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현장] '벙커 트릴로지', 국내 관객 위해 다시 태어난 전쟁과 고전의 만남(종합)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영국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는 천재 콤비 제스로 컴튼-제이미 윌크스의 연극 ‘벙커 트릴로지’ 국내 초연의 막이 올랐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태형 연출과 각색을 맡은 지이선 작가를 비롯해 배우 이석준, 박훈, 오종혁, 신성민, 이승원, 임철수, 김지현, 정연이 참석했다.
‘벙커 트릴로지’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를 배경으로 아서왕 전설, 아가멤논, 맥베스를 각각 재해석한 작품. 고전 자체를 리메이크하기 보다 캐릭터를 차용하고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드라마를 통해 극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역사적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의 고증보다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과 고전이 맞닿음으로써 발생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
연극 ‘벙커 트릴로지’는 제스로 컴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카포네 트릴로지’, ‘사이레니아’로 국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작품 역시 특유의 무대 세트가 눈에 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20평 남짓한 무대 세트는 ‘벙커’를 그대로 옮겨온 듯 하다. 극중 총탄과 포탄이 발사될 때마다 객석 의자는 물론 무대 세트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음향 효과가 더해져 극한의 몰입감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에 더해 국내 초연은 국내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제1차 세계대전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다각도로 각색을 시도했다.
각색을 맡은 지이선 작가는 “어느 부분이 각색이 됐는지 말하는 것보다 안된걸 말하는게 빠를 것 같다”라며, “제1차 세계대전은 한국분들은 잘 모르시고 저도 잘 모른다. 영국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지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굉장히 다른 양상의 것이었다. 도시 공습도 없었고, 굉장히 무모한 참호전을 기반으로 한다. 참호에서 대기하다가 나가서 총알받이로 죽고, 또 다시 대기하는 소모전이다”라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이어 지이선 작가는 “한국 관객들이 몰랐던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치다 보니까 ‘모르가나’에서 소년병 이야기로 포커스를 맞췄다. ‘아가멤논’은 사실 거의 다시 썼다. ‘맥베스’도 다시 썼다. 특히 ‘맥베스’는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작업하고 있을때 이 시국이 일어났다. 어쩌다보니 시국과 잘 맞는 작품이 됐다”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김태형 연출과 지이선 작가는 ‘맥베스’의 마지막 장면에 대사를 추가하고, ‘아가멤논’에 여성의 참정권과 관련한 설정을 더하는 등 한층 강화된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자 했다.
작품에는 아서왕 전설을 재해석한 ‘모르가나’,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고대 히랍극 ‘아가멤논’을 모티브로 한 ‘아가멤논’,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재해석한 ‘맥베스’의 세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전쟁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극한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출연 배우들은 입을 모아 작품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제스로 컴튼의 ‘카포네 트릴로지’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출연하게 된 이석준은 “대부분 3시간 짜리 작품을 해도 기승전결이 있다. 그런데 이건 기승전결을 3편을 해야 된다. 참호에서 극한의 인간성을 세 작품에서 다 보여줘야 한다. 실제로 연습할 때도 세 작품을 동시에 외우는거랑 같은 심정으로 했다. 한 작품 느낌이 왔을때 쯤 다음 작품 연습으로 들어가버리면 앞이 다 날라가버린다. 이런 걸 계속 겪다가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을 겪었다”라고 힘들었던 점을 밝혔다.
지이선 작가와 세 번째 연극 작품을 함께 하는 가수 겸 배우 오종혁 또한 “클릭비 전성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킬미나우’를 할 때 감당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는데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연습하는 동안 사람이 피폐해졌다”고 말해 작품의 어려움을 감히 짐작케 했다.
한편, 드라마와 캐릭터를 보강해 원작과는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한 연극 ‘벙커 트릴로지’는 오는 2017년 2월 1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아이엠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