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계춘할망' 윤여정 ① 도전은 진행중 'Special Thanks To'

2016-05-17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배우. 바로 윤여정이다. 홍상수, 임상수, 강제규, 이재용 등 내놓으라 하는 감독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고, 수많은 여배우들이 ‘리스펙(respect)’을 표한다.

때로는 거침없는 언변으로 동료 배우나 감독,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지만 그 또한 윤여정이기에 가능할 일이다. 그 이면에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소위 요즘 말하는 ‘츤데레’의 매력이라는 걸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이제는 작품을 골라서 할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사치”라는 윤여정의 말이 성공한 배우의 잘난 체가 아닌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표시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윤여정은 여전히 도전하는 배우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계춘할망’을 통해 또 한 번의 변신을 했다. 그간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선사해왔던 윤여정. 하지만 이번엔 진정한 시골 해녀가 됐다. “나는 노배우”라고 말하면서도 그 위에 노인 분장을 덧칠하고 손녀 바보 할머니로 분했다.

시크한 이미지 속에 그간 아껴왔던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연기해 낸 윤여정을 제니스뉴스가 지난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까페에서 만났다. 윤여정과 나눈 대화를 이 자리에 전한다.

처음 ‘계춘할망’ 출연을 고사했다고 들었어요.
엄마가 3월 17일에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 수술도 해야 했기에 서울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또 지방 촬영을 안 좋아하긴 한다. 무슨 꿀단지를 집에 묻어놓은 것도 아닌데 집 떠나는 걸 안 좋아한다(웃음). 그러다 결국 (영화에) 말려들어갔다.

말려든 이유가 “도회적인 이미지를 다 소비했다”는 말 때문이었다면서요?
시나리오를 봤을 땐 누가 썼는지 참 정성껏, 진심으로 쓴 것 같았다. 그래도 편견이라는 게 상업영화라면 자극적인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이 작품이 상업영화예요? 독립영화예요?”라고 물어봤었다. 또 “왜 나를 할머니로 해요?”라고 물어봤다. 이 것도 편견일 수 있겠지만 흔히 알려지길 도회적인 여자로 알려져 있는데 시골 할머니로 쓰는 게 의아했다.

그런데 그 쪽에서 “도회적인 이미지는 다 소진되셨습니다”라고 답했다. 전화로 어른에게 그리 말하는 40대 청년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 소진됐나요?”라고 되물으니 “넵. 소진되셨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만나봤다. 만난 자리에서도 도회적인 이미지가 소진된 것을 그렇게 강조했다. "소진됐는데 왜 날 쓰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의 이미지를 바꾸고 선생님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게 확실히 있다’고 했다. 결국 ‘도회적인 이미지가 소멸됐다니까 한 번 도전 해봐?’라면서 하게 됐다.

도회적인 이미지가 소진됐다더니 영화 속에서 그렇게 시골 노인 분장을 시켜놨네요?
안 그래도 분장을 너무 심하게 해서 아직도 분장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분장을 하고 햇볕에 나가있으니까 더 심해졌다. 아직도 얼굴이 빨갛다. 마치 남자 처음 만난 여자처럼 발그레한 게 지금도 진정이 안 된다.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미용실에 갔더니 “그런 걸 바르고 햇볕을 맞으면 옥시풀이 되는 거예요”라 했다. 진짜 옥수수수염 같았다. 사실 분장이나 그런 건 상관 없었다. 지금 난 예쁘게 보일 필요도 없다. ‘난 늙게 하는 건 자신있다’고 말했다. 젊게 하는 게 문제지, 늙는 건 자신있다. 

분장도 분장이지만 육체 노동도 상당했어요.
진짜 해녀보다 가짜 해녀가 더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진짜 해녀들은 물질하고 딱 5분이다. 그게 가장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들었다. 오히려 해녀 분들이 우리랑 같이 촬영 하다 많이 놀랐다. 우린 촬영 때문에 여러 번을 해야 하니까, 경운기를 몇 십 번씩 타고 다니니 엉덩이도 많이 아팠다. 해녀 할머니들이 힘이 드니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제주도 말로 화를 내니 우리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웃음)

해녀복 입는 게 장난 아니라면서요?
정말 난 그 옷을 만든 사람이 더 신기하다. 과학적으로 아무 것도 안 되어 있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메이징한 게 있다. 그냥 두꺼운 고무다. 해녀들도 서로 입혀주고 벗겨주고 한다. 혼자서는 못 입는 옷이다. 의상 하는 아이가 날 도와줬는데 옷을 벗기다가 내 귓바퀴가 찢어졌다. 그 옷이 목을 점점 조여온다. 그 아이는 나를 빨리 벗겨준다고 그런건데 결국 귀가 찢어졌다. 정신이 정말 확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약과다. 뱀장어에도 물렸다. 의사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 부위, 사타구니를 물렸다. 뱀장어가 사람을 무는 지도 몰랐다. 흉은 생기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 부분이 까맣게 돼있다. 이빨이 정말 깊숙하게 들어갔다.

