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리의 1열중앙석] ‘인방갤’, BJ들을 통해 보는 이 사회의 달콤씁쓸한 민낯

2019-08-26     임유리 기자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연극 ‘인방갤’의 힘은 배우들에게서 나오는 듯 하다. 억지스러운 서사 하나 없이 여러 명의 인터넷 방송 BJ들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것만으로 관객을 울고 웃기기 때문이다. 

작품명인 ‘인방갤’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존재하는 '인터넷 방송 갤러리'의 줄임말에서 따왔단다. 제목처럼 작품은 인터넷 방송 BJ들의 실상을 날 것 그대로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실제 인터넷 방송 BJ들을 무대 위로 옮겨놓은 듯한 사실적인 묘사와 표현들은 높은 수위를 넘나든다. 

인터넷 방송 ‘아마존TV’에서 8년 간 BJ로 활동해오며 팬들의 도를 넘는 성희롱과 요구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BJ 미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려 15년 동안이나 연구해왔다며 “문재인 XXXX!!!’를 외치는 애국보수 BJ 육만원, 현금으로 환전 가능한 ‘별사탕’을 쏴주는 ‘형님’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억대 연봉의 BJ 철호, 성인 인터넷 방송 ‘핑크TV’에서 넘어온 섹시 BJ 밀크, 엄마 외에는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트렌스젠더 BJ 프림 등 각양각색의 BJ들이 등장해 온라인 상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번갈아 무대에 등장해 한 명의 BJ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터넷 방송 시간을 오롯이 혼자서 이끌어가는 배우들을 보고 있자면,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캐릭터에 개성과 매력을 더해 넣는 것은 배우들 한 명 한 명의 역량이다.

BJ 육만원이 “문재인 XXXX!”를 외치거나 자신이 쓴 책을 광고하며 구입을 종용할때는 웃음이 끊이질 않다가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BJ를 시작했다는 트렌스젠더 BJ 프림의 사연과 그에게 팬을 만들어주기 위해 힘쓰는 BJ 철호, 그리고 온라인 저 너머에서 그런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 켠에 찡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반면 ‘별사탕’을 받기 위해 의상을 체인지하고, 선정적인 섹시댄스를 추고, 잠자는 딸과 아내를 깨우는 등 돈에 좌우되는 BJ들을 보고 있노라면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인방갤’은 배우 김선영의 극단 나베에서 네 번째로 내놓은 신작이다. 극단 나베는 ‘나누고 베푸는 극단’의 줄임말이다. 단순히 삶에 필요한 물질이 아닌 사랑, 희망, 꿈, 좌절, 분노, 철학 등 인생의 모든 감정을 작품을 통해 나누고 베푼다는 의미를 갖고 탄생했다. 배우 김선영이 연출은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연기 디렉터’가 배우들의 연기를 철저하게 디렉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 2014년 창단 공연이었던 ‘모럴 패밀리’를 시작으로, ‘두 형사 이야기’, ‘예술은 죽었다’에 이어 네 번째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김선영의 남편인 이승원 감독이 연출과 극작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