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해어화' 천우희 ① "넌 안 돼? 왜 안 돼! 난 배짱 있는 배우"

2016-04-11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2014년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주인공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해 청룡의 여인이 된 배우는 바로 천우희. 가녀린 몸에 크지 않은 키, 분명 예쁜 얼굴이지만 ‘여신 미모’라고 말하기엔 익숙하지 않았던 얼굴. ‘한공주’라는 영화도 생경했던 사람도 많았지만, 그 이름 또한 생소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봤다면 수긍이 가는 수상 결과였다.

천우희는 그렇게 충무로가 가장 사랑하는 여배우가 됐다. 영화 ‘손님’과 ‘뷰티 인사이드’에서 얼굴을 비췄고, 곧 개봉할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의 촬영도 마쳤다. 그리고 꼬박 1년의 시간을 투자한 ‘해어화’로 관객들과 마주한다. 천우희는 ‘해어화’에서 조선의 마지막 기생 ‘연희’가 되어 한 남자를 사랑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조선을 적신다.

지난 6일 제니스뉴스와 천우희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해어화’가 연희에게 다소 불친절한 영화가 됐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연기를 오롯하게 빛냈던 천우희. 그가 이야기하는 ‘해어화’에 대한 이야기와 그 안에서 부른 ‘조선의 마음’, 그리고 배우로서의 길을 이 자리에 전한다. 

처음엔 시나리오를 거절했었다고 들었는데?

전 직관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긴 힘들어요.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해어화’가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 영화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
비슷한 영화가 떠올랐어요. ‘게이샤의 추억’과 ‘드림걸즈’의 느낌이 조금 들었고요.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본능적으로 ‘이걸 어찌 그려야 한다’,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게 스칠 수 밖에 없어요. ‘두 여자의 갈등, 재능에 대한 갈망과 고뇌가 너무 커서 대립이 크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가 좋다’라던가, ‘가슴이 아프다’라는 감정보다는 그런 느낌이 컸던 것 같아요.

이번 ‘해어화’에서의 의상이 참 예뻤다.
과거의 시대상이 참 만족스러웠어요. 경성의 거리도 좋았고, 배우가 입고 나온 의상이 너무 화려하고 예뻐서 보시는 분들이 즐거울 것 같아요. 연기하는 제 입장에서도 너무 좋았고요. 전작에선 옷이 한 두 벌 뿐이었어요. 이번엔 헤어 메이크업과 한복, 그리고 양장도 있었는데 너무 신선했어요. 연기할 때마다 새로웠고요. 특히 1940년대다 보니까. 일상에서 제 옷을 입다가 가서 촬영장 가서 그 의상들을 입고 화장을 하면 그 시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재미있고 만족스러웠어요.

연희가 입었던 한복의 콘셉트가 ‘도라지꽃’이라고 들었다.
아 그래요? 저도 몰랐는데, 연희랑 잘 맞는 것 같아요. 화려하진 않지만 들여다 보면 되게 예뻐요. 색깔도 강렬하지 않고 스민듯한 색감이고요. (물을 한 모금 마시며)그러고 보니 이거 도라지 물이에요(웃음). 

결국 친구의 남자를 빼앗는 캐릭터다. 친구의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감정 변화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는데, 천우희가 생각한 연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저도 그 과정에 대해서 계속 해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저도 참 아쉬운 부분이 거든요. ‘해어화’는 소율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예요. 하지만 연희에게도 친절이 베풀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편집된 부분도 있지만, 시나리오 상에도 본래 표현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연희’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힌트를 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연기를 할 때 너무 혼란스러웠죠. 

연희는 친구의 남자를 뺏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요. 영화에서 연희가 보여줄 수 있는 감정들이 너무 단편적이었어요. 정말 기승전결이 없어요. 단적으로 슬픈 일이 있고, 그래서 눈물이 난다면 그 과정이 보이지 않고 눈물이 나는 장면만 보여요. 그래서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여 풀어내기 어려웠고요. 

