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군함도' 이정현 "총 쏘는 위안부 피해자, 카타르시스였다"

2017-08-04     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표현하자니 어딘가 억울하다. 영화 ‘꽃잎’(1996)으로 데뷔한 이래 배우로서 충만한 내공을 펼쳐왔던 이정현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여배우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으니, 겸업의 이미지를 더하기가 뭔가 아쉽다.

하지만 가수로서의 이정현도 정말 대단하다. 1999년에 발매한 앨범을 통해 대한민국을 테크노 신드롬에 빠뜨렸다. 지난 2015년 화제 속에 방송 됐던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90년대를 대표했던 가수로 당당하게 출연했다. 어쩌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가장 맞아 떨어지는 사전적 정의가 바로 이정현이겠다.

최근 제니스뉴스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이정현을 만났다. 이번에 만난 이정현은 ‘배우 이정현’이었다. 이정현은 영화 ‘군함도’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로서 강제 징용에 끌려간 ‘말년’을 연기했다. 멀티 캐스팅 작품이고, 많은 자본이 투입된 올 여름 최고의 상업 기대작이었지만, 이번 역시 가볍지 않은 캐릭터를 선택했던 이정현이었다.

'스플릿’을 통해 밝은 영화를 찍나 했더니,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묵직한 영화로 돌아왔다.
‘군함도’는 준비할 때부터 조심스럽고 무거웠던 작품이다. 언론시사회 전날도 저만 잠을 못 잤는 줄 알았는데, 다들 마찬가지였다. 워낙 예민한 소재고, 민감한 소재의 작품이다.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있지만, 본래 이정현이라는 배우의 필모가 상업적인 흥행에 크게 연연해왔던 게 아니다.
맞다. 스코어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다. 만일 그 쪽에 예민했다면 다양성 영화는 하지 않았을 거다. 순수하게 영화가 좋아서 참여하는 스타일이다. 배우들이 즐기면서 촬영해야 관객들에게 메시지도 전달된다. 그래서 상업 영화와 다양성 영화를 병행하는 것 같다.

그럼 ‘군함도’라는 소재는 무거웠지만 좋은 소재였다?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님과 작업한다는 게 굉장히 영광스러웠고, 소재도 신선했다. 하지만 소재가 가진 무게는 촬영 때도 그랬고, 개봉 이후에도 크게 느껴진다. 일본과 군함도에 대한 문제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보니 더욱 그렇다. 잡음이 많았던 유네스코 등재 문제도 결국 아직까지 일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관객들의 평가가 갈리는 것도 그래서 일 거다. 군함도라는 소재는 실화지만 그 안의 사건은 허구다. 저희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상업 영화를 찍었다. 관객 분들도 영화로 이 작품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말년’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있다면?
현실성 있게 그려내는 부분이 좋았다. 위안부 피해자를 그린 영화들을 보면 항상 일본에게 당하고, 슬퍼하고, 울다가 끝났다. 하지만 말년은 달랐다. 소희에겐 엄마였고, 다른 위안부 여성들에겐 리더였다. 군함도 탈출 때는 총을 들고 당당히 일본군에 맞선다. 뭐랄까? 원더우먼 같았다.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강인한 부분이 좋았다.

군함도도 그렇지만, 위안부 피해자라는 소재는 더욱 민감한 부분이다.
저도 그랬고, 류승완 감독님도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실제 있었던 분들의 이야기라 더욱 예민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말년’이라는 캐릭터의 진정성은 칠성과 유곽에서 나누는 대화에 담겨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눈물이 났던 슬픈 장면이었다. 대본 리딩 때도 제가 느낀 감정으로 읽었더니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가 울먹일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뒤 감독님이 다큐멘터리를 보내주셨다. 북한에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인터뷰였다. 

