앞으로의 남은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드라마로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은 가을까지 촬영이 계속될 것 같다. 그리고 영화로는 '귀수'가 개봉한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관객분들을 찾아뵈려 한다. 매번 새롭고, 뭔가에 도전하는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