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현장] ‘오만과 편견’, 무대 위 단 두 명의 배우가 펼쳐내는 장편소설(종합)

2019-09-05     임유리 기자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연극 ‘오만과 편견’ 국내 초연이 지난달 27일 개막했다. 프리뷰 전 회차 매진으로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단 두 명의 배우가 무려 21개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프레스콜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소영 연출을 비롯해 배우 김지현, 정운선, 이동하, 윤나무, 이형훈이 참석했다. 

연극 ‘오만과 편견’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장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2인극으로 각색한 이 작품은 지난 2014년 9월 영국 솔즈베리 극장에서 초연을 올렸다. 영국 초연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국내 초연은 영국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연출 애비게일 앤더슨과 박소영 연출의 협업으로 진행됐다. 이에 한국 프로덕션만의 특징에 대해 박소영 연출은 “일단 번역 작업할때 1차 번역을 끝내고 배우들과 만나서 2주간 배우들의 입에 맞게 수정했다. 배우들이 많이 표현해야 되는 부분이어서 그 과정을 꽤 오래 거쳤다. 나레이션 할때 최대한 감정을 잘 담을 수 있게 2주 가량 정말 독서실처럼 같이 공부하면서 작업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박소영 연출은 “조명과 음악은 한국 프로덕션에 맞게 집중할 수 있는 부분에는 힘을 줘서 집중시켰다. 사실 영국 프로덕션 조명은 좀 더 라이트하다. 음악도 리지 혼자 다아시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을 때, 리지가 가드너 부부들과 같이 마차 타고 가는 장면 같은 경우엔 리지의 마음 상태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추가해서 작곡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미니멀한 세트에 대해서 박소영 연출은 “라이선스 작품이어서 큰 변화를 줄 순 없었다. 무대도 거의 동일하게 가지고 왔다. 처음 영국 연출과 얘기했을땐 필요한 부분만 미니멀하게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많은 얘기를 담고 있고, 대본 자체가 긴데 순수하게 배우들에게 집중되는 연극이었으면 좋겠다, 2인극으로 수많은 역할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무대가 꽉 차 있으면 오히려 배우들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대를 최대한 비운 상태로 최소한으로만 채우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사진을 보냈을때도 더 이상 추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대가 보이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두 배우에게 집중되는 무대였으면 좋겠다는 인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는 성별, 연령, 직업 등 각기 다른 21명의 개성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단 두 명의 배우가 그 모든 캐릭터를 소화한다. 당당하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리지)와 그녀의 철부지 여동생 리디아 등을 연기하는 A1 역은 김지현과 정운선, 상류층 신사이지만 오만한 다아시, 엘리자베스의 사촌 콜린스 등을 연기하는 A2 역은 이동하, 윤나무, 이형훈이 맡았다. 대사량이 상당한 것은 물론인데다 남자 배우가 여자 역할을 맡기도 하고, 여자 배우가 남자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의상 또한 치마에서 바지로 자유롭게 변화하면서 캐릭터의 이해를 돕는다. 

수많은 대사량에 대해 배우 이동하는 “원래 대사를 잘 못 외우는데 이렇게 많은 대사량을 경험한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2인극으로 84페이지의 분량을 둘이서 다 외우는데 엄청난 압박감이 있었다. 하루에 7,8시간은 대사를 외우는데만 집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뒤에 가서는 극의 전체적인 흐름도 따라오게 되고, 암기력이 향상되는 것도 느꼈다. 앞으로 다른 작품할 때도 이정도의 암기력이면 수월하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자 역할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배우 윤나무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저를 아는 분들은 저한테 상남자라고 얘길 많이 하신다. 제인이라는 캐릭터가 내 마음에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대사량도 있겠지만 캐릭터 하나하나를 최대한 거짓없이 표현하고 싶은데 35년 동안 그런 DNA 없이 살다가 그런걸 연구하고, 제인이란 캐릭터나 그밖의 많은 캐릭터 하나하나 이해해가면서 다시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런 과정이 너무나 흥미로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우 김지현은 1인 다역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보통 작품들의 멀티 개념과는 또 다르게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고전적 결이 있어서 그런지 메인 캐릭터가 있고, 나머지가 서브가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다 고르게 순간순간 끝까지 쭉 살고 있어야 했다.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가는 인물들이어서 호흡의 변화, 캐릭터를 순간순간 해야하는데 처음이어서 굉장히 재미있고 힘들었다. 분량이 너무 많아서 물리적으로도 힘들었는데 해내고 나니까 막상 관객과 만났을때 재미가 더 커졌다”라고 전했다. 

연극 ‘오만과 편견’에서 배우들은 1인 다역을 연기하는것뿐 아니라 중간중간 나레이션으로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소영 연출은 “영국 프로덕션의 연출, 배우들과 워크샵을 다녀왔다. 그때 느낀 건 제인 오스틴에 대한 사랑, 존경심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했을때 최대한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작품을 올린다는것에 굉장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라며, “(나레이션은) 그들이 가진 프라이드처럼 책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아닐까. 이 방대한 작품으로 2인극을 하기 위해서 선택한 연극적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박소영 연출은 “대신 우리 작품의 특징은 나레이션을 배우로서가 아닌 배역으로서 뱉는다는 점이다. 배우들에게도 전 장면과 다음 장면이 연결될 수 있게 최대한 감정을 담아서 속마음을 관객과 공유하는 형태로, 감정의 흐름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걸 강조하면서 진행했다”라고 덧붙였다. 

제인 오스틴의 장편소설을 유쾌하고 창의적인 2인극으로 풀어낸 연극 ‘오만과 편견’은 오는 10월 20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