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인터뷰] '차이나타운' 김혜수라는 증명, 그리고 그 방식

2015-04-27     최민지 기자

[제니스뉴스=최민지 기자] 차갑다, 시크하다, 프로페셔널하다. 배우 김혜수(45)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 보여주는, 완벽한 모습만을 추구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그야말로 무겁고 셌다. 그래서일까. 김혜수가 만들어 낸 영화 ‘차이나타운’(한준희 감독, 폴룩스픽처스 제작)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김혜수였기에, 김혜수이어야만 했기에 가능했던 영화. 관객들이 김혜수에게 연호하는 이유다.

김혜수는 이번 작품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조직의 보스 엄마(마우희)로 출연했다. 냉혹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존재, 실질적 지배자,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조직을 일구고 살아가는 최고의 권력자. 김혜수는 완벽하게 엄마가 되기 위해 몸을 불리고 얼굴을 상하게 만드는 특수 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배우로서 어떻게 보일까,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김혜수는 엄마에 제대로 녹아 있었다.

◆ “정서적 강도세, 주저하는 기간 길어”

처음 시나리오를 만났을 때 망설였다. 정서적인 충격을 받았고, 시작을 하기 전까지도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무척 강했다. 배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혜수도 ‘차이나타운’ 앞에서는 그렇게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다. 일단 하겠다고 했으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 아니겠는가. 그리고 완벽하게 엄마를 이루어냈다.

“정서적으로 와 닿는 강도가 셌어요. 그래서 주저하는 기간이 꽤 있었죠. 사회면에서 기사를 보면 잔상에 오래 남는 것처럼 저를 이끄는 느낌들이 있었어요. 그게 셌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저 센 느낌은 아니었어요. 육중한 무엇인가가 있었죠.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좀 더 마이너로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덜 불편하더라고요. 감정이 더 갔으면 하는 분들도 있던데 그랬으면 더욱 더 어두웠을 거예요.”

배우가 영화 속에 빠져들면 당분간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혜수가 망설였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정서 속에서 최소한 몇 개월 이상을 견딜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 충격을 가지고 싶지도 않았단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두려움이 컸던 그였지만 이는 괜한 걱정이었다. 오로지 캐릭터만 생각했고, 연기에만 집중했다.

“정말 영화적이잖아요. 그런데 책을 덮고 돌아서니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준희 감독이 여백을 많이 남겨 줬어요. 배우들이 감정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줬죠. 성별이나 나이가 무색하게, 잔혹하고 지독한 강렬한 시간들이 온 육체 덩어리에 드러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몸집을 키웠고요. 눈으로 봤을 때 거대한 몸집이 아닌, 내부적으로 무너져 내린 몸의 느낌이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동의를 해줘서 지금의 엄마가 탄생이 된 거죠.”

◆ “연예인, 매 순간 증명하는 직업”

김혜수에게서 의외의 모습들을 읽을 수 있었다. 위에서 나열했던 강한 이미지의 총집합 김혜수. 그러나 그는 유들유들한 유리 심장의 소유자였다. 조근 조근 읊조리는 말투, 이야기를 할 때 세포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표정들까지. ‘힘들었던 연기를 콕 집어 달라’는 말에 눈빛부터 바뀌었다. 신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해나갔다. 촬영할 당시의 모습들, 그 장면들을 묘사해나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박보검은 연기를 할 때 기술적으로 하지 않고 그 순간의 감정으로 해요. 지하주차장에서 맞붙는 신에서 박보검의 눈을 보는데 마음이 약해지는 거예요. 난 엄마인데 김혜수의 감정이 나오니까. ‘내가 정말 이렇게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 쪽에 가서 한참을 울다가 왔어요. 강아지를 죽이는 장면에서도 혼났죠. 보호해줘야 되는 존재들인데... 이런 부분들 때문에 출연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마음은 괴롭고, 영화는 깨질까봐. 그런데 그 장면들 빼고는 다행히 잘 넘어 갔어요.”

엄마는 일영(김고은)에게 증명을 해보라고 한다. “증명해 봐. 네가 아직도 쓸모 있다는 증명.” 예고편에서도 등장하는 이 대사가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박힌다. 마치 칼이 마음속을 찌르듯이 쓰리게 파고든다. 잔혹한 차이나타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증명을 해야 되는 이들처럼, 우리 모두도 매일 증명을 하며 살고 있다. 이는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김혜수에게는 더없이 와 닿는 대사였다.

“연예인은 더욱 심하죠. 매 순간 자신을 증명해야 되는 직업이잖아요. 자신의 자리를 연장하기 위해 매번 증명을 하며 살아가고 있죠. 그런데 어떻게, 누구의 기준으로 증명을 해야 되는 걸까요. 누군가로부터 강요를 받고, 강요를 당하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감정적으로는 사실 많이 죽이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차이나타운이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자꾸 묵직해지는 무엇인가가 있어요.”

 

사진=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