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버티고’ 천우희 ② “망가짐 걱정했던 ‘멜로가 체질’ 이후, 연기에 자신감 붙었죠”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현장이 없었어요. 힘든 감정을 연기해도, 연기를 통해 해소가 되거나 연기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들이 표출돼서 그렇게 힘들다는 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찰나를 더 느끼고 싶고, 그래서 더 연기하고 싶은 거 같아요”
제니스뉴스와 천우희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영화 ‘버티고’ 인터뷰로 만났다.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 분)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천루 꼭대기에서 마주하게 되는 아찔한 고공 감성 영화다.
올해 천우희는 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으로 대중들의 앞에 섰다. 드라마를 시작으로 영화, 애니메이션 더빙, 영화 내레이션 등을 선보인 것에 이어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어온 유튜브를 통해 베일에 싸여 있던 카메라 바깥의 천우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처럼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천우희지만,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연기를 통해 선보이는 새로운 이미지라고 한다.
천우희가 처음으로 연기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친구와 함께 CA 활동을 하기 위해 들어간 연극반에서 접하게 된 연기에 흥미를 느끼고, 이후 대학에서 직접 영화 현장을 누비게 된 후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택한 것이다.
“연기하기 전까지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극반에 들어간 것도 연기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친구와 같이 CA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죠. 하하. 그랬는데 연기를 해보니까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심장이 터질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평온해지고요. 이런 순간들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배우를 진지하게 고려한 건 한참 후였어요.
대학에서도 연극을 전공했는데 그때는 적응하지 못했어요. 연기적으로 많은 것들을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영화 현장에 직접 나가게 되면서 ‘배우는 이런 모습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선배님들의 진지한 자세를 보며 배우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했죠. 그 생각이 든 건 영화 ‘써니’ 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마더’ 당시에도 김혜자 선생님을 보며 놀라운 순간을 많이 느껴서 그런 생각이 열렸고요”
천우희와 함께 작업한 감독과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천우희는 힘들어하는 법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에너지 넘치게 현장에 임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천우희는 스스로를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스타일’이라고 칭하며 “힘든지 모르고 그 순간을 버틴다”고 말했다. 모두가 힘든 현장에서 자신의 힘듦을 표현해 그 감정을 전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제가 가지고 있는 기질이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힘든 모습을 보이거나, 제가 힘들어하는 감정을 전가하고 싶지 않아요. 부정적인 감정이나 행동은 대개 금방 퍼지게 되잖아요. 현장은 다 같이 일을 하고, 누구나 힘든 상황이니까요. 물론 배우들은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하니까 더 힘들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최대한 내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기하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정신이 더 맑아지고 ‘할 수 있는 것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을 해서 덜 힘든 거 같아요”
강인한 정신력으로 현장을 지켜온 천우희는 “이제는 조금 더 어리광을 부려야겠다”며 웃었다.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이기 시작하자, 주변에서도 ‘천우희는 괜찮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대하게 됐다는 것이다. 짧은 휴식기를 지나온 그는 한결 가볍게 현장에 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돌이켜보면 책임감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타심 같은 복합적인 것들 덕에 잘 견뎌온 거 같아요. 제 천성이 그 순간에 몰입하면 다른 것들을 잘 못 보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앞으로는 엄살도 조금 더 떨고, 징징거리기도 하려고요. 하하. 제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버티니까, 상대도 저를 그렇게 대할 때가 있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정신적으로 피폐한 현장이 없었어요. 힘든 감정을 연기해도 해소가 되거나 연기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들이 표출돼서,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런 걸 표현하는 찰나를 더 느끼고 싶고, 그래서 더 연기하고 싶어요”
천우희가 자신을 향한 엄격한 잣대를 내려놓게 된 것은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무겁고, 연기력을 요하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그가 이전과는 달리 대중적이고 가벼운, 그래서 코믹하게 보이는 임진주를 만나게 된 것이다. ‘멜로가 체질’을 통해 천우희는 이전보다 더욱 자유로워지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얻으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저는 특히 ‘멜로가 체질’에서 진주를 만나며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지금까지는 연기하면서 갖춰지지 않거나, 어리숙하게 보이거나, 모자라게 느껴지는 것들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더욱 많이 집중하면서 괴로워하기도 했고요. ‘멜로가 체질’은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잖아요. 그 안에서 진주는 일상적인 캐릭터지만,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해주는 점에서는 약간의 판타지나 캐릭터적인 성향도 강해요. 특히 대사량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일반 사람이 그렇게 많이 말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하하.
