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특별시민' 곽도원 "광대란? 서민의 아픔 담을 넓고 큰 그릇"

2017-05-15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견을 묻자 격한 대답이 돌아왔다. 단지 권력의 부패에서 나온 폐단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만큼 곽도원에게 배우란, 그리고 연기란 관객의 행복을 위한 의미 있는 직업이자 예술이기 때문이었다.

곽도원이 배우의 뜻을 품은 건 어린 시절 교회 누나와 연극을 보러 갔을 때였다. 길을 잃어 늦게 도착한 극장에 남은 자리라고는 2층에 있는 다락 좌석.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그곳은 곽도원에겐 별천지었다. 무대 안과 무대 밖을 모두 볼 수 있는 곳, 은막의 앞뒤를 모두 바라본 곽도원은 그렇게 연극에 빠져들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극단에 들어갔다. 청소부터 포스터 붙이기까지 궂은 잡일과 함께 연기를 배우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영화로 터전을 옮겨 조연 배우에서, 이젠 주연 배우로까지 자리잡았다.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기에 할 수 있던 일이었지만 마음 한 켠엔 배우라는, 그리고 광대라는 단어를 새겨놨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우리말인 광대를 한자로 옮기자면 넓을 광에, 큰대를 써서 ‘廣大’라 표현한다. 이는 곽도원의 말을 빌자면 넓고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야 서민들의 아픔을 담을 수 있다는 뜻도 보탰다. 그렇게 영화 ‘특별시민’의 심혁수로 분한 곽도원과의 시간이 흘렀다. 영화 속 심혁수는 권력욕에 타오르는 선거대책본부장이자 국회의원이었지만,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제니스뉴스와 마주한 곽도원은 그 누구보다도 관객을 사랑하는 그런 배우였다.

개봉 시기가 교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대선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으니까. 하하.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땐 “참 야무지게도 깐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약한 시나리오가 됐다. ‘내부자들’도 ‘참 세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영화마저도 이젠 약한 영화가 됐다.

이번 영화를 최민식 씨가 추천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정말 선거가 이럴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기 전이었으니까. 그런 의문 속에서도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최민식 선배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범죄와의 전쟁’ 때 선배님과 느꼈던 걸 다시 느끼고 싶었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최민식 씨와 다시 연기했다. 최민식 씨는 “탁구를 치는 것 같은 호흡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순금은 도금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분이다. 아마 전 죽을 때까지 헐떡거리면서 쫓아갈 거고, 그렇게 기를 빨리다 죽을 것 같다. 그런 선배님들이 계셔서 제게 숙제가 생긴다. 그런 숙제를 주시는 존경스러운 분들이 계셔서 너무 다행이다.

심혁수라는 인물, 비중에 비해 전사가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
제 나름대로 만들어 본 전사로는 외로운 인물이었다. 가족도 있었을 거다. 나중에야 잠깐 나온다. 그렇게 가족이 있음에도 그 넓은 집에서 항상 혼자 있다. 집에 와도 아무도 반기는 이가 없다. 구두에 나는 작은 흠집도 신경 쓸 정도로 구두에만 집착하고, 그 구두가 자기를 좋은 곳에 데려갈 거라 믿는다. 외로운 인물이었을 거다.

검사 출신이라고 이야기 할 때 ‘범죄와의 전쟁’의 조범석 검사가 생각나 웃음이 터졌다. 노린 걸까?
안 그래도 감독님하고 “‘범죄와의 전쟁’ 본 사람은 다 그 부분을 생각할 거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선거대책본부장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브레인 출신이 많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범죄와의 전쟁’을 연상시켜보자라고 생각했다. 

심혁수도 분명 청운의 꿈으로 정치를 시작했을까?
영화 속에서 정치판을 똥물에 비유한다. 정치를 그만두면 여의도 쪽으로는 소변도 안 본다고 한다는데, 저도 ’왜 정치라는 게 그렇게 됐을까?’ 싶었다. 분명 심혁수도, 변종구도 초선 시절이 있었을 거다. 그땐 맑은 정신이 있었을 거다. 검사 출신인 심혁수가 검사를 그만둔 후, 변호사 개업이 아닌 국회의원을 선택한 것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인간의 권력욕이 문제다. 권력은 마약과 같다고 한다. 거기에 중독돼서 그만두지를 못한 것 같다. 그 권력에 대한 집착, 그것이 심해지면서 심혁수가 외로워진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인의 권력은 인기에서 나온다. 어쩌면 배우와 같은 지점일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절 알아볼 것을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연기를 하다 보니 연극을 하게 됐다. 연극을 하다 보니 영화를 하게 됐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역할도 커졌고, 이젠 홍보를 위해 예능까지 나가게 됐다. ‘곽블리’라는 게 말이 나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 하하. 옛날엔 술 마시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어도 아무도 못 알아봤다. 배는 고팠지만 자유로웠다. 지금은 아니다. 이것 참,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가려지는 얼굴 크기도 아니다.

대중을 상대하기에 지켜야 할 의무들도 많다. 그래서 연예인들도 공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치인은 공인이 맞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불특정 몇 명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헌신해야 하는 진짜 공인이다. 그러나 배우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진 않는다. 다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연기를 한 것은 맞다

예전에 배우를 뜻했던 광대(廣大)라는 한자는 미칠 광을 쓰는 것이 아니다. 넓을 광에 큰 대를 쓴다. 넓고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야 서민들의 아픔을 담아 양반을 비판하는 연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거다. 배우(俳優)라는 한자의 배도 사람 인(人)변에, 아닐 비(非)를 쓴다. 사람이 아닌 사람이다. 거기에 근심 우(憂)를 얹었다. 사람들이 내 연기를 통해 근심을 덜었으면 좋겠다. 배우는 그렇게 남의 행복을 바라면서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넓고 큰 사람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니 어쩌면 정치인하고 비슷한 지점은 있을 거다. 그러니 정치인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늘 헌신하는 사람이 되는 게 맞다고 본다.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