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랑가', 젊은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비움의 미학'(종합)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젊은 창작자들의 손에서 국내 창작 뮤지컬 수작이 탄생했다.
지난 1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블랙에서 뮤지컬 ‘아랑가’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개로 역의 강필석 윤형렬, 아랑 역의 최주리 김다혜, 도미 역의 이율 고상호, 도림 역의 이정열 김태한, 사한 역의 최석진 김현진, 도창 역의 박인혜 정지혜 등의 출연 배우와 김가람 작가, 이한밀 작곡가가 참석했다.
중앙대학교 동기인 김가람 작가와 이한밀 작곡가는 아시안 시어터 스쿨 페스티벌,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예그린 앙코르 쇼케이스와 같은 작창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상업 공연 이전에 약 2년 반이라는 시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시켰다.
이날 김가람 작가는 상업공연이 되면서 달라진 점에 대해 "가장 크게 바뀐 점이라고 하면 극장일 것 같다. 원형 극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시각화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가장 먼저, 그리고 깊게 이루어졌다"며 "스토리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웠던 것들을 배우들, 연출님, 음악팀과 함께 조율해가면서 조금씩 더 보강했다"고 밝혔다.
이한밀 작곡가는 "밴드가 3인조에서 4인조로 늘어났다는 점, 드라마가 수정되는 부분에 있어서 음악적으로 연결되는 브릿지, 트랜지션이 조금 보강됐다는 정도다"면서, 판소리와 뮤지컬 넘버의 접목에 대해서는 "우리 장단과 서양의 리듬, 우리 선율과 서양의 멜로디를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전했다.
뮤지컬 '아랑가'는 무엇보다 판소리와 뮤지컬 넘버를 극에 다양한 형태로 배치하여 서양과 동양 음악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 작품에 등장하는 판소리는 도창 역을 맡은 배우 박인혜가 모두 직접 작창했다.
이에 대해 박인혜는 "판소리 가사를 들여다보면 마치 어떤 장면에서는 서사가 쭉 진행되다가 그 한 장면을 위해서 카메라가 줌되면서 거길 아주 세세하고 섬세하게, 때로는 장황하게 열거를 해나간다. 그런 것이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관객들에게 상상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판소리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런 점을 살려서 무대 위에서 아주 화려한 퍼포먼스가 없어도 가능한 판소리 사설과 소리를 통해 사한이 죽음을 당하고, 활이 날아다니고 하는 것들을 만들었다"고 작창을 하는 데 있어서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서 설명했다.
뮤지컬 '아랑가'는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백제의 왕인 개로가 꿈 속 여인인 아랑의 환상에 사로잡혀 파멸로 향하는,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인생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 김가람 작가는 이날 "작품을 통해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그 무언가를 고증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다"라고 의도를 분명히 하면서도 작품의 모티브를 역사적 인물인 도림에게 얻었음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첩자 중 한 명인 도림과 도미설화를 결합시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라며, "개로라는 한 명의 인간, 그리고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어떻게 파멸해가는가에 관한 과정에 집중해서 작품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판소리가 병풍 하나, 고수의 북 하나, 창자의 부채 하나로 적벽대전도 풀어내고,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도 풀어냈다. 우리의 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랑가'도 채우기보다 비워냄으로써, 말하기보다는 그저 바라보는 눈빛으로 이 극을 풀어내고자 한다"는 김가람 작가의 말처럼, 뮤지컬 '아랑가'는 보기 드문 비움의 미학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판소리와 뮤지컬 넘버의 결합, 꽉 채우기보다는 비워내고 덜어낸 이 작품이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2년 반이라는 시간에 걸쳐 새로운 시도를 해낸 젊은 창작자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난 14일 개막한 뮤지컬 '아랑가'는 오는 4월 10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블랙에서 공연된다.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