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82년생 김지영’ 공유 “성별 떠난 가족 이야기, 이슈에만 초점 두고 싶지 않아”

2019-10-23     마수연 기자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대중들에게 배우 공유는 잘생긴 남자 배우, 젠틀하고 다정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로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실제 그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연기한 캐릭터들도 그의 다정한 이미지, 잘생긴 얼굴을 십분 활용하며 놀라운 싱크로율을 선보였다.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많은 화제를 모았고, 그에 걸맞은 멋진 연기를 선보였던 공유가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지영의 남편인 대현으로 합류한 것이다. 젠더 이슈로 화제가 됐던 원작 속, 비중이 크지 않은 캐릭터이자 소위 말하는 ‘멋진 역할’도 아니었기에 누가 캐스팅될 것인지 많은 화제가 됐고, 공유의 캐스팅이 확정된 후에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그를 뒤따랐다.

여러 우려 속에서도 공유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지영의 남편 대현을 완성했다. 그의 강점인 잘생김과 멋짐을 내려놓고, 이전과는 다른 비교적 평범하고 현실적인 연기로 영화에 힘을 실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많이 울었다던 공유의 마음은 고스란히 그의 연기에 담겨 대현을 통해 전해진다.

3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스크린에 돌아온 공유를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선택한 이유부터 작품에 임했던 진심 어린 마음 등을 차분하게 담아낸 인터뷰 현장을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캐스팅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졌는데, 선택에 용기가 필요했을 거 같아요.
전 정말 부담이 없었어요. 소설이 어떤 사회적 이슈 때문에 많은 얘기가 오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잖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공감하고, 이 시나리오를 연기하고 싶고, 하고 싶은 작품이면 그냥 하는 거예요. 용기라는 단어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대외적인 시선에서 그렇게 바라보는 건 이해하지만, 그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 거 같아요. 제게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겠다는데 왜 용기가 필요한 일일까?’라는 거죠. 

영화를 처음 선택했을 때 관계자들과 지인들이 왜 이 작품을 하는지 많이 물어봤어요. 심지어 관계자가 아닌 제 친구들까지도 그랬죠. 그건 저라는 사람과 배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깔렸고, 우려와 노파심에 했던 말 같아요. 정작 저는 굉장히 단순하게 선택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럴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이 시나리오에 끌린 이유가 있다면요?
화제작이어서 하고 싶었다면 ‘79년생 공지철’을 했겠죠? 하하. 제가 관객으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성향이 있어요. 전 어떤 캐릭터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던져주는 것에 관심이 많은 관객인 거 같아요. 제가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의 성향이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객의 눈으로 봤을 때 이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지고자 하는 게 저를 건드리고, 제가 투영되는 것들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시나리오를 읽을 때 그런 부분을 건드리면 선택하게 돼요. 다음 작품인 ‘서복’도 그렇고요. 

Q. 공유 씨가 캐스팅되면서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누그러졌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 그건 자칫하면 독이 될 수도 있어요. 개봉 이후 저를 캐스팅한 일이 독이 됐다고 얘기하는 관객분도 분명히 계실 거예요. 호감으로 비친다면 제게는 다행인 일이죠. 그런 부분에 대해 지적을 받는다면 겸허히 들을 준비가 됐고, 배우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언론 시사가 끝나고 긴장이 조금 풀렸어요. 크게 독이 되진 않은 거 같아서요. 제가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그런 부분을 완화한다거나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능적 역할을 조금이라도 수행한 거 같고요. 

Q. 출연 결정 후 원작 소설을 읽었다고 들었어요. 감상이 궁금해요.
시나리오를 보고 본질적으로 제가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마냥 재미로 보지도 않았고, 어떠한 기준을 나누고 보지도 않았어요. 책 속에서 가족을 먼저 봤죠.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여자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가족과 사회 풍경에 대한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어서 단순히 성을 나눠서 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Q. 시나리오를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는데, 어떤 위로를 받았나요?
인간적인 위로였던 거 같아요. 지영의 “왜 상처를 주지 못해 애쓰냐”라는 대사가 특히 와 닿았어요. 단순히 성별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 어떤 관계에 놓인 제 역할 사이에서 개인이 함몰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로서, 그냥 인간으로서 생각했을 때 그런 것들이 어떤 기분인지 조금이나마 알아서 공감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은 보통 잊혀지기 쉽고, 혹은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쌓이다 보면 한 인간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특히 공감한 부분이 있다면요?
가족, 특히 집에 계신 엄마가 떠올랐고, 아버지와 누나가 떠오르면서 ‘난 어떻게 자랐는가’라는 생각이 났어요.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어머니에게도 여쭤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도 꽤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아들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에서도 지영이나 대현의 가족이 정말 화목해 보이잖아요. 모든 가정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게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요. 영화를 보면서 대현처럼 화목하게 잘 지내는 보편적인 가정의 모습이 더 짠하게 느껴졌어요. 저희 영화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표적을 잡고 하는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가족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물론 원작 소설이 많은 이슈가 됐고, 그런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저는 꼭 이슈가 된 부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게 바라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있어요.

