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변진희 기자] 무려 2년 만에 만들어진 루시드폴의 새 앨범이다. 특별히 루시드폴은 제주도에서 생활하며 앨범 작업을 위한 공간을 손수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사, 작곡, 편곡, 녹음, 믹싱 모든 작업을 도맡아 했다.
특별한 것은 루시드폴이 단순히 음악만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비롯해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지으며 경험한 다양한 일상을 에세이와 사진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창작물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 제니스뉴스와 루시드폴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안테나뮤직 사옥에서 새 앨범 ‘모든 삶은, 작고 크다‘ 발매를 기념한 인터뷰로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루시드폴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의자에 앉아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안녕,’을 라이브로 들려줬다. 잔잔한 기타 사운드에 감미로운 루시드폴의 목소리는 곡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렸다.
“곡 작업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전처럼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면서 곡을 쓰지 못했죠. 멀쩡한 정신에서 곡을 써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곡 작업을 해서 음반을 낼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곡을 다 쓰고 나서도 계속 걱정은 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여름에 작업을 끝내고 그 다음부터 녹음에 들어갔어요. 제주도에서 계속 녹음을 했고, 드럼이나 피아노 녹음은 서울에 올라와서 했어요. 너무나 원하는 사운드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찾았어요. 어떤 악기는 사기도 했고요”
앨범 작업에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루시드폴은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대중에 들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먼저 루시드폴은 녹음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기타를 만들 때 쓰는 음향목으로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녹음과 믹싱을 했다.
“지금 제주도에서 지낸 지 4년이 넘어가는데요. 처음에는 땅도 없고 땅을 살 돈도 없어서 다른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어요. 창고도 없었고요. 너무 힘들어서 다음에 내 밭이 생기면 꼭 창고는 하나 지어야지 생각했어요. 그러다 제주도에서 알게 된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들의 도움으로 창고를 짓게 됐어요. 4평 정도로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2층은 녹음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 특별한 공간에서 녹음하고 곡을 쓰면 너무 좋겠더라고요. 스튜디오처럼 완벽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작업을 했어요”

그렇게 ‘모든 삶은, 작고 크다’라는 이름 안에 아홉 곡을 채웠다. 고민 끝에 결정한 타이틀곡은 ‘안녕,’이었다. 팬들에게 2년 사이의 안부를 묻고 전하는 노래다. 친구 이상순의 일렉 기타 연주와 이진아의 피아노 연주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60년대의 세미 할로우 베이스, 70 년대의 드럼, 80 년대의 업라이트 피아노 소리가 2017년 루시드폴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제가 타이틀을 고르질 못 하겠더라고요. 이 곡을 쓸 때도 ‘타이틀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없었어요. 물론 앨범의 첫 곡으론 하고 싶었어요. 제 음반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쓴 편지 같은 곡이거든요. 마침 샘김의 노래를 들었는데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봤더니 진아가 쳤더라고요. ‘그래 진아구나’ 생각을 하고 연락해서 부탁했어요. 진아가 너무 착한 천사예요. 그냥 건반 못 치는 사람처럼 쳐달라고 했더니 진짜 그렇게 쳐줬어요”
곡의 가사는 단순하다. 그래서 더 와닿는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 /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 다시 이렇게 노래를 부르러 그대 앞에 왔죠 / 지난 두 해 사이 참 많은 일들을 우린 겪어온 것 같아요 / 누구라도 다 그랬을 것 같기는 하지만”라는 도입부로 인사말을 전한다.
“안테나 공연을 했는데, 그때 하이터치회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공연을 마치고 팬분들께 ‘반갑습니다’하면서 인사를 했는데요. 그때 팬분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하이터치를 하는데 좋은 거예요. 처음에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상을 입기도 했었어요. 책에도 그런 내용을 적었고요. 그 시기가 지나고 안정이 되고, 또 관객들도 만나면서 ‘아 내가 사람을 좋아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가사를 썼어요”
루시드폴은 현대식의 화려한 사운드 대신 아날로그 사운드를 택했다. 스티브 스왈로우의 베이스 톤을 연구했다. 결국 스티브 스왈로우가 초기에 쓰던 68년형 깁슨 베이스를 구했다. 건조하지만 감칠맛 나고 따뜻한 톤의 드럼 사운드를 위해, 2년 가까이 유튜브를 헤매고, 지인들을 조르다 70년대 야마하 드럼 세트를 찾아내 녹음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비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이 왜 필름 카메라를 다시 찾을까요? 어떤 분들은 DSLR로 찍고 요즘은 핸드폰으로도 너무 잘 찍을 수 있잖아요. 화질이 너무 좋아졌는데, 더 좋아질 것이 없다는 포화감을 느꼈을 때 ‘어쩌면 우리가 사진을 보고, 음악을 듣고 감동 받았던 것의 본질은 여기에 없었는지도 몰라’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좋은 사운드는 들을 만큼 들은 것 같아요. 재미가 없달까요. 그래서 더 좋은, 특별한 게 없을까 생각하니 예전의 악기를 쓰게 됐어요. 오히려 예전의 사운드가 신선하고 새로웠어요. 저는 그 투박한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특별히 CD에만 수록된 곡이 있다. ‘밤의 오스티나토’은 음반에만 수록된 아홉 번째 트랙 곡으로 반딧불이가 숲속을 가득 메웠던 여름밤의 기억이 녹아 있는 노래다.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와 목소리의 두 단선율이 고요하게 흘러가고, 11/8박자와 12/8박자가 뒤섞여 노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루시드폴은 이 곡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이 노래를 들어보시면 풀벌레 소리가 굉장히 많이 들려요. 작업을 하다 보면 24시간 내내 벌레 소리가 들리거든요. 하루는 소리가 너무 예뻐서 창문을 열어놓고 마이크로 녹음을 했어요. 그 소리를 그대로 담았어요. 음반을 사는 분들께만 특별한 선물이 될까 싶었어요”

루시드폴은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넓게 전하고 싶었다.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루시드폴은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은 글을 책으로 만들었고 직접 찍은 사진들을 함께 포함해 책과 앨범을 함께 내놓았다.
“팬분들이 선물해준 만년필이 많았어요. 그걸 꺼내서 쥐어보니 ‘이거로 글을 오래 써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400자, 800자, 1600자 원고지를 사서 쓰기 시작했어요. 멋있어 보이려고 원고지에 썼던 건 아니고요.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면 목이랑 어깨가 뭉치더라고요(웃음). 곡의 가사가 다 나오고 글도 나오고 나서 보니 연결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노래랑 글이 정말로 하나가 될 수 있겠단 느낌이 들었어요. CD에 들어 있는 음원과 음원사이트에 있는 곡의 순서가 달라요. 음원은 음원만 들으시는 분들이 좋을 것 같은 흐름으로 배열했고, CD를 사는 분들은 책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은 느낌으로 다르게 배열했어요”
루시드폴은 현재의 삶에 굉장한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다. 생명공학이라는 최첨단 학문을 전공한 그는 현재 가장 아날로그한 삶을 살고 있다. 루시드폴은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좋다. 그때도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서 했고, 지금은 지금의 일이 좋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삶에서 얻는 게 너무 많아요. 지금의 노래, 글이 시골에 살고 농사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건 확실해요. 농장에서 풀, 나무, 벌레, 반딧불과 살아가는 삶이 저를 바꾸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를 영화로 비유하자면, 저는 픽션이 아닌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사진=안테나
저작권자 © 제니스글로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