윤우와 처음부터 사랑에 빠지려고 했던 것도 아니에요. 같이 ‘조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만들면서 음악적 교감을 하다가 사랑으로 변한건데, 그런 표현이 돼있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서도 소율에 대한 갈등, 죄책감, 미안함의 고뇌 같은 것들이 언뜻이라도 조금 비췄으면 ‘관객들이 연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알아주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윤우도 심정변화가 한 번에 확 오고요. 연희도 마찬가지고요. “저런 나쁜 xx들”처럼 보이겠지만, 전 세 사람에게 다 연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럴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나 편집된 부분에서도 연희의 이야기가 없었나?
시나리오에서도 연희의 고뇌, 갈등, 고민 같은 건 없었어요. 윤우와 가까워지게 된 계기 정도가 나와있었죠. 윤우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한 부분 있었고요.. 저와 윤우가 저희 아버지를 마주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저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보게 되고, 전 그때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요. 제가 윤우에게 “너는 모른다. 조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넌 모른다. 넌 엘리트라 그런 삶을 살아본 적도 없는데 어찌 아냐”고 말해요. 윤우도 그 순간이 탁 변화하게 된 계기가 된 거죠. 자신이 생각을 잘못해왔고, 이상만 쫓아왔고, 노래를 정말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 전사가 한 부분 있었어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 감독님의 주문은 무엇이었나?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세세하게 주시진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질문을 많이 했죠. “관계와 감정들이 이해가 안되고 혼란스런 부분이 있는데 어찌 표현해야 할까요”하고요. 저로서는 감정과 정서도 중요했지만 세 사람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표현되길 바랐는데, 감독님이 원하셨던 건 “사람의 원초적인 욕망에 신경 썼으면 좋겠다”였어요. 감독님은 “사랑이 온 세상에 전부다”라시는데, “아니요. 전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웃음). 아마 그걸 가장 중심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영화가 드문 현실인데, ‘해어화’는 두 명의 여성이 극을 이끌어 간다. 여배우로서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좋은 기회죠. 여성이 주를 이루는 영화들이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제 복인지 모르지만 여성 중심의 영화를 꽤 많이 했었어요. 그럼에도 이번엔 제가 했던 작품과 다른 구조였기 때문에 이 영화가 저에게 온 게 감사하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욕심도 났고 그래서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영화를 본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과 고민들이 제가 느낀 만큼 힘있게 전달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어찌 보면 사랑에 조금 더 치우쳐 보이잖아요? 그래서 욕심이 더 났던 거 같아요.

‘연희’와 ‘소율’의 갈등에 대해 공감이 간 부분이 있을까?
1940년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그 때와 지금의 고민이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재능이나 남의 것에 대해서 ‘아 부럽다’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잘 못 느끼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 것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인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랬어요.

다른 사람들의 재능에 질투를 느껴본 적 있나?
다른 사람의 재능을 시기하거나 질투를 하진 않아요. 신경을 쓰는 편도 아니고요. ‘나 스스로 알아서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좋은 작품을 보거나 좋은 연기를 봤을 때 ‘정말 재미있겠다’ 하는 건 있어요. 본인이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며 부러워하고요. 그런 기회가 왔다는 게 부러울 때가 있어요. 물론 ‘너무 잘한다. 화가 날 정도로 잘한다’ 할 땐 있죠. 그렇다고 그걸 ‘나도 갖고 싶어’는 아니에요.

최근 그런 작품이 있었다면?
요 근래, 홍보 들어가고 차기작을 준비하기 전에는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어요. ‘캐롤’도 보고, ‘대니쉬 걸’도 보고 ‘스포트라이트’도 봤고요. 영화적인 색깔이 뚜렷한 것이 부러웠어요. ‘우리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할 거야’라는 중심이 딱 서있었어요, 연기 같은 경우도 ‘대니쉬 걸’이나 ‘캐롤’ 같은 경우는 그 섬세한 내면의 심리와 감정을 쭉 따라가잖아요. 부러웠어요. 그렇게 표현할 수 있고 잘 담아냈다는 것이요. 소재 자체도 독특했고요. ‘스포트라이트’도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흥행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생겼었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나름의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천우희에게 도전이란?
도전이란, 도전이죠? 도전이 뭘까요?(웃음) 제가 제 자신을 깨는 것 같아요. 저는 정말 평범해요. 특히 일반적인 제 생활을 보면 정말 평범해요. 하지만 연기에서만큼은 두려워하는 부분이 없어요. 타인의 시선, 여배우에 대한 인식들, 또는 저 배우 천우희에 대한 생각, 일종의 통념들이 있을텐데 그런 것에 대해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요. “왜 안 돼?”라며 부시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제가 배우를 하고 싶다 했을 때 “넌 안 돼”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람의 능력은 제한돼 있지 않고 무궁무진하잖아요. 그걸 왜 남이 단정 짓는지 잘 모르겠어요. 자유로운 기질이 있어요. 제가 되게 소심한 것 같지만 강단이 있어요. 배짱은 있는 편이에요.

배우 천우희는 강단이 있는 연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색깔을 이야기하자면 무채색의 느낌이다.

전 평범함이 제 강점이라 생각해요. 어떤 색을 입더라도 그 것에 잘 녹아날 수 있는 게 제 강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전 항상 그랬어요. 제 이름이 배우 천우희로 인식은 안 되더라도 “앗 ‘써니’ 본드녀다. 엇 ‘한공주’다”라며, 작품 속 캐릭터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사실 이름이 기억 안 된다는 게 아쉬울 수도 있지만 배우보다는 작품의 인물로서 보인다는 게 굉장히 좋은 일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연기관도 작품 안에 배우로 존재하는 사람이 있고, 인물로서 존재하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를 굉장히 추구해요. 그게 잘 보인다면 정말 좋은 일 같고요. 그게 지금까지 잘 됐던 것 같아요. 제가 잘했다기 보다는 같이 했던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잘 만들어 주신 거죠. 앞으로도 하나하나 잘 쌓아가고 싶어요. 저도 어떠한 수식어가 붙고 어떤 배우가 될 지 모르겠지만 잘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 2편에서 계속

 

사진=하윤서 인턴기자 h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