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그놈이다' 이유영 ① "영화 속 소름은 곧 재미, 안 무서울까 걱정했지만"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가난과 폭력 아래 삶의 희망을 버리고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아가는 여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민경’ 그리고 누드 모델이다. 미치광이 왕의 폭정 아래 그의 마음에 드는 천하의 명기가 되고자 하는 여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설중매’ 그리고 기생이다. 대형 교회의 딸로 태어나 신내림을 받아야할 운명에 놓인 여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시은’ 그리고 귀신을 보는 소녀다.
인물 소개만 보아도 참 사연이 많다. 이 세 인물은 한 명의 배우로 귀결된다. 바로 이유영이다. 이유영은 ‘봄’과 ‘간신’ 그리고 이번 ‘그놈이다’에서 연기를 펼치면서 충무로의 기대주로 확고한 자리를 구축했다. 지난해 밀라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고, 올해 부일영화상 신인 여자 연기상을 수상했으니 괜한 치켜세움은 아니다.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까페에서 이유영을 만났다. 귀신을 보는 소녀 ‘시은’이 맞나 싶을 화사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참석한 이유영. ‘그놈이다’와 ‘시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난 듯 이야기하는 모습에 이번 영화를 얼마나 즐겁게 찍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결코 즐거운 분위기의 영화는 아니 – ‘그놈이다’의 장르는 스릴러다 – 인데, 아마 이유영은 자신이 펼치는 연기의 모든 것이 즐거울 때인가 보다.
올해 벌써 두 번째 영화인데, 개봉을 기다리는 기분은 어떤가요?
‘간신’ 개봉 때는 조금 무서웠어요. 아무래도 캐릭터에 대한 자신이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설중매’라는 캐릭터가 실제 저하고는 거리가 먼 캐릭터라 연기를 하면서도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놈이다’는 너무 즐겁게 촬영했어요. 그래서 기대되고 설레면서도 많이 떨려요. 제가 중요한 역할을 연기했으니까요. 관객들이 어떤 평가를 해주실 지 많이 떨고 있는 상태예요.(웃음)
영화는 재미있게 봤나요?
완성된 작품은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어요. 제 촬영분은 후시 녹음 때 조금 보기는 했지만 시사를 기다리면서 참 많이 궁금했어요. 스릴러이고 공포적인 부분도 있다 보니 CG나 음향, 조명이 어떻게 들어갔을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사실 후시 녹음할 때 저 엄청 놀랐었어요. 제가 촬영했는데도 그렇게 무서울지 몰랐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 저 혼자 못 있겠어요”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사실 안 무서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는데 많이 무섭더라고요. 참 뿌듯했어요.
‘그놈이다’는 철저하게 ‘장우’의 시선을 쫓고 있기 때문에 ‘시은’이의 배경이 생략된 면이 있어요.
원래는 마을 사람들이 시은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쟤가 원래 목사집 딸이었는데 신내림을 받아야 해서 쫓겨났다”고 말해요. 영화에선 편집 당한 부분이죠. 감독님이 이야기해주신 시은이는 그렇게 집을 나와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다니다 외딴 시골마을에서 죽은 듯 살아가는 불쌍한 소녀였어요. 사실 전 영화에서 그 부분이 편집 당한 것도 못 느끼고 있었어요. 나중에 감독님이 “섭섭하지 않아?”라고 물어봐서야 “아 그 장면 어디 갔지?”했어요. 제가 눈치도 못 챌 만큼 편집이 잘 됐기에 더 영화적으로 완성된 그림이 나온 거 같아요.
그럼 목사님의 딸이어서 그렇게 성경책을 꼭 쥐고 다녔던 건가요?
맞아요. 그런 부분도 있고, 또 귀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영화 속에서 시은이가 버스 타고 많이 돌아다니는데, 사실 그 부분도 다 교회에 다녀오고 있는 거예요.
‘귀신을 본다’는 건 사실 실재하지 않는 캐릭터와 같아요. 어떻게 접근했을까요?
