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그것만이 내세상' 박정민, 굳이 꼭 그렇게까지 해줘서 고마운
[Z인터뷰] '그것만이 내세상' 박정민, 굳이 꼭 그렇게까지 해줘서 고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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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지난 2016년 2월 영화 '동주'의 언론시사회가 있던 날,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 얼굴을 비춘 배우 박정민은 눈물을 주체 못하고, 말을 제대로 있지 못했다. 자신이 연기했던 송몽규 열사에게 죄송스런 마음에 비춘 눈물이었다. 지금은 중국의 땅이 된 간도에 묻혀있는 송몽규 열사의 무덤까지 다녀왔던 박정민이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배역과 마음의 소통을 이룬 후 연기하는 배우였다.

'동주' 이후 각종 시상식에 이름을 올린 박정민이었지만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오랜 무명의 터널을 지나온 박정민이었지만, 연기를 마주하는 자세는 오롯했다. '그것만이 내세상'의 진태의 연기를 앞둔 박정민은 그의 진심을 소통하기 위해 봉사활동에 나섰다. 서번트 증후군의 피아노 천재 '진태', 그리고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박정민의 성정상 이런 이야기가 기사로 언급됨을 반기지 않음이 당연했다. 허나 미담은 널리 나눌 수록 세상은 더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그가 활동했던 학교 측에서도 "오히려 도움이 되고, 감사한 일"이라고 응원했다. 박정민과 그의 친구들에겐 좋은 추억이자 값진 시간이었으며, 그것을 그의 발언과 연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관객들 또한 축복이었다. 그 모든 것은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닿은 후 연기를 한 배우 박정민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기에 앞서 행하는 일련의 경험들을 "제가 굳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연기가 되는 배우여서 그런 것 같다"고 겸허히 낮추는 박정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안다. 그가 굳이 꼭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박정민과 함께 했던 여러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 풀어본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제가 나오는 영화를 처음 보면 늘 기분이 안 좋다. 실수를 찾아보는 버릇이 있어서 그렇다. 어제도 그 버릇이 발동됐는데, 1시간 반 정도 지나니까 영화를 보게 됐다. 제가 ‘동주’ 때도 많이 울었었는데, 그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예전 인터뷰 때 엄마한테 잘 해야하는데 생각만큼 안 된다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영화 보고는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시사 끝나고 집에 들어가니까 12시가 넘어서 이야기를 못했다. 그래서 오늘 전화하려 했는데, 여전히 못했다. 하하.

시나리오로 처음 마주했던 ‘그것만이 내세상’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전 병헌 선배가 이 영화를 하기로 결정한 후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이미 병헌 선배가 한다고 하시니 정말 호감 넘치는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봤다. 제가 시나리오를 한 번에 못 보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재미있었다. 놓치면 속상할 것 같았다. 바로 “제가 하고 싶다”는 요지로 장문의 문자를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하고 싶던 영화였는데, 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나?” 싶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차!”한 이유는 진태가 결코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였기 때문일 터다. 먼저 피아노부터 이야기하자. “CG 없이 간다”는 말에 처음 들었던 생각은?
‘당연히 무리’라고 생각했다. 전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연습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을 연습하는데, 당연히 안 됐다. 그래서 감독님께 “CG를 써야하지 않을까?”라는 말도 했었다. 하지만 제가 뱉어논 말이니까 열심히 해봤다. “아무리 감쪽같이 CG를 쓴다고 해도 미세하게 마이너스가 있을 거다”라는 감독님 말씀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다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 때문이다. 그 분이 다 해버렸기 때문에, “배우가 할 수 만 있다면 직접 하는 게 가장 베스트”라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저 역시도 그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CG를 최후의 수단으로 놓고 연습했다.

그렇게 해서 첫 연주는?
지민이 누나와 함께한 ‘헝가리 무곡’이었다. 그ㅍ곡은 지민이 누나와 자주 만나서 연습했었다. 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쳐냈다. 그랬더니 감독님께선 “오 되네?”라면서, 그 뒤로는 CG의 C도 안 꺼내셨다.

