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판도라' 김남길 ① "신파? 눈물? 답답한 현실의 해소"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배우 김남길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도리화가’(2015)에서 흥선대원군으로 짧지만 강인한 인상을 남겼던 터라, 그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마음은 더욱 애가 탔을 것이다. 그런 김남길이 들고 나타난 작품은 바로 박정우 감독의 신작 ‘판도라’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 사고를 그린 재난 영화 ‘판도라’는 제작보고회 때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다. 현 시국을 향한 감독과 배우들의 직설도 있었고,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액세서리를 착용한 배우들이 포토월에 섰다. 어쩌면 그런 감독과 배우들이 있었기에 ‘판도라’는 탄생했는 지도 모른다. 그만큼 ‘판도라’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적폐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 용감한 선택을 한 배우 중 한 명인 김남길과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같은 날 새벽 네 시까지 선배 배우들과 회식을 한 터라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전도연 선배님을 포함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면서 활짝 웃는 김남길이었다.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부터 영화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근황까지 솔직하게 이야기 나눴던 그 시간을 이 자리에 전한다.
무려 4년의 제작 기간을 거친 영화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걸까?’라는 의문도 가질 수 있는 기간인데.
저는 캐스팅 제안을 초기에 받은 편이다. 투자 문제로 겉돌기도 했지만 영화적으로 시나리오가 어떻게 구현될지 고민이 많았다. 저희 집과 감독님 작업실이 가까워서 자주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냥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제 스케줄상 이 영화 말고 다른 작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외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혹여 '그런 부분이 있을까' 걱정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그저 시나리오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고, 제가 욕심 나는 신이 있었다. ‘판도라’는 그 지점이 분명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제가 그동안 추구했던 나쁜 남자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사실 현실과 닮아 있는 지점이 있는 건 다른 재난 영화에서도 여러 번 보았다. 우리는 당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재난 발생 시 컨트롤 타워의 부재 혹은 허술함을 시나리오에 극대화 시켰다. 물론 영화는 가상 현실이라는 전제가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조치할까?’라고 물었을 때 ‘컨트롤 타워가 완벽해도 못 막는다’는 것이 감독님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미리 대비를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4년이라는 시간 속에 가상현실이 현실이 됐다.
‘이런 일이 일어날까?’의 전제도 아닌 ‘이런 일은 없다’라고 전제 속에 들어갔던 영화다. 모든 게 가상이었다. ‘지진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질문에도 강도는 얼만큼인지, 피해는 얼만큼인지, 컨트롤 타워는 얼마나 돌아갈 지 등 여러 요소들을 가상적으로 이야기했었다. 당초 지진의 강도를 그려낼 때 이렇게 세게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강도를 바꿨다. 강도가 약하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피폭의 경우 실제로는 더 잔인한 것이 사실이다. 거부감을 걱정해서 자제했다기 보다는 우리의 메시지가 왜곡돼 보일까 자제했다.
배우로서 연기를 한 것 이외의 의미도 찾을 수 있는 영화일 것 같다.
초기 단계 땐 청와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거부감이 없었다. 선배님들은 “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라고 하셨는데 전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다. 늘상 있던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사회 고발을 담다 보니 다큐로 갈지 재난 영화로 갈 지의 고민도 감독님과 많이 나눴다. 사실 전 지진이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연구해 오신 정보들을 놓고 이야기하면서 관심이 생겼다.
원자력 발전소, 우리 주변에 있지만 멀게 느껴지는 존재이긴 하다.
저는 처음엔 후쿠시마의 이미지를 찾았다. 그런데 후쿠시마는 피부로 와닿는 부분이 적었다.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는 영상을 봐도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이었지 처절함, 경각심은 별로였다. 그러다 체르노빌로 이미지의 배경을 잡았다. 체르노빌은 달랐다. 정말 황폐한 곳,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공포가 느껴졌다. 냉각수가 새는 곳에 공병대가 투입됐다고 했다. 들어가면 몸이 녹아 없어질텐데 그럼에도 투입이 됐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하지만 ‘판도라’는 이미지의 공포는 덜하다. 현실에서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마치 맞아 떨어지는 예언에서 느껴지는 공포다.
제가 처절하게 가자 했는데 감독님이 “너무 무서우면 안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것을 그려내자 하셨다. ‘재혁’도 그랬다. 거창하게 한국을 구하는 영웅이 아닌 가족을 구하는 일원이다.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현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그렇게 됐다. 할리우드의 ‘아마겟돈’ 같이 쿨한 느낌은 배제했다. 그 부분이 촌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멋들어지고 의연한 모습이 아닌 공포에 가득 찼지만 호기도 부려야 하는 츤데레 같은 인물로 그려냈다.
그래서 신파라는 지적도 있었다.
저도 감독님께 이야기를 했다. 근데 재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신파적인 느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혁이가 그때 만큼은 따뜻한 이야기를 했으면 했다. 그럼에도 “죽으러 가는 사람이 말이 너무 많아”라고 감독님께 따졌더니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못해!”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그 순간에 있어 사람마다 성향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나름 의견 충돌이 있었던 지점일까?
전체적인 그림은 감독님이 더 잘 아시는 거다. 시간도 조금 줄였으면 했고, 음악도 너무 깐다는 생각도 했다. 대사도 빠르게 해봤고 줄여도 봤는데, 느낌이 안 살았다. 정말 촬영 전전날까지도 정리가 안 됐던 신이었다.
사실 신파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그런 의인을 보기 힘들기 때문일 거다. 1년에 한 번이라도 그런 의인이 있는 사회였다면 그 장면도 현실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맞다. 답답한 현실의 해소라는 느낌도 있었다. 선배님들하고 이야기할 때도 그 지점을 이야기하긴 했다. 관객들이 피로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저도 주변에서 ‘제 영화 보고 우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숨어서 눈물을 닦았다. 제가 연기를 잘해서 운게 아니다. 사고는 그들이 쳐놓고 국민들한테 수습하라는데,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니까 정말 억울하고 분해서 울었다. 결국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공권력, 제도가 아니라 이제 제 능력으로 제 가족을 지켜야 하는 세상이다. 저도 제가 갑갑했던 것들에 대해 공감이 되서 울었다. 그런 지점에서도 관객들이 해소를 느꼈으면 좋겠다.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