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여교사' 이원근 ① "베드신에 발레까지, 대본 받고 멍했다"
[제니스뉴스=안하나 기자] ‘어떤 것을 이루려면 바라는 결과 이상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 말은 배우 이원근을 설명하는 듯 하다. 달콤한 눈웃음으로 해맑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면 근심 걱정 없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원근은 한 마리 백조였다. 물위에서는 한 없이 우아했다. 마치 하얀 그의 얼굴과 같았다. 하지만 물밑에선 발로 열심히 킥을 하고 있었다. 이원근에게 '여교사'도 그랬다.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발레 연습은 물론,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 감독에게 매일 전화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귀찮게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나 절로 미소가 생기는 즐거운 작업이었다.
영화 ‘여교사’ 인터뷰 차 이원근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하늘과 유인영의 인터뷰 당시 이원근의 근성과 끈기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던 바,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원근은 말하는 중간중간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첫 주연의 공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돌렸다. 이어지는 칭찬에도 “과찬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제가 김하늘 선배, 유인영 선배와 같은 작품에서 연기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믿기지 않아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영화를 찍어 본 경험이 많이 없는 저를 캐스팅해준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제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했는지 모르겠지만, 발탁해준 만큼 보답하는 길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해 더 준비하고 열심히 했어요”
김태용 감독은 영화 경험도 적은 이원근을 왜 남자주인공으로 택했을까. 이원근은 “감독님께서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해주셨어요. 오묘한 매력이 재하 캐릭터와 똑 닮았다며 저를 캐스팅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과거 '거인' 당시에 주연을 맡은 최우식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를 했던 김태용 감독은 '여교사'를 통해 데뷔 후 첫 주연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이원근에게도 같은 행동을 했다. 이원근은 자신이 미워 김태용 감독이 쓴소리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됐음을 알게 됐다.
“감독님과 많이 싸웠어요. 모니터하고 싶은데 자꾸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왜 모니터를 하면 안 되죠?’라고 물으니 ‘감독이 OK 하면 믿어라’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나중에 촬영 다 끝나고 나서 물어보니 모니터를 보고 나서 마음에 안 들면 계속 신경 쓰여 다음 촬영에 집중하지 못할 거 같아 배려해 주신 거라고 하셨어요. 그 순간 감독님께서 저를 위해 세세한 것까지 다 신경 쓰고 챙겨주시는 것 같아 정말 감사했어요. 아! 극 중에 발레 연습하는 장면 때 입은 민소매, 감독님께서 사주신 거에요. 열심히 하라며 무심하게 툭 던져주고 가셨어요. 하하”
‘여교사’ 속 이원근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교사 효주(김하늘 분)를 들었다 놨다 하는 학생 재하 역을 맡았다. 재하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간섭하는 효주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까칠하게 대하지만, 어느 순간 활짝 웃는 얼굴로 효주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마냥 해맑지는 않다. 속에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숨겨두고 있는 인물이다.
“초반에 대선배들과 촬영을 한다는 사실에 긴장을 많이 했어요. 오히려 더 잘하려고 하다 보니 NG도 많이 냈고요. 그럴 때마다 선배들께서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라며 다독여주셨어요.(미소) 특히 유인영 선배의 경우 먼저 셀카도 찍자고 할 정도로 편하게 다가와 주셨고,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원근은 신재하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낯선 일에 두려움 없이 도전했다. 가장 큰 숙제는 발레와 베드신이었다. 그는 본격적인 촬영을 한 달여 앞두고 매일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발레 연습에 할애했다. 또한 생애 첫 베드신도 어색함 없이 잘 소화해 내고 싶어 철저하게 짜인 각본대로 움직일 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
“처음 대본을 받고 몇 초간 멍했어요. 몸치인데 발레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멘붕이 왔죠. 하하. 작품 들어가기 전 충분하게 발레를 배우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해 무용학원에 다녔어요. 초반에는 몸이 뻣뻣하고 해보지 않았던 동작들을 해내야 했기에 매우 아팠어요. 그래도 해내야 했기에 동작들을 수없이 연습하고 달달 외웠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발레를 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몸에서 선과 동작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대역을 쓰거나 대충하고 싶지 않았어요. 열심히 가르쳐준 무용 선생님에 대한 예의이자 저를 캐스팅 한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어요”
“베드신 장면을 촬영할 때는 선배와 후배를 떠나 극 중 캐릭터 재하로 분해 몰입해서 연기했어요. 제가 민망해하면 오히려 김하늘 선배, 유인영 선배가 더 불편해할 거 같아 최대한 자연스럽게 리드하면서 촬영에 임했어요. 또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대화를 하고 상의해 구상한 동선에 맞춰 연기했어요”
‘여교사’를 본 관객들이라면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 그려진 마지막 장면을 쉽게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김하늘, 유인영이 마지막 장면 속 키플레이어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목격하고 펑펑 우는 이원근의 모습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원근은 서럽게 바닥에 주저앉아 세상을 잃은 것처럼 울고, 이를 보는 관객들은 안타까움에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감독님께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촬영 날에도 제가 감정을 잡을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줬고 크게 지시하지 않으셨어요. 그 덕분에 오로지 감정만 제어하고 집중한 뒤 울었던 기억이 나요”
올해로 4년 차, 이제 배우로서 얼굴을 점차 알려갈 시기에 이원근은 잇따라 대선배들과 호흡을 맞췄다. ‘여교사’의 김하늘, 유인영을 비롯해 tvN ‘굿 와이프’의 전도연, 유지태, ‘환절기’의 배종옥까지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배우들과 함께 한 화면에 등장했다. 필모그래피도 필모그래피지만, 선배들과의 작업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선배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긴장되고 머리가 멍해져 외운 대사를 다 잊어버렸어요. 현장 가기 전에 수십번 속으로 ‘나 때문에 NG가 나면 안 돼’라고 되뇌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저 때문에 NG가 많이 났어요. 죄송했어요. 아무래도 선배들보다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NG가 많이 났던 거 같아요. 그때마다 자책하면서 ‘괜히 선배들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지금 되돌아보면 선배들에게 연기는 물론, 다양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어요”
데뷔 4년 만에 주연을 맡은 그는 촬영장에서 매일같이 동고동락하며 함께 한 동료와 선배를 얻었고, 자신을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또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라이징 스타’로 우뚝 서게 됐다.
“배우로서 욕심은 있으나 냉정하게 재능은 없는 거 같아요. 잘하려면 남들보다 2~3배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늘 고민하고 채찍질하며 차근차근 나아가는 배우 이원근이 될게요.(미소)”
사진=하윤서 기자 h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