그간 쟁쟁한 감독님들과 작업을 해왔는데 창감독과 작업은 어땠나요?
현장을 잘 못 돌려서 내가 야단을 많이 쳤다(웃음). 내가 그렇게 젊은 감독하고 작업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 동안 정말 노련한 감독님하고만 작업을 했다. 노련하다는 건 현장을 요리해서 나를 잘 뽑아먹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창감독은 아마 마흔살? 우리 아들보다 한 살 어린가 그런데, ‘앞으로 배우 생활을 더 하면 험난한 길이 열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보다 나이 많은 감독님은 임권택 감독님 정도다. 점점 젊은 사람하고 만나게 된다. 물론 신선함은 있지만 노련함이 모자란다. 나 같이 늙은 배우는 그런 부분이 힘들다. 그런 감독을 따르는 스태프들도 2~30대다. 난 중대 연영과 졸업작품을 찍는 느낌이었다(웃음). 현장을 진두지휘 해야 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아역 연기 지도도 해야 하고, 연출부 연출 지도, 제작부 제작 지도, 나에겐 지도지만 그들은 야단 맞는 거였을 거다.(웃음)

고문 역할을 하다 오셨네요?
안 그래도 제작 PD에게 그랬다. 마지막에 캐스트 올라갈 때 '고마웠던 사람들(Special Thanks To)’에 내 이름을 제일 위에 써달라'고 했다.

김고은 씨와는 어땠나요? ‘혜지’ 역에 추천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감독이 ‘누가 했으면 좋겠냐’고 묻길래 “요즘 김고은이랑 천우희란 아이가 얼굴이 괜찮더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천우희는 나이가 조금 많다’고 했다. 내 눈엔 다 또래로 보인다(웃음). 필요하니까 캐스팅 한 거지, 내 말이 무슨 대단한 말이었겠나.

그 동안 눈 여겨 보긴 했었나 봐요?
‘은교’할 때 봤다. 그런 얼굴이 이제 필요할 때인가 보다 했다. 쌍꺼풀 있는 남자들이 좋아할 얼굴 말고. 특히 밖을 바라 볼 때의 눈이 이야기가 담긴 눈 같아서 ‘저 눈이 배우로서 좋은 눈인데’ 했었다.

실제로 연기를 같이 하니 어땠나요?
열심히 잘 했다. 늙은 배우가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열심히 안 한다면 그 아이는 바보일 거다(웃음).

사실 자극적인 이야기도 없고 어쩌면 뻔한 이야기지만 눈물샘을 자극했던 건 ‘내 편’이라는 한 마디였어요. 우린 누구나 내 편이 필요하니까요.
사실 이 작품을 하게 된 것은 우리 증조할머니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땐 증조할머니를 싫어했다. 우리 어렸을 때 할머니라는 건 당신 입에서 씹던 것도 손녀 입에 넣어주는 분이다. 어린 마음에 참 비위생적인 것 같았나 보다. 그런데 50살이 넘어 어느 날 문득 증조할머니 생각이 났다. 저희 집이 3대 독자 집안이었는데 제가 첫 손녀였다. 할머니에겐 몇 십 년 만에 본 아이였다. 얼마나 예쁘셨을까. 사실 내가 엄마를 해봐서 알지만,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계속 '하지 말라' 하고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안 그렇다. 꼬무락거리는 것도 예쁘고, 대소변 보는 것도 예쁘다. 그 할머니를 생각하며 ‘내가 정말 많은 죄를 지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이 영화를 할 때 그 할머니의 심정으로 연기했다. 증조할머니가 나를 대하듯 했다.

영화에 할머니와의 추억이 반영된 부분도 있을까요?
아이디어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신을 연기하는데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감독이 디렉션을 줄 수는 없었다. 우리 증조할머니가 나한테 미숫가루를 타 먹이면서 ‘이거 먹어야 안 죽는다’라는 식으로 말씀하며 주시곤 했는데,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다.

 

▶ 2편에서 계속

사진=콘텐츠난다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