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박열' 이제훈, "신념으로 통했던 커플, 정말 뜨거웠다"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에 앞서 영화 포스터가 공개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박열’의 포스터는 실로 강렬했다. 이준익 감독이 직접 쓴 ‘박열’이라는 두 글자와 욕설을 포함한 박열의 시 문구, 여기에 싱크로율 100%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이제훈의 얼굴이 있었다. 눈물을 머금은 듯 했지만 강렬하고 또렷한 눈빛, 우는 건지 웃는 것인지 알 듯 모를 미소가 인상적인 포스터였다.
이제훈이라는 배우의 도회적인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 그만큼 ‘박열’은 이제훈에겐 배우로서 또 다른 면모를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런 배우로서의 욕심은 ‘박열’이 가진 커다란 의미 뒷편에 접어놓은 이제훈이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반역죄인으로 이름을 올린 박열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대다수가 모르는 현실에 ‘박열’이라는 이름 두 글자를 소개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었다.
영화 '박열'로 돌아온 이제훈과 제니스뉴스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언론 시사 이후 잇단 호평에 부담을 잠시 내려놓은 듯 했다. “일본어 연기가 좋았다”는 말에는 정말 부담이 많았던 듯 안도의 한숨과 함박 웃음을 짓기도 했다. 과연 영화 ‘박열’은 배우 이제훈에게 어떤 작품이었을지,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이 자리에 풀어본다.
언론시사회 이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제가 그날 볼 땐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다들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박열’이 가진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다. 일반 시사의 반응들도 좋아서 다행이다.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만큼 강렬했던 포스터였다.
정말 너무 반응이 좋아서 감사했다. 그간 보여드렸던 이미지와 달라서 더 강렬하게 느끼신 것 같다. 전 촬영을 마치고 포스터 촬영을 했다. 그땐 ‘무난하게 잘 나왔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놀라워해서 신기했다. 아마 많은 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열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이준익 감독님이 ‘동주’에 이어 같은 시대를 그리셨다는데 관심을 주신 것 같다. 제가 볼 땐 ‘동주’에 이어 같은 시대, 그리고 새로운 결의 영화를 만들어내신 것 같다.
‘박열’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잘 알지 못한다. 연기를 하는 당사자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맞다. 저도 그랬다. 박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책이 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 안에서 쓴 자서전과 일본작가가 쓴 평전을 읽었다. 그 안의 박열을 탐구했다. 우리 영화의 시나리오는 실제 인물을 가지고 픽션을 재구성한 게 아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무게가 상당했다. 상상의 나래로 일제의 상황을 호소하고 울분을 해소하는데 그쳐서는 안 됐다. 영화 속에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명감도 생겼다. ‘박열’은 정확한 사건과 기록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고 책을 봤을 때 정말 놀랐다. 기록들을 그대로 발췌한 것처럼 시나리오에 대사들이 쓰여있었다.
이제훈이 느낀 박열은 어떤 사람이었나?
제가 가지고 있던 혁명가라는 이미지는 비장하고 진중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박열은 국가나 민족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포용하는데 있어서 인간다움이 넘쳐 흐르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본래 박열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전달하고 실천할 땐 몸소 움직였던 사람이다. 그 부분이 존경스럽다.
고등학생 때 3.1 운동을 겪으면서 항일운동도 했고, 서울에서 문경까지 다시 내려와 산에 올라가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그럼에도 그치지 않는 가슴속 뜨거움에 제국주의의 심장인 도쿄에 가서 몸으로 부딪힌다.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는데, 굽히지 않고 당당하다. 그들에게 불량한 모습을 보이면서 ‘불령선인’이라 불리고, 그 모임을 ‘불령사’라 이름 짓는다. 정말 놀라운 인물이다.
그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개새끼’라는 시였다.
맞다. 그 당시에 자신이 잡지를 직접 발간하고,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런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 부담스러웠을 일이다.
매 신, 매 테이크 마다 지금가지 했던 어떤 작품보다도 밀도와 집중력이 필요했다. 정말 조심스러웠다. 무엇보다 넘치게 표현되는 것을 주의했다. 왜곡과 미화를 가장 경계했기에 제 자신을 제어하려 했다. 마치 제 3자의 입장에서 저를 바라보듯 관찰하며 연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위인을 알리는 작업이었다. ‘헛발질은 안 돼!’라는 마음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박열을 봤을 때 허황된 이상주의자로 보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박열’은 생각과 사상을 늘어놓을 뿐, 감정을 크게 표출하는 일이 드물다. 뭐랄까? 선비의 느낌이랄까?
박열이 가진 뜨거움과 울분을 느끼지만, 그것을 단순한 표출로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리를 내지르고, 감정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배우로서 캐릭터의 감정만 보여주는 것은 작품에 대한 도리가 아니었다.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전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연기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그것과 동시에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연기했다.
그런 진정성을 그려내고자 박열의 단식투쟁처럼 금식을 했다.
한 달 반 정도 금식했던 것 같다. 단백질 쉐이크 정도만 먹으면서 움직였다. 물론 힘들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없이 박열을 연기한다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식을 마치며 처음 먹었던 음식은 떡볶이였다. 현장에 분식차를 불러주셨다. 정말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였다. 탄수화물의 강렬함이란, 정말 뇌를 자극할 정도의 맛이었다.
일본어 대사 안에 연기를 담는 것도 어려웠을 일이다. 그런데 일본어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웠다는 평이 많았다.
정말 다행이다. 하하. 정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이준익 감독님이 영화 속 일본어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쓰셨다. 고증을 철저히 거친 작품이니 일본어가 어색하면 안 될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을 넘어 일본인이 봐도 집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셨다. 전 일본어로 간단한 인사 밖에 할 줄 몰랐다. 그 안에 감정을 넣어야 했다. 한국어로 연기하는 것도 힘든데, 일본어라니…, 정말 난감했다. 배우들 중 유일하게 저만 일본어 초보자였다. 부담도 됐지만 덕분에 다행이었다. 최희서, 김인우 등 여러 배우의 가이드를 녹음했다. 그 가이드를 반복해서 듣고 촬영 내내 체크 받았다. 그분들 덕분에 그만큼의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이준익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님하고 있으면 유쾌하다. 함께 하고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이셨다. 왜 감독님과 작업한 배우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최희서 씨와의 호흡은? 기자간담회에서 극찬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동주’의 최희서부터 기억하지만, 전 예전 단편영화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 작품에서 연기를 너무 잘했다. 이번에 함께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심할 필요가 없었고, 기대가 매우 컸다. 촬영에 들어갔을 땐 제가 선배된 입장에서 도와줄 부분이 있었을텐데, 오히려 제가 의지를 했다. 같이 연기하면서 호흡이 너무 좋았다. 박열과 후미코,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아도 빠져들 수 밖에 없도록 표현된 원동력이었다.
박열과 후미코,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뜨겁다. 몸과 마음을 넘어 이상이 통하는 연인이라는 것이 정말 강렬하게 다가왔다.
맞다. 저도 시나리오에서는 그런 뜨거움을 못 느꼈었는데, 촬영하면서 빠져들었다. 보통 남녀간의 사랑을 그려낸다면 손을 잡고 포옹하는 식의 접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신념과 사상으로 출발을 한다. 여느 커플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박열이라는 인물은 가네코 후미코 덕분에 성장했고, 영화 속 재판을 이끌어냈다고 본다. 제가 훗날 어떤 사람을 만날 지는 모르겠지만,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신의를 가지는 관계가 정말 뜨거웠다. 그런 사람을 평생 동반자로 만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