처음 감독님께 제가 미리 생각해 온 ‘시은’을 말씀 드렸더니 “내가 5년 동안 그린 시은이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라며 기겁을 하셨어요. 제가 감독님의 ‘시은’이를 완전 산산조각 낸 거죠. 서로 패닉에 빠졌어요. 전 저대로 재미있게 준비했는데 흥미를 잃었고, 감독님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싶었고요.
그 때 감독님이 ‘사이에서’를 보여줬어요.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사실 저보다 10살 정도 많은 그냥 언니 같은 사람인데 그런 상황에 놓였다는데 연민이 생겼어요. 그래서 ‘시은이를 이런 캐릭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한 캐릭터가 아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자로 만들고 싶었어요. 혹여 영화에서 시은이의 설명이 부족하더라도 관객들이 ‘쟨 왜 저럴까?’라는 궁금증이라도 들게 만들려고 했어요. 감독님의 의도도 ‘제 생각보다 예쁜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그래서 처음 생각했을 땐 누더기 옷만 입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러 옷을 입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장우’와 러브라인도 약간 엿보이긴 했어요.
그런 걸 느낀 기자분들이 많아서 너무 신기해요. 러브라인을 완전히 배제시키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여자와 남자가 느끼는 게 다르더라고요. 원래 시나리오 속에서 에로틱한 장면을 본의 아니게 훔쳐보게 되면서 장우가 시은이의 귀를 막아주는 씬이 있었어요. 그래서 ‘멜로 아닌 멜로가 조금은 들어있구나’라는 생각을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우리 영화에 그런 건 없다”고 못 박으시더라고요. “남자는 이걸 읽고 절대 그런 생각 안 한다 네가 여자라서 그런 거 같다”고 하셨어요.
멜로 욕심도 있었나 봐요.
‘그놈이다’ 말고요. 다른 작품에서는 있으면 좋죠. ‘그놈이다’에서는 멜로가 들어가면 ‘장우’의 감정선이 깨질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도 절대 배제시키려 한 거 같고, 저랑 주원 오빠도 같은 생각이었고요. 그래서 ‘저와 주원 오빠가 같이 할 때 멜로의 향기가 나게 하지 말아라’가 필수 요소이기도 했어요. 그냥 죽은 동생의 빈자리를 채우는 느낌으로 간 거죠.
가장 섬뜩했던 신은 ‘민약국’(유해진 분)이 “시은이니?” 하고 묻는 신이었어요.
저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가장 소름 끼쳤던 부분이었어요. 영화 안에서 ‘소름 끼친다’는 '재미있다'는 이야기니까 빨리 촬영하고 싶었을 정도예요. 그런데 다른 장면 촬영하는 거보다 어려웠어요. 연기하는 부분도 그랬고, 카메라의 동선도 그랬고요. 시나리오에서 느꼈던 부분을 영화에서 그대로 그려졌으면 좋겠으니까, 여러 부분을 고심했죠.
천도재 장면은 어땠어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인데.
전 그 곳에서 약간 이상한 기운을 느꼈어요. 실제로 그 장소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기가 강한 장소래요. 그래서 우리나라 천도재 같은 것들이 가장 많이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고요. 파도 치는 것도 괜히 다르게 느껴졌어요.
촬영할 때 실제 박수 무당들께서 촬영했는데 “굿을 하면 굿을 했지, 촬영하는 건 너무 힘들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스태프 중 한 분이 그 분들께 “우리 영화 어떻게 될 거 같아요?”라고 물어봤더니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잘 될 거 같다”고 하셨대요. 괜히 신뢰가 가는 부분이에요.
촬영 현장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영화가 워낙 스산해서 말이죠.
화기애애했어요.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요. 하지만 영화가 스릴러 장르다 보니 차분한 감은 있었어요. 그런데 연기 할 때만 그랬어요. 오히려 현장에 여배우가 없다 보니 절 잘 챙겨주셨어요.
말동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주원 오빠랑도 나름의 또래고, 혜영이도 있었고, 서현우 오빠도 있었고요. 넷이 모두 촬영하는 날이 있으면 창원 시내에서 놀기도 했어요. 주원 오빠가 또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춰요. 같이 팥빙수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거 같아요.
사진=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