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인터뷰] '악의연대기' 손현주가 베드신, 19금 안하는 이유

2015-05-15     최민지 기자

[제니스뉴스=최민지 기자] 푸근한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한 눈빛의 소유자, 말을 시켜보면 푸근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또 차가운 느낌을 폴폴 내뿜는 배우 손현주(50). 어떤 역할을 맡아도 완벽하게, 혹은 그 이상을 추구하는 그가 영화 ‘악의 연대기’(백운학 감독,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작)에서 성공이라는 욕망을 두 눈에 가득 담고 돌아왔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손현주.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 놓고 그가 활개 치는 모습을 바라본다.

손현주는 ‘악의 연대기’에서 특진을 앞둔 순간 최악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 베테랑 형사 최창식 반장으로 출연한다. 강력반에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형사 최창식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의문의 남자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되고, 휴대전화를 들어 신고를 하려하지만 ‘특진’이라는 어마어마한 벽 앞에 그만 마음을 바꾸게 된다. 살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들을 조작하고, 점점 더 끝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최창식. 손현주가 만들어 낸 최창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스릴러 많이 안 해, 단 두 작품 뿐”

우리는 손현주를 ‘스릴러 흥행 킹’이라고 부른다. 이상하게 스릴러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그러나 스릴러 출연작은 단 두 작품. 영화 ‘숨바꼭질’과 지난 14일 개봉된 ‘악의 연대기’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현주에게는 스릴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자시만의 방식으로 캐릭터에 대한 분석을 완전히 풀어내는 배우이기에 이 같은 수식어가 붙은 것이 아닐까 감히 이야기해본다. 이번 촬영에서 그는 철저하게 외롭고, 또 외로웠다. 이 감정들이 영화 속에서 온전히 드러났다.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어요. 그런데 표현해야 될 것들이 많더라고요. 지문 아래에 있는 것들이 많았죠.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까’ 살짝 갈들이 되더라고요. 백운학 감독과 두 번을 만났는데 두 번째 보니 양질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과 함께라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 싶었죠. 그런데 많이 받았어요, (웃음) 갑상선암 수술을 받을 때까지 절 기다려줬고, 절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넘어간 거예요. 하하.”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촬영에 들어간 손현주는 힘들었다. 갑상선암 수술 이후 회복이 안 되서가 아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더욱 자신을 혼자로 만들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손현주는 부산에서의 세트 촬영 때 유배 생활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술도, 담배도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갈 곳은 숙소. 다른 배우들이 술을 마실 때 혼자 방에서 시나리오만 봤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마동석 씨가 잘 놀아줘요. 그런데 같이 형사로 출연했던 배우들이 숙소로 들어가면 연락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은 전화를 했는데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대요. 왜 전화를 안했냐고 했더니 ‘쉬셔야 되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한 2주 이상 들으니까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 말을 계속 듣다보니 보름부터는 전화를 아예 안하고 혼자 유배 생활을 했죠. 고독감을 참 많이 느꼈어요. 뉴스를 보다가 반신욕을 하고, 시나리오를 보며 다음 날 촬영을 준비하고 그랬답니다.”

◆ “색깔 칙칙해, 멀리 왔단 생각 들어”

최창식 반장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승진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자신을 최고로 믿었던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모조리 감춰버리고 싶었다. 손현주에게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딸과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있다. 관객들 앞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이지만 그도 가족들 앞에서는 여느 아빠들과 다름없는 가장이었다. 그래서 최창식을 연기할 때 더욱 공감되는 부분들이 있었으리라. 아빠로서의 손현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결혼을 안했으면 아마가족. 결혼을 안했으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를 많이 찍었을 거예요. 큰 딸이 은연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크면 생각해보겠다고. ‘악의 연대기’는 15세이상관람가 판정을 받았거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딸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를 해줬어요. 굳이 내 딸이 싫다고 하는 것을 하기가 싫어요. 언론시사회 때 베드 신이랑 멜로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당분간은 안 될 것 같아요. 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웃음)”

19금은 아니지만 드라마 ‘추적자’부터 ‘황금의 제국’ ‘쓰리 데이즈’ 그리고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숨바꼭질’ ‘악의 연대기’까지. ‘스릴러 흥행 킹’이라는 수식어 역시 어둠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들을 4~5년 간 지속적으로 해온 결과였다. “샤워를 하면서 어느 순간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지만 어떠한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고 낯익기에 더욱 큰 사랑을 받는 것을. 그래도 어찌 한편에 아쉬움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지금 정말 칙칙해요. 이렇게 오랫동안 칙칙하게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예전에는 엄마 이모 부모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거든요? 제가 지나가면 ‘바람만 피지 마라’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 때가 많이 그리워요. (웃음) 어두운 역할에 어떠한 쾌감을 느끼거나 그런 것은 아닌데. 이런 생각들이 드니까 육체적인 것보다 심적으로 지치는 것 같아요. 정신적 고통이 더 심해요. 하하.”

그런 걱정은 마세요, 손현주 씨. 다시 그 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실 테니.

 

사진=호호호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