말년 캐릭터에 힌트가 됐는지?
다큐 속 할머니는 아픈 과거의 슬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게 더욱 슬퍼 보였다. 그래서 저 역시 연기톤을 바꿨다. 감독님도 제 의견을 존중해줘서 감사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영상을 보는 시간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만약 제가 슬픈 감정만 가지고 연기를 했다면 기존 위안부 피해자의 역할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군함도’에서의 말년은 총을 쏘고, 일본군을 죽인다.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말년’과 ‘칠성’의 유곽대화신에는 같은 조선인에 대한 배신감도 느껴진다.
이번에 영상들을 보면서 알게 된 건 일본군이 나쁜 만행을 저질렀지만, 조선인에게 속아서 위안부로 끌려간분이 정말 많았다는 거다. 동네 이장, 면장이 아무 것도 모르는 여성들을 속여 일본에 보냈다고 한다. 공장에 취직하는 거라며 위안부로 보낸 거다. 물론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도 ‘군함도’를 통해 알릴 수 있어서 기뻤다. 류승완 감독의 용기인 거다. 그런 시도와 도전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확실히 말년은 강한 캐릭터다. 욕도 잘하고 사투리도 억세고.
말년은 원래 서울말을 쓰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서울말로 아무리 대사를 강하게 해도 예뻐 보였다. 그래서 감독님께 사투리를 제안했다. 욕과 사투리는 정말 힘들었다. 촬영장에 사투리와 욕 선생님이 계셨었지만, 제가 그 부분에 대해 후시녹음을 두 번이나 했다. 완벽하지 못했다는 거다. 후회가 남는 지점이다. 욕을 차지게 했어야 했는데, 제가 하면 어색하다고 했다.

소지섭과 많은 호흡을 맞췄다. 특히 첫 만남부터 묵직했다.
첫 만남? 아~! 그건 너무 야했다. 하하. 오빠를 처음 만나 “안녕하세요”라 인사하고 했던 연기가 바로 그 신이었다. 한 번에 OK가 나와서 다행이다. 소지섭 씨는 정말 칠성과 비슷했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태도가 좋기로 유명한 분인데, 츤데레 칠성 그 자체로 등장했다. 연기는 상호작용이다. 덕분에 저도 말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소지섭 씨랑은 리허설부터 잘 맞았다. 테이크를 많이 간 것이 없었다. 정말 행운이다. 게다가 전 액션이 처음이었다. 단역 배우 100명이 엄청난 분장과 함께, 폭발이 터지고, 와이어에 감겨 있는 살벌한 현장이었다. 거기다 총은 어찌나 그리 무거운지, 장전도 제대로 안 될 정도였다. 그래서 걱정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소지섭 씨가 액션을 많이 했다 보니 정말 잘 이끌어줬다. 심리적인 안정이 됐다. 덕분에 별 사고 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

체력에 부침은 없었나? 본래 마른 몸에 다이어트를 더했다.
다이어트는 다같이 했다. 많은 조단역 연기자들이 10~20kg씩 뺐다. 7~8kg 뺀 저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일반 식단 차량과 살 빼는 차량이 따로 있었다. 고단백에 야채 저염식으로 식단 관리를 했다. 정말 전 ‘군함도’의 주인공이 조단역 분들이라 생각한다. 현장에 가장 먼저 나와서, 가장 늦게까지 계시는 분들이었다.

사실 다이어트를 제안드렸던 건 실제 피해자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혹사 당해서 많이 말라있었다. 당초 남자 배우들만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빼자고 했지만, 저도 책임감을 느껴 제안을 드렸다. 좋아시면서도 미안해하셨다. 마지막 노출신이 끝나자 강혜정 대표님이 “꽃등심 먹자”며 내려오셨다. 2~3인 분은 먹은 것 같다. 밥도 많이 먹고, 라면도 먹었다.

원체 슬림한 몸이라 식탐이 없을 거 같은데.
저 라면이랑 치맥 너무 좋아한다. 요즘 TV에 먹방이 많아 너무 힘들었다. 라면 사진을 보면서 자고, 방울토마토 먹으면서 “이건 치킨이야”라고 주문을 외웠다. 하하.

큰 사고는 없었지만 자잘한 부상은 있었을텐데.
보통 몸이 다치면 샤워하다가 알게 된다. 크게 다친 건 없었지만 타박상이나 찰과상, 화상을 보면 뿌듯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다시 현장에 나가면 아프질 않았다. 그 정도로 현장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했고, 다급하게 돌아갔다. 정말 그런 현장을 언제 다시 만날까? 배우로서 축복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천국 같았다. 그래서 아프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촬영 현장이었다.

확실히 스케일이 큰 영화는 그런 부분이 매력이다. 다양성 영화와는 또 다른 지점이다.
사실 저 같은 배우가 다양성 영화를 하면 그 작품에 투자금이 몇 천만 원이라도 더 올라간다. 그래서 더 병행을 하는 걸 수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 빛을 못 보고 있는 좋은 배우들이 많이 있다. 그런 배우들이 다양성 영화를 통해 발돋움 한다. 다양성 영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