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동주' 박정민 ② 그가 송몽규 앞에 부끄러운 이유

2016-02-16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지난 2011년 봄, 작은 영화였지만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 있었다. 바로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었다. 아무도 잘 될 거라 예상 못했지만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며 국내 감독들에겐 “윤성현 감독을 유학 보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더 키워줘야 한다는 속셈 아래 한국에서 얼른 없애버려야 한다는 농담이었다.

굳이 2011년의 ‘파수꾼’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박정민 때문이다. ‘파수꾼’은 작품도 좋았지만 배우들의 호연도 대단했다. 이제훈, 서준영, 그리고 박정민 세 주연 배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 배우가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모두 달랐다. 특히 박정민의 행보는 조금 더뎠다. 배우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시간, 하지만 지금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통해 그간 쌓아왔던 연기 내공을 오롯하게 뿜어내고 있다.

영화 ‘동주’의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을 최근 제니스뉴스가 만났다. 언론시사회 당시 영화의 여운에 뜨거운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박정민. 그가 영화 ‘동주’와 마주하며 겪었던 감정과 에피소드들을 고스란히 이 곳에 옮긴다.

윤동주 시인의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는 어떤 건 가요?
사실 전 윤동주 시인의 시를 ‘서시’랑 ‘별 헤는 밤’ 밖에 몰랐어요. 전 창피하지만 ‘시를 좋아한다’고 말은 못해요. ‘별 헤는 밤’을 후시 때 다시 듣는데 정말 확 무너졌어요. ‘그래 이 사람들도 사람이었고, 사실 어린 나이였으니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했어요. 시라기 보다는 그 행에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을 당한 느낌이었어요. 옆구리 한 방 세게 맞은 느낌이요.

‘동주’를 보면서 좋았던 것은 부끄러움의 정서가 다른 미디어로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느낌이었는데요. 시사 때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부끄러움이었을까요?
부끄러움은 영화를 보기 전에도 있었고, 촬영을 하면서도 있었죠. 기본적으로 저희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의 부끄러움은 촬영하기 전부터 느껴졌어요.

딱 생각나는 정말 부끄러운 지점은 감독님이랑 촬영 초반에 술을 마셨을 때였어요. 감독님이 “이 영화를 왜 5억에 찍는 줄 아느냐”라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영화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영화다. ‘송몽규’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그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순간 알려지지 않은 무명 배우의 개인적인 욕심과 감독님의 미처 알지 못한 의도가 충돌이 되면서 ‘이게 무슨 마음이지? 책임감을 가져야 하나? 사명감이 있어야 해? 반성을 해야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곧 부끄러움이었어요. 정말 너무 부끄러웠어요.

사실 그런 마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에 개인적인 이득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감독님이 이 영화에 의도하신 바를 미처 간파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고, 많이 버렸다고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얻을 것들을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너는 이 인물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를 뒤돌아보니 또 부끄러움이 생겼고요. 그날 밤에 정말 너무 속상했어요. 재미있게 술 마시려 갔던 자리였는데, 저, 감독님, PD님 셋이서 남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미칠 것 같은 감정이었어요.

영화 ‘동주’는 배우 박정민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요?
이미 영화에 촬영을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의미가 남아있어요. 그걸 말로 ‘소중했다’ ‘즐거웠다’로 말하는 것이 아닌 큰 의미예요. 아마 해를 거듭할수록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올 것 같아요.

제가 작년 이 맘 때 ‘연기, 이제 그만 하고 취업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그간 몇 번 해왔던 생각이긴 했는데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했던 건 그 때였어요. 정말 위기였던 거죠. 그런데 그 와중에 이 영화에 캐스팅이 됐어요. 어떤 느낌이었냐면, 헬스장에서 아령을 드는데 12개, 13개 계속 들다가 마지막에 ‘아 이제 정말 힘든데, 이걸 올려야 해, 아니면 말아야 해’ 하고 있는데 누가 딱 와서 들어준 느낌인 거예요. ‘아 됐다. 내일 와서 또 해야지’하는 느낌이요.

딱 그런 의미였어요. 그렇게 영화를 하면서 ‘아 그래 이거 내가 이렇게 좋아하던 거였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건데’라는 느낌을 다시 받았고요. 어떤 환경 때문에, 혹은 계속 쌓여왔던 열등감, 열패감,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그들의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때문에 연기의 재미가 안 느껴졌던 거죠.

사실 ‘파수꾼’에서 받았던 찬사 이후 뜸하시긴 했어요.
그 작품만큼 됐던 작품이 없었죠. 계속 가시적인 효과를 내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은 힘들어 하고요. 특히 엄마, 아버지가 “다음 작품 하는 거 없어?”라고 물어보시는 게 너무 듣기 싫었어요. 제가 엄마한테 화를 내는 거예요. “물어보지 말라고”, “있으면 내가 알아서 이야기 한다고”요. 그런 모습들도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런데 ‘동주’를 하면서 제가 충전이 되고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있는 만큼, ‘과정이 아름답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고 있었음에도 괴로웠지, 그런데 이번엔 마음으로 그걸 알았으니 좀 더 해볼 수 있겠다’라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요번 설날에 ‘파수꾼’을 해줘서 다시 봤어요. 그 때 배우들이 이제 다 잘 풀리고 있는데, 연락은 자주 하고 지내나요?
자주 만나요. 제훈이 형과 감독님을 조금 더 많이 만나는 거 같고요. 준영이는 자주는 못 만나지만 연락은 자주 하고 지내고요. 나머지 배우들도 만나요. 초희도 만나고, 제기는 군대갔고요. 제훈이 형이랑 감독님은 안 바쁠 땐 만나서 같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해요. 그 때의 기억이 워낙 좋아서요. 같이 여행도 같이 가고요. 그냥 좋은 거 있잖아요. 결과도 좋았고요. 감독님하고 제훈이 형은 상도 많이 받았고요.

그 땐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찍었거든요. 단편 영화 길게 찍는다고 생각하고 했어요. 어디 가서 상을 받는다? 아니면 개봉을 한다? 그런 생각 전혀 못했었어요. 정말 좋은 영화였어요. 감독님이 정말 잘 만들어주셨어요. 곧 또 영화 하시겠지만 정말 전 감독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파수꾼’을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믿음이 있고요. 특히 제훈이 형한테요. ‘누가 우리 가족 욕하면 죽여버릴 거야’ 그런 감정 있잖아요. 어디선가 만약에 그 멤버들을 흉 보는 말이 나오면 “그런 거 아니다, 잘 모르지 않냐”고 변호해주고 그래요.

 

사진=김문희 인턴기자 moonhee@zenithnews.com, 영화 '동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