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계춘할망' 김고은 ② '은교'의 첫 장면처럼, 따사로이 빛나는 곤블리

2016-05-18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지난 2012년 '은교'의 개봉은 상당히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노인과 여고생의 멜로라는 파격적인 소재부터 박범신 작가의 원작이 주는 무게, 정지우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왔던 노출 수위, 그리고 이후 지정됐던 아청법 논란에 언급되기도 했다.

그 후로 4년이 흐른 지금 '은교'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의미는 '김고은의 데뷔작'이 됐다. '은교'로 얼굴을 알렸던 앳된 신인 여배우는 그 해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거머쥐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우뚝 섰다. 이후 학업을 마무리 지으며 숨 죽이던 이 배우는 '몬스터'(2014) '차이나타운'(2014) '협녀, 칼의 기억'(2014) 등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관객들과 마주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 왔다.

김고은의 2016년은 병신년이 아닌 변신년이라 말할 법하다.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의 '홍설' 역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로맨스 작품이 안 들어온다"고 투덜댄 보람이 있었다. 이후 CF까지 섭렵하며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번엔 '계춘할망'의 '혜지'로 관객을 찾아왔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할머니(윤여정 분)와 다시 만나 교감을 해나가는 그런 역할이다. 관객들에게 가족의 정을, 그리고 따뜻함을 선사할 김고은과 제니스뉴스가 따뜻한 봄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모든 작품들이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이번 작품은 어땠나요?
'계춘할망'에 고마운 건 시나리오와 근접하게 나온 것 같아요. 영화라는 게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대로 가는 게 힘든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가는데 있어 감독님이 많이 고생하신 게 보여요. 너무 감사하죠.

샤이니 민호 씨와 러브신이 너무 없어서 아쉬운 것도 있었어요.
당초 러브신이 없었어요. 안 그래도 제가 매번 영화 인터뷰할 때 "멜로 안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개를 숙이곤 했는데, 그래도 이번에 드라마에서 했으니까요(웃음).

영화에서 혜지는 그림을 그리는 학생인데요. 만약 지금 고은 씨가 그림을 그린다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음. 어려운데요. '은교'에서 첫 등장할 때 그 빛과 느낌들, 제가 만약 그걸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장면을 그려서 간직하고 싶어요. 전 매 순간 처음을 떠올리거든요. 힘들 수도 있고, 무언가 어렵다는 순간이 오면 처음의 저를 떠올리려고 노력해요. 그 때 떠오르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에요.

초심을 상기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때의 영감을 되새기는 느낌일까요?
모든 순간이 다 진심이었던 때였어요. 아무것도 모를 때 감정만 생각하며 연기해야 할 때, 진심이어야만 연기가 나왔던 순간들이에요. 연기를 하다 보니 복잡해졌어요. 영화 전체를 봐야 하고 캐릭터도 생각해야 하고요.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나'라며 떠올리는 장면이에요. 물론 매 순간 리얼일 수는 없겠지만 제일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인 거 같아요.

'은교' 때의 김고은과 '계춘할망'의 김고은, 많은 변화가 있었죠?
많이 있죠. '은교'라는 작품은 제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배려를 받으면서 촬영해서 완성된 작품이요. 학생의 신분으로 참여했다가 모든 배려 속에 나오는 결과물에 칭찬받았던 거예요. 그 뒤에 학교로 가서 1년 동안 연극하고 단편을 찍으며 생활했어요. 그 때 들었던 생각이 '나 다음에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작품을 선택하다 보면 내가 꿈꿔왔던 배우는 못 가겠다'였어요. 학생 땐 나름의 플랜있었는데요. '단편과 독립 영화를 많이 찍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부딪혀 보다가 그 뒤에 상업에 도전해보자' 였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됐으니까,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있을 때까지는 이런저런 작품 다 해보자'로 바뀌었죠. 그래서 항상 도전해야 하는 작품을 했던 거 같아요.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거나 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두려움 없이 해보려 했고요. 

