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기록적인 한파가 매일 일기예보를 장식하고 있지만, 영화 '1987'의 배우 김윤석은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이 가장 뜨거웠던 그때를 작품 안에 담았고, 그 영화는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고 있다. 김윤석의 올 겨울이 춥지 않은 이유다.
여러 배우가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힘을 쓸 때 김윤석은 '박 처장'이라는 극중 최고의 악역을 담당했다. 故 박종철 열사의 동문이기에 더 아쉬울 수도 있던 일이다. 하지만 6월 항쟁 당시 최일선에 서 있던 배우 우현이 이번 영화에서 경찰 총수인 치안본부장으로 열연한 것 처럼 반전의 재미도 줄 수 있는 일이다.
아이러니는 다른 의미로 계속 된다. 故 박종철 열사와 故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학생운동이 더욱 거세졌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조치로 6월 항쟁이 발발했다. 나쁜 권력과 슬픈 사건을 통해 그렇게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성장했다. 영화 '1987'도 그랬다. 김윤석이 그 시대의 거대 권력으로 서 있었기에 '1987'은 완성될 수 있었다.
최근 제니스뉴스와 김윤석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속 무서운 인상은 역시나 이미 휘발된 상황, 기분 좋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인터뷰 현장을 이 자리에 전한다.

올 겨울 뜨거운 영화로 자리잡고 있다. 인터뷰 때도 눈물을 흘리셨단 이야기로 이미 소문이 돌았다.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안 하려고 한다. 하하. 제가 볼 땐 갱년기 같다. 정말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건 감독님 탓이 큰 것 같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만들어 낸 사람이다. 가장 오랜 시간 ‘1987’과 마주한 사람이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흘려버렸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간 영화로 그리지 않았던 이야기다. 아니 그리지 못했다가 맞겠다.
가장 소중한 이야기이지만 어려운 이야기다. 유가족과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 볼 영화다. 반대로 극영화로서의 재미도 담아야 했다. 그래서 완성도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
유족들하고 계속 교감했던 걸로 알고 있다. 故 박종철 열사와는 학교 동문이라는 인연도 있고.
2017년이 박종철 열사의 30주기였다. 1월 14일에 전국에서 추모행사를 하는데 저와 감독님은 부산 광복동에서 참석했다. 그 자리에 아버님이 참석하셨는데, 인사를 드렸다. 제가 또 고등학교 후배다 보니 너무나 좋아하셨다. 누님께도 인사를 드렸는데 “가장 강력한 악역을 한다. 악역이 없으면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형님께선 “그런 악역이라 마음 고생이 심할텐데”라며, 오히려 제 걱정을 하셨다.
맞다. ‘박 처장’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여러 악역 중 한 명이었다.
실존 인물인데, 이 세상에 없는 인물 같다. 자료가 별로 없다. 대공기관 자체가 자료가 별로 없다고 한다. 정말 어떻게든 찾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사진을 찾아 냈다. 박 처장을 만났던 사람들이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이었다. 작가 선생님이 방송국 PD 출신이다. 덕분에 방대한 자료 수집망이 있었다. 1950년에 월남을 했지만 30년이 지나도 평안남도 사투리가 많이 남아 있다거나 하는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외견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분장 감독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머리도 올백으로 넘겨 M 라인을 만들었다. 하관도 권력의 아집을 나타내고자 마우스피스를 물었다. 몸에 패드도 두껍게 댔는데, 이게 겨울엔 따뜻하고 좋았는데, 여름엔 죽을 맛이었다.
아니, 이번 연기로 가장 극찬 받는 것이 평안남도 사투리인데, 마우스피스를 물고 대사를 했다는 걸까?
맞다. 마우스피스를 물고 했다. 정말 침 흘리면서 연기 했다. 하하. 그저 연습 뿐이었다. 죽도록 한 것 같다.

‘박 처장’ 개인으로도 악한 사람이지만, 결국 그 시대 권력층의 상징이었다.
결국 장준환 역할이 또 이런 역할을 줘버렸다. 하하. 그런데 참 특이한 구조다. 안타고니스트가 가운데 서 있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밝은 사람들이 개인으로 와서 박 처장과 붙는다. 마치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바위가 주저 앉는다.
맞다. 6월 항쟁은 국민 하나하나가 달걀로 바위를 때려 이뤄낸 것이다.
시나리오 초고 땐 갈등도 했다. 거기엔 사건만 구조적으로 엮어있었다. 하지만 최종본의 완성도는 너무 뛰어났다. 그런 시나리오에 장준환 감독이라면 이 영화를 해낼 수 있다고 믿음이 갔다. 장준환 감독은 섬세한 걸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정말 보약을 한 재 지어줘야 할 거 같다. 감히 말하자면 ‘1987’은 장준환 감독의 모든 걸 녹인 작품인 것 같다.
“탁 치니까 억”을 직접 연기한 소감은?
사실 연기하기는 어려웠다. 말도 안 되는 대사고, 그 상황이 어땠을 지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여러 뉘앙스를 해봤다. 영화 속에 담긴 추임새는 첫 테이크에서 나왔다. 감독님이 동의를 구하는 추임새가 너무 좋다고 해서 결국 그 방향으로 갔다. 나중에 모니터를 보면서 정말 다들 뒤집어졌다. 넌센스 중의 넌센스를 그려냈다고 생각된다.

‘추격자’ ‘황해’ 이후 또 다시 하정우를 만났다.
언제나 봐도 즐거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현장에서 만나니까 얼마나 반가웠을까? 극 중에선 두 번 정도 마주친 거 같다. 그 최 검사 등장할 때 술병 핥는 신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하정우 씨는 무거운 우리 영화의 숨통 같은 역할이다. 너무나 잘 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화이’ 때 아들이었던 여진구 씨는 어땠나.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중 3때 봤었는데 이젠 다비드상이 됐다. 너무나 수려하다. “군대 언제 가냐”고 물었다. 하하. 부모님을 잘 만난 거 같다. 발육이 남다르다. 배우로도 참 기대된다. 선 굵은 젊은 배우로 독보적인 위치에 설 것 같다.
고문실에서 유해진 씨와 마주하는 신은 숨 막힐 정도였다.
다행히도 제가 직접 고문을 하지 않았다. 고문실은 보는 순간 쇼크가 왔다. 정신이 아뜩아뜩해졌다. 정말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얼른 나가고 싶었다. 두 번 다시 존재해서는 안 될 장소다. 그 신을 찍고 나서 둘 다 “수고했다” 정도의 이야기 밖에는 못할 정도였다.
2017년의 시작은 2016년 말에 개봉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로 말랑말랑했던 것 같은데, 막상 2017년 동안엔 무거운 작품으로 관객들과 마주했다.
그렇게 됐다. 저도 다양성에 관한 목마름은 언제나 있다. 할리우드엔 7~80살 먹은 배우들이 맹활약 하고 있다. 나이를 떠나 여성 배우들도 다양한 연기를 해내고 있다. 메릴 스트립은 정말 멋지다. 전 로멘틱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한다. ‘러브 액츄얼리’는 볼 때 마다 기분이 훈훈해 진다. ‘바다마을 다이어리’ 같은 작품도 좋다. 보고 나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작품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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