Q. 극중 대현이 보이는 행동은 어떻게 생각하며 연기했나요?
대현의 선택이 쉽지 않은 일인 건 분명한 거 같아요. 저는 월급을 받으며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쪽 생리를 잘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찍으며 시나리오를 통해 접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남자 입장에서 선택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고, 현실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직 육아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월급을 받으면서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라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기준에서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고난과 역경이 따르겠지만 시도는 해봤을 거 같아요.

Q. 연기하면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대현은 자상한 사람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눈치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저는 대현의 기능적인 역할이 그렇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지나가면서 보이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대현의 그런 모습을 느끼길 바랐고요. 배우로서는 그걸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게 중요했어요.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제가 대현이라는 가정을 했을 때 이런 마음이 들어서였거든요. 어떤 분은 ‘대현이 너무 착하게 보이지 않느냐’고 질문하기도 했어요. 시사회 후 리뷰를 통해 그런 것들을 접했고, 촬영하면서도 그런 얘기를 했고요. 그건 저라는 배우를 통해 생긴 이미지, 그리고 저라는 배우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부분을 저 역시 의식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을 우려하면서 촬영했고, 영화가 나오고 나서도 감독님께 “괜찮을까요?”라고 질문했어요. 그러고 나서 감독님과 ‘대현이 지금보다 더 무심하고 덜 모범적인 남편이었다면, 아내가 아프고 난 후에 이 사람이 얼마나 변했을지’, ‘남편이 180도 갑자기 바뀐다면 대현의 현실성이 오히려 더 떨어지지 않을지’라는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대현이 모범적인 남편으로 보이고, 그 모습이 설령 저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격차가 너무 크면 오히려 이상할 거 같아서요.

Q. 실제 공유 씨가 자란 가정환경은 어땠나요?
이건 누나의 입장을 들어봐야 더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겠죠? 하하.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어머니께 전화해서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를 물어봤어요. 저희 아버지도 부산 분이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라지는 않았어요.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느꼈다는 게 지금과 다른 풍경에서 자란 부모님이 저를 그렇게 키워주신 점이었어요. 저는 비교적 평등하게 자란 편인 거 같아요. 영화를 찍으면서 저와 같은 세대를 살았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저보다 더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친구도 많고, 반대로 드물지만 굉장히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친구도 있어요.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서 이 영화를 접하는 기준과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김도영 감독님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감독님이 굉장히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막연하게 그렸던 이미지와 밸런스를 ‘왠지 이 분은 그렇게 영화를 만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그대로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유미 씨에게도 그런 마음을 느꼈고요. 두 분 모두 믿었는데, 그 믿음에 대한 선물을 받은 거 같았어요. 감독님은 배우를 하셨던 분이잖아요. 연극 무대에도 서보셨고요. 여러 경험을 하셨기 때문에 배우로도 스펙트럼이 크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평면적인 영상으로 접하고, 그 프레임 안에서 일어나는 가짜의 일이잖아요. 하지만 연기를 할 때는 이게 진짜이길 바라면서 하고요. 그래서 제가 그 공간 안에 섰을 때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된다고 생각해요. 김도영 감독님은 무대와 화면에서 연기를 해보셨던 분이라 그런지 배우들의 공간 안에 들어와서 항상 서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말하지 않아도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를 먼저 알아보세요. 저희는 카메라 앞에 혼자 서고 스태프들은 카메라 밖에서 바라보잖아요. 그 순간이 가장 두렵기도 하고 희열을 느끼는, 외로운 시간인데 감독님의 그런 시선이 있어서 굉장히 든든하고 외롭지 않게 느껴졌어요. 감독님이 배우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서, 쉽지 않은 영화고 감정적으로 톤 다운된 영화였지만 마음은 늘 가벼웠어요. 그건 전적으로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Q. 영화를 촬영하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결혼에 대한 환상은 진작 깨졌어요. 원래 없었어요. 하하. 결혼에 대한 판타지가 하나도 없어요. 제가 조금 비관적인 성향이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기도 했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기대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를 접했어요. 영화 때문에 바뀐 건 아니고, 30대 후반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잠정적으로 정리됐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를 만난 거예요. 더 비관적으로 바뀐 건 아니에요. 하지만 영화를 보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원래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는데,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걸로 바뀐 거죠.

Q. 이전 인터뷰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말했어요. 지금도 그런 강박이 있나요?
그때와는 생각이 조금 바뀐 거 같아요. 그때 강박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지금은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는 아닌 거 같아요. 항상 새롭고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내려놔야 더 좋은 것들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고요. 앞으로는 저 자신에게 최대한 솔직하고, 순리대로 가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