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인터뷰] '차이나타운' 한준희 감독이 생존에 집착한 이유
[제니스뉴스=최민지 기자] 영화 ‘차이나타운’(한준희 감독, 플룩스픽처스 제작)이 제68회 칸영화제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메가폰을 잡은 한준희(31) 감독은 신인감독상 격인 황금카메라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영화계도, 여배우도 원했던 ‘진짜’ 여자들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줬고, 배우 김혜수 김고은의 아우라는 관객들을 압도했다. ‘차이나타운’을 만든 한준희 감독.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이 작품은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일영(김고은)과 비정한 차이나타운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직의 보스 엄마(김혜수)를 중심으로 생존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생존, 각기 다른 생존 방식들 사이에서 ‘차이나타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원래부터 여자들의 이야기”
생존(生存). 죽지 않고 살아 있음,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다. 무시무시한 말 같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생존이다. ‘차이나타운’이 암흑세계의 생존을 그려서 그렇지 사실상 모든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축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땅에 태어나 가장 중요한 것, 어쩔 수 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 생존이 바로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이다.
“콘셉트나 장르를 먼저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 가치관과 닿아 있었죠. 거창해보일 수 있지만 저도 생존을 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잖아요.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사는 아이, 그리고 과거를 알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 ‘여자로 바꾸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아니라 처음부터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성별보다 어떤 인간들인지가 더 중요했죠. 사실, 생계는 엄마와 더 인연이 깊어요. 그래서 여성을 선택했던 거죠.”
그렇게 엄마에 김혜수, 일영에 김고은이 캐스팅됐다. 두 배우의 만남만으로도 이미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차이나타운’. 뚜껑을 열어봤더니 ‘역시나’였다. 한준희 감독은 김혜수에게서 엄마를 읽었다. 일영은 어떤 인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였지만 엄마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완성돼 갔다. 엄마에 적합한 인물, 그가 바로 김혜수였다.
“엄마에게서 악인을 배제했을 때 당당하고 쿨하다는 면에서 김혜수 씨와 비슷했어요. 엄마는 몇 십 년 동안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고, 김혜수 씨 역시 몇 십 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죠. 그 사람들만의 다른 애티튜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엄마에게도. 태도나 모습들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거든요. 30년 동안 스타였던 사람, 그 쓸쓸함의 정서, 최고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을 다 담을 수 있는 배우가 바로 김혜수였죠. 그래서 고사를 했음에도 계속 제안을 했어요. 꼭 그 분을 만나고 싶었죠. (웃음)”
◆ “박보검, 첫 만남에 딱”
‘차이나타운’은 전반적으로 어둡다. 대체로 암흑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에 한줄기 빛이 돼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일영과 석현(박보검)의 투 샷이다. 이들이 만나면 어둠은 사라진다. 그저 환하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일영과 만나게 된 석현.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운이 감돈다. 언뜻 보면 멜로 라인인 것 같지만 어쩌면 이 장면도 생존을 위해 힘쓰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무언가 모르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청춘 남녀이기 때문에 멜로로 보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요? (웃음) 만약 젊은 남자가 아닌 노인이었다면 여자가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이건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엄마의 대사 중에 ‘끔찍할 때는 웃어야 돼’라는 말이 있어요. 석현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끊임없이 웃고 잘해주는 것도 나름대로의 생존방법인거에요. 여러 명의 빚쟁이들을 통해 겪었던, 아주 익숙한 곳에서 나오는 친절인거죠. 박보검 씨가 미세한 감정들을 참 잘 집어냈어요. 첫 미팅에서 딱 석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하하.”
우울한 분위기와는 달리 촬영장은 화기애애했다. 분명히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기에 현장 역시 어두울 것 같았으나 전혀 다른 분위기였단다. 연출자에 따라, 배우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는 현장. 그래서 한준희 감독은 배우들에게 참 고마워했다.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로 현장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현장은 즐거워야 된다”고 말하는 그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의문이 있고 스스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연기를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현장의 분위기는 즐겁게 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감독의 역할은 그 배우가 작품을 100편을 했건, 1000편을 했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부분들을 끄집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했던 것뿐이에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를 하며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잘 만든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웃음)”
사진=CGV아트하우스, 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