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재심' 정우, "사람 냄새가 좋다"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배우 정우의 무기는 ‘친근함’이다. 어쩌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의 ‘쓰레기’의 인상이 깊어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가 써온 필모그래피를 보면 언제나 사람 냄새 가득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혹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다. ‘친근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기에 그런 캐릭터를 입을 수 있었고, 관객들은 그의 연기에 몰입됐다.
영화 ‘재심’의 ‘준영’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를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동시대에 벌어진 일을, 그리고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부담이다. 정우 역시 그런 심적 고민을 토로한다. 자칫 실제 모델과 그의 가족들에게 누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는 역시 진심 어린 연기를 잘 해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개봉 첫 주말박스오피스 1위라는 성적으로 관객에게 제대로 통하고 있다. 영화 ‘재심’에 대한 마음과 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제니스뉴스와 정우가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작품을 본 소감은?
의욕적으로 촬영한 게 묻어난 거 같아서 다행인 것 같다. 다만 역시 제 부분은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부족한 부분은 느껴진다. 참 ‘마지막에야 몸이 풀리는구나’ 싶었는데 촬영이 끝났던 것 같다.
‘히말라야’에 이어 또 실화 소재의 영화에 참여했다.
‘히말라야’와 ‘재심’을 비교해서 어느 작품이 더 부담된다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단지 ‘히말라야’는 고인이 되신 분을 연기해야 하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당사자를 넘어 유족들에 대한 신경을 많이 썼다. 매 신마다 고민이 많았다. 그분들에게 누가 될까 봐. 이번 작품도 그랬다. 특히 초반에 유쾌한 모습이 나온다. 그 실존인물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볼 때 제 연기가 그 분의 이미지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분에 대한 오해를 낳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실제 사건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인지하고 촬영을 했는지?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당시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을 몰랐다. 이후에 그 사실을 알았고,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를 전해 들었다. 굉장히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안타깝고 가슴 아팠다. 하지만 전 어쨌든 연기자로 이 작품에 참여했다. 사건을 파헤치고 해결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제 역할에 충실했다. 그래서 촬영에 들어간 뒤에야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다. 실제 사건의 이미지가 제가 강하게 다가올 것 같아서 그랬다.
처음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강하늘 씨와 바뀐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히려 강하늘 씨가 더 변호사에 맞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맞다. 이미지로만 보면 제가 하늘이보다 거친 이미지다. 하늘이는 워낙 모범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감독님은 다른 포커스로 접근하신 것 같다. 변호사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 보다는 속물 근성도 있는 친근한 인물로 그리고 싶어 하셨다. 그 점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올 거라 계산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경우도 착하고 바른 이미지인데도 불구하고 눈빛에서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다.
실제 사건의 박준영 변호사도 만나 봤다.
촬영 중후반 쯤에 만났다. 몇 개의 에피소드는 들려주셨으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사실 ’사’ 자가 붙은 직업군을 만나면 괜히 위축되고 조심스러워지는데 박준영 변호사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매우 친화력이 좋으시다. 사람을 편안하게 받아주시는 타입이라 정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을 이야기할 땐 눈빛이 바뀌었다. 진지하고 진실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자신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다. 겸손한 분이라고 느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준영이는 밝은 성격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현우가 더 힐링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살인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다. 제목부터 ‘재심’이다. 상처, 누명, 아픔, 억울함, 그런 감정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 영화는 느와르나 스릴러가 아닌 휴먼 드라마다. 러닝 내내 감정이 무거우면 관객들이 따라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쉼표가 필요했고, 그 장치가 준영이었다. 하지만 과하지 않게 그렸다. 매 신마다 조심스러웠다. 실존 인물에게 누가 되지 않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했다.
현우에게 있어 준영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정우 씨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하나 꼽는다면?
저는 제 나이가 서른 후반 가고 있는데,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기엔 어딘가 우습고 쑥스러운 나이다. 저희 집이 많이 엄격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집 밖에서 잘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세 번 정도? 친구가 많은 편인데도 그랬다. 그런데 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에 와서 혼자 살게 됐다.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알게 모를 외로움이란 존재다. 식당이든, 집이든,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쌓여간다. 그런 것에서 조금씩 변화가 왔었던 것 같다.
강하늘 씨와 인연이 깊다. ‘쎄시봉’ 때도 함께 했고, 예능을 통해 여행도 같이 다녀왔다. 강하늘 씨는 정우에게 어떤 사람일까?
사실 하늘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하하. 농담이다. 사실 다른 선배님, 후배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제가 참 소심하다. 제 이야기가 살짝살짝 글자 토씨가 바뀌어 기사가 될 때 뉘앙스가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이의 경우는 다르다. 다들 친한 걸 아시니까 편하게 말해도 좋게 써주시고 이해해주신다. 전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출 때 상대의 에너지를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합이 잘 맞는 걸 느꼈을 때 굉장히 신난다. 그게 바로 시너지인 것 같다. 하늘이와는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하늘 씨가 굉장한 미담제조기로 유명하다.
그런 소문들을 전부다 깨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 미담들이 전부 사실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정말 같이 한 달만 지내보면 그의 인간적인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만약 여동생이 있다면 소개해줄 정도의 남자일까?
여동생이 하늘이를 좋아한다 하면 소개시켜 줄 수 있다. 하지만 먼저 나서서 “만나 봐”라고 권유는…, 그건 잘 모르겠다. 하하.
필모를 바라보면 인간 냄새 나는 캐릭터를 주로 해왔다. 어쩌면 이번 ‘재심’의 악덕형사 ‘철기’ 같은 악역도 욕심날 법 한데?
제가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하지만 악역 연기도 너무 흥미롭다. 전 작품을 고를 때 시나리오를 우선으로 본다. 캐릭터보다 시나리오가 앞선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그리고 제가 흥미가 가는지, 그리고 공감이 되는지를 본다. 그 이후에야 캐릭터에 접근하기 때문에 선한 역, 악한 역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1994’ 때의 이미지 때문일까?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예능에서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사실 그런 걸 생각하면 너무 긴장되고 떨린다. 이번에도 도전한다고 해봤던 게 라디오 출연이었다. 참 생방송이 처음이라 그런지 너무 긴장됐다. 새로운 사람, 다른 분야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어색한 부분도 있다. 인터뷰만 해도 정말 좋아진 거다. 저번 작품 때만해도 많이 경직돼 있었다.
‘응답하라 1994’ 이후 꾸준히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 드라마 출연 생각은 없는지?
저는 드라마 출연도 하고 싶다. 물론 영화도 하고 싶고, 연극 무대도 오르고 싶다.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을 나눠서 생각하고 있진 않다. 다만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을 상황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진행하고 싶다.
사진=오퍼스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