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인터뷰] 이지훈, "뮤지컬은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줘요"

2015-05-24     임유리 기자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우승을 차지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센스 넘치는 입담을 뽐낸다. 기대고 싶은 자상하고 젠틀한 남자로 변신해 드라마에 등장하고, 화려한 드랙퀸 쇼의 여왕이 되어 무대를 빛낸다. 이 모두 '이지훈',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고민될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그.

그런 그가 오는 6월 13일부터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엘리자벳'에 루케니 역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루케니는 전체적인 극을 이끌어가는 사회자와도 같은 역할. 김준수, 박효신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며 주목을 받아온 죽음 역보다 그는 처음부터 루케니가 끌렸단다.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 "'라카지' 끝내고 더이상은 힐 안 신겠다고 생각"

이지훈을 만나 지난 3월에 막을 내린 뮤지컬 '라카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리실라'에서도 여장을 한 그의 모습은 볼 수 있었지만, '라카지'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클럽 라카지오폴의 전설적인 가수 자자(ZAZA)이자 그 클럽의 주인 조지와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앨빈. 그리고 갓 스무 살이 된 장 미셀이라는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했다.

"'프리실라' 때는 남자 역할이긴 했지만 여장을 하면서 힐을 많이 신었죠. 의상도 20벌 정도 갈아입어야 해서 공연 끝나고 제 몸을 보면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굉장히 흥이 나는 공연이라 커튼콜 때 즐거워하는 관객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다음날 무대에 올라갈 힘을 얻곤 했죠. '라카지'에서는 완전 다른 진짜 여자, 엄마. 남자에서 여자로 확 바뀐 역할이었죠. '라카지'까지 끝내고는 더이상 힐은 신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앨빈(자자) 역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트렌스젠더 바에 가서 드랙퀸 쇼를 보면서 연구도 많이 했다. 하지만 연기하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건 모성애를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여자 역할은 어떻게든 흉내 아닌 흉내를 내면서 제 걸로 만들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정말 엄마가 되지 않으면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없는 거잖아요. 처음에 공연이 올라가고 나서도 그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관객들의 평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엄마를 보면서 많이 연구를 했죠. 저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어떤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하는지. 그랬더니 공연 끝날 때쯤엔 많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어서 좀 뿌듯했죠"

♦ "젊고 히스테릭한 앨빈을 연기, 나이 들어서도 출연하고파"

'라카지'에서 이지훈이 맡은 앨빈은 정성화, 김다현이 각각의 개성으로 확고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립,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던 캐릭터. 그러다보니 새롭게 합류한 사람으로서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지훈은 '이지훈만의' 앨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연출님과 많이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유하고 중후하고 마음이 넓은 것보다는 좀 더 젊은 엄마, 좀 더 떽떽거리고 굉장히 히스테릭한 앨빈을 만들게 되었어요. 40대 초반의 부부들은 뭐 때문에 싸우고, 어떻게 싸울까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죠"

상대역 조지를 연기한 남경주, 고영빈과의 게이 부부로서의 케미도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남경주 선배님하고는 공연 후반에 7회 정도 같이 했었는데, 비슷해요 저랑. 제가 신경질 내면 '어 그래그래' 이렇게 받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신경질로 받는 스타일. 화와 화가 부딪혀서 그 에너지가 굉장히 독특하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고영빈 선배 같은 경우에는 제가 막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면, '아이구 아이구 그랬어?'하면서 받아주는 스타일의 조지였죠. 두 분이 굉장히 상반된 조지를 보여주셔서 저 역시도 연기하면서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또 여장을 하고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있다면 할 생각이 있는지 묻자, "이제 남은 건 '헤드윅'인 것 같은데"라며 웃는다.

"사실 농담 삼아 힐을 벗겠다고 얘기는 했지만 '라카지'의 앨빈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좋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여자로서의 삶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깊은 내면에 있는 어떤 것들을 많이 느꼈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출연하고 싶어요"

♦ "'엘리자벳'은 뮤지컬 인생의 터닝 포인트"

뮤지컬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황후 엘리자벳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 이 작품에서 이지훈이 2013년에 이어 올해에도 맡게 된 루케니는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는 역할이다. 작품에 두 번째 출연하는 그가 생각하는 ‘엘리자벳’의 매력은 무엇일까.

“음악은 클래식함과 우리 귀에 익숙한 팝적인 요소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초연 때 이 작품을 보면서 루케니 역을 꼭 하고 싶었는데, 재연 때 참여하게 되고 감사하게도 남우조연상까지 받게 되었죠. 저에게는 뮤지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또 한다고 했을 때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죠(웃음)”

‘프리실라’, ‘위키드’, ‘라카지’ 그리고 ‘엘리자벳’까지. 최근 뮤지컬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그는 “많은 걸 해봤지만 가장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뮤지컬을 하는 이유는 “분명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의 말 속에서 뮤지컬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모든 것이 라이브로 이루어지니까 공연 전에는 촉각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고 스트레스도 많지만,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 밝고 좋은 기운을 관객들을 통해서 얻어요. 관객들의 표정 속에서 환희도 느끼고, 어떤 분들은 그냥 웃고 계시지만 ‘고맙다’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고. 그 속에서 ‘아 내가 살아있구나.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껴요. 공연 끝나고 관객분들이 감동 받았다고 얘기해주실 때 얻어지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이지훈. 지금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활동해 온 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그를 계속해서 더 기대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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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