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리의 1열중앙석] 연극 ‘방문’, 요리로 풀어낸 '소통'과 '이해'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두툼한 돼지고기에 간을 한 뒤에 오븐에 넣어 1시간 정도 굽는다. 돼지고기가 적당히 노릇하게 구워지는 동안 함께 먹을 파프리카, 버섯을 비롯한 야채들을 보기 좋게 손질한다. 구워진 돼지고기는 다시 오븐에 넣어 온도를 조금 낮추고 20분을 구우면 완성. 여기에 곁들일 소스를 만들고, 테이블 위에 준비된 요리들을 세팅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같이 만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요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이는 다름 아닌 오랜만에 방문한 집에서 일어나는 '소통'을 통한 '이해'의 과정을 그린 연극 ‘방문’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이다. 소통과 이해가 대체 요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지난 4일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된 연극 '방문'의 프레스콜에서 박정희 연출가는, "요리를 하나 만들고,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대접하고, 같이 먹는 과정이 화해의 과정이다. 방문한 둘째 아들, 큰아들이 서로서로 조금씩 조금씩, 요리가 시간이 걸리듯이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을 요리로 은유했다"고 설명했다.
연극 ‘방문’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기획하며 오랜 시간 미국에서 살던 둘째 아들 ‘이진영'이 목사인 형 ‘이진석’의 급한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집을 방문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배우들은 극이 공연되는 약 10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실제로 요리를 만든다. 요리가 완성되어 감에 따라 극장 안은 잘 익은 돼지고기의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맴돌고, 그 과정 속에서 작품은 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과 공을 들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근사한 요리처럼 이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진행 과정이 조금은 더디다. 동생은 돌아온 집에 왜 연로한 원로목사이신 아버지는 보이질 않는 건지, 자신을 위해 요리를 준비하고 커피를 준비하느라 부산한 형의 모습이 왜 뭔가 조금 이상하기만 한 건지, 형이 왜 자신과 상의도 없이 어머니의 묘지를 이장하여 납골당에 모시기로 한 건지, 그리고 왜 집을 팔려고 내놓은 건지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극이 거의 끝날 무렵에 가서야 전부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극을 보며 관객들이 가졌던 의문에 대한 설명이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찬찬히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유의 힌트는 극 전반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관객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2015 연극 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지원, 시범공연지원 선정작인 연극 ‘방문’은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몰입도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진석과 이진영의 아버지이자 원로목사 이주용 역에는 연극 '한강은 흐른다' '스카이라잇', 영화 '검은 사제들' 등 연극-영화-방송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배우 이호재, 이주용의 큰아들이자 은퇴한 목사 이진석 역에는 김정호, 이진석의 동생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을 기획하며 오랜 시간 미국에서 살던 이진영 역에는 강진휘가 함께 한다. 이 외에도 정재희 역에 김성미, 박혜원 역에 이서림, 김기호 역에 김승철, 황우식 역에 김기범이 출연해 극을 이끈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이 집(가정)이 조금 더 심했던 것 뿐이다. 여러분은 이 연극을 보시고 우린 저렇게 살지 말자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배우 이호재의 말처럼 ‘소통’의 부재로 ‘붕괴’된 가정은 우리의 가정일 수도,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의 가정일 수도 있다.
명절을 맞아 가족과 나,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식욕을 자극하는 요리는 덤이다. 오는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마케팅컴퍼니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