또 제 욕심이 '좋은 선배님들과 현장에서 함께 해보자'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옛날에 전도연 선배님이 '멋진 하루' 하실 때 너무 보고 싶어서 소품팀 스태프로 지원했다가 떨어진 적도 있어요. 그런 적도 있었는데 딱 5년 만에 지금이 됐죠. 서툴렀던 것들이 점점 덜 서툴러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제 20대의 다짐은 더 깊은 연기를 한다는 거창한 게 아니고 기복을 없애야 한다는 거예요.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그만한 도전이 필요하고 그래야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계춘할망'은 그럼 어떤 도전이 됐을까요?
일상의 감정을 연기하는 거였죠. 저에게만 일어난 일이거나 저만 느낀 감정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연기하는 거였어요. 자칫 잘못하면 감정의 과잉이 일어나고 그게 부담스러워질까 걱정이 됐죠. 평범한 감정이기에 더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전작과 다른 편안한 캐릭터를 연기한 소감은 어떨까요?
많이 위로받았던 것 같아요. 전작들은 감정이 소모되는 연기였고 저에게도 조금의 스크래치는 났던 것 같거든요.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렇지마는 않았나 봐요.

'계춘할망'은 날 좋을 때 제주도에서 촬영했으니 쉬는 날엔 좋은 곳도 다녔을 것 같은데요.
날도 너무 좋았고, 월정리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대기를 하기도 했고요. 대기하다가 여행 온 사람들을 보면서 "놀러 왔나 봐요"라며 부러워하기도 했고요. 저는 비올 때만 놀 수 있었어요. 그 때는 휴차였으니까요. 날 좋은 제주도에서 쉬지는 못했고 비 오는 제주도에서 맛집을 찾아다녔죠. 희원 선배님이 맛집을 많이 아셔서 리스트를 쭉 보내주셨어요.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요즘 TV를 틀면 정말 많이 나와요. CF요.
(손사래를 치며)전 안 봐요(웃음). 채널을 돌려요. 제가 등장했다 싶으면 돌려요. 그런데 지나가다 보면 보여요. 버스에도 붙어있고요. 핸드폰 대리점이 워낙 많으니까 그곳에도 붙어있고요.

그 CF가 연령대 요금제를 홍보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도 너 "스물네 살 아니잖아?"라는 말을 되게 많이 들어요. 그럼 "나, 만 스물네 살!"이라고 말해요. 자꾸 놀리는데 저도 가입할 수 있단 말이죠(웃음).

사실 CF 촬영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죠?
처음엔 두 편만 찍기로 했었는데 반응이 좋다며 또 찍자고 해서 추가 촬영을 하게 됐어요. 일이라면 해야죠. 사실 제가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뭐가 가장 쑥스러우냐면 판을 깔아주면 하기가 힘들어요. 제가 그냥 제 흥에 하면 하겠는데, 막상 깔아주면 얼음이 되는 스타일이에요.

영화나 드라마는 찍다 보니 예쁘게 나오는 컷이 생기고 연기를 하다 보니 귀여워보이는 신이 나오는 건데 CF는 애당초 예쁘게 귀엽게 나와야 하니까 힘든 거 같아요. 저 특히 "이게 바로 지구야"라고 하는 거 정말 힘들었어요. 그걸 스무 번을 넘게 찍었거든요. 서로 다른 모습으로요. 윙크도 했다가 속삭이기도 했다가 그러는데 정말 다섯 번 찍고는 멘붕이 왔어요. 그럼에도 할 수 있었던 건 감독님이 옆에서 디렉션을 잘 해주시더라고요. "자 이번엔 속삭이듯이! 자 이번엔 핸드폰 한 번 내밀고!"라며 유쾌하게 해주셨어요.

▶ 3편에서 계속

 

사진=하윤서 인턴기자 h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