진주를 연기하면서 현실성과 판타지성 사이의 균형감을 맞추는 게 중요했어요. 드라마 전체를 이야기하는 화자라서 너무 극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이어도 안 됐거든요. 그러면서 여러 시도를 했는데, 이걸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구나’, ‘이런 모습도 보여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자유로워졌어요. 처음에는 이만큼 망가지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어요. 코믹하고 가벼운 연기에 대중들이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겁도 났죠. 하지만 진주를 완성해 가면서 점점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멜로가 체질’ 이후에는 조금 더 마음을 열어놓고 연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나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라고 다독이는 방법을 찾았죠. 그래서 다음 작품을 어떻게 해낼지 저도 궁금해요”
‘멜로가 체질’은 그간 천우희가 해온 예술성 강한 작품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대중들과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새로운 팬들을 만나게 된 천우희는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이병헌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한 처음 ‘멜로가 체질’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한 번 거절했다는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
“‘멜로가 체질’ 시나리오를 작년에 받았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여력이 안 돼서 출연을 고사했어요. 그리고 올해 다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그때 정말 감사했죠. 거절한 상태로 출연 못 하고 끝났으면 배 아플 뻔했어요. 하하. 이런 걸 보면 작품마다 인연이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시나리오가 다시 제게 와서 연기하게 됐는데, 저 스스로도 이런 밝은 캐릭터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했어요.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장르라서요. 시청자들이 제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스럽기도 했고요. 하지만 탄탄한 시나리오와 좋은 캐릭터가 받쳐주니까 편하게 놀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멜로가 체질’처럼 편하게 놀 수 있는 시나리오나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 또 도전하고 싶어요. 많은 분들도 생각보다 괜찮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주셔서 내심 마음도 놓이고요”
쉴 새 없이 달려온 천우희는 ‘버티고’를 만나고, ‘멜로가 체질’을 거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됐다. 그 중 하나가 카메라 바깥의, 일상생활에서의 천우희를 조금씩 보여주는 일이다. 이전까지는 연기로서 대중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던 그는, 휴식기를 거치며 유튜브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연기하지 않는 천우희를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지만, 대중들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조금씩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전에는 쉴 때 무엇을 하는지 공개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라는 배우를 향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작품으로만 임하고, 작품으로만 설명하고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주변에서 제가 연기한다고 할 때 신기하기도 했고요. 지금도 제3자를 연기할 때에는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있지만, 저라는 사람을 보여줄 때는 부끄러워요. 예능 출연도 그렇고요. 그랬는데 제가 출연한 작품들이 너무 어려워서, 저라는 사람을 어렵고 무겁게만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동안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유튜브를 하는 게 정말 낯설었는데, 의외로 그런 제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친근하게 여기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으로만 보여주려고 하는 게 요즘 시대와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혼자 있거나, 배우가 아닌 천우희로 있을 때 저를 알아보면 당황할 때가 많아요. 하하. 배우로서는 그 애티튜드를 보이면 되니까 괜찮지만요. 이 직업에 더 익숙해지면 괜찮겠죠? 제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면 그런 시선을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 전 단역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라서요. 개인적인 생활이 조금씩 알려지니까 이전의 생활과 혼란이 올 때도 많아요”
휴식기가 무색할 정도로 천우희는 바쁜 2019년을 보내는 중이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시청자들을 만난 것에 이어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로 첫 애니메이션 더빙에 도전했고, 영화 ‘메기’에서 내레이션도 선보였다. 여기에 ‘멜로가 체질’ OST를 직접 부르기도 하는 등,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천우희는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물론 그중 가장 욕심내는 것은 연기를 통해 보이는 또 다른 천우희의 모습이다.
“연기적으로는 항상 도전정신이 많았는데, 그 외적으로는 사실 크지 않았어요. 작년에는 여러 제안이 들어왔을 때 순순히 따랐던 거 같아요. 낯설거나 원래 성격 같았으면 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서 해본 거죠. 유튜브도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연기 외적인 것들을 접해보려고 했던 건데, 역시나 재미있었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온다면 계속할 의향도 있고요.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건, 연기로서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