알고 보니 연기 보단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게 아닐까?
하하. 악보도 못 보고, 계이름도 못 보니까, 하나하나 한글로 써놓고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간신히 몇몇 곡을 치게 됐을 때 “이 정도 속도는 정말 빠른 거”라는 칭찬은 들었다. 하지만 빠를 수 밖에 없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프로를 제외하고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 중에서는 시간 투자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재능이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또 다른 숙제는 바로 서번트 증후군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연기의 어려움을 떠나 접근 자체가 조심스러울 일이다.
처음엔 ‘서번트 신드롬 범주에 계신 분들의 마음을 이해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그 분야를 수십년간 연구하신 분들도 결과를 내지 못한 일이다. 짧은 몇 개월로 이해한다는 건 무례였다. 제 연기를 그분들이, 그 가족들이 봤을 때 불쾌하면 안 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래서 오버도 하면 안 됐고, 가짜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모잘라도 안 됐다.

그런 마음을 안고 봉사활동도 다녀왔다.
그분들을 관찰하고자 했던 건 아니다. 존중의 의미로 제 자신을 다잡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 반을 맡아서 활동했다. 여러 분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저와 함께했던 친구들이 가장 진태와 닮아 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건 그 아이들이 너무 잘 웃는다는 거였다. 왜 웃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행복하게 웃는다. 가끔 저를 바라보며 ‘씩~’ 웃을 때도 있다. 사람들은 장애라고 하면 동정도 하고, 우울한 느낌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데, 그들과 마주하고 친구라고 생각하니 순수하고 행복한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동주’ 때도 송몽규 열사의 묘소를 참배했었다. 자신의 마음으로 먼저 연기 대상과 소통하는 이유가 있을까?
제가 굳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연기가 되는 배우여서 그런 것 같다.

배우 이야기를 하자면, 연기라면 두말 할 것 없는 이병헌 씨와 호흡을 맞췄다.
갓병헌이다. 제 마음 속에 있던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선배님은 딱히 어떤 디테일한 조언을 안 해주신다. “여기에선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정도의 이야기만 하신다. 그런 부분들에서 어떤 것을 느꼈냐면, ‘한참 어린 후배인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배우로 생각해주신다’는 거 였다. 저는 그 마음이 저는 느껴져서 너무 감사했다. 연기적인 면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매 회차 보고 배우고, 뒤에서 받아 적었다. 정말 많이 배웠고, 그걸 써먹어 보려고 했는데, ‘아 이건 안 되는 거구나’라는 벽도 느꼈다. 하하.

이병헌 씨는 박정민 씨에 대해 “말수가 없는 과묵한 친구”라고 하길래,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 조용한 성격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제가 낯은 많이 가리는 편이다. 말실수 할까봐 조심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는 많이 여쭤봤던 것 같은데, 선배님께서는 저를 내성적이라고 느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홍보하며 돌아다니면서 아마 새로운 저를 느끼셨을 거다.

윤여정 선생님이 박정민 씨를 아끼는 게 느껴지던데.
제가 윤여정 선생님을 짝사랑 했다. 선생님이 정말 달변가시다. 저도 모르게 컷 이후에 선생님 옆에 가 있었다. 말씀하시는 거 듣고, 웃고, 그랬다. 제가 조용히 있으니까 더 좋아해주신 것 같다. 가만히 있으니까 조금 짠해 보이셨는지 아껴주셨다.

‘변수정’ 역의 최리 씨도 인상적이었다.
최리는 오디션을 보고 우리 영화에 합류했다. 3차 오디션 때 병헌 선배와 슬쩍 가서 봤는데, 나중에 “누가 제일 변수정에 어울리냐”라는 물음에 둘다 “최리”라고 답했다. 연기력이 엄청 뛰어나서도 아니고, 그냥 서있는 자체로도 수정이와 흡사했다. 그리고 너무 열심히 했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촬영 땐 중요한 신을 앞두곤 리가 긴장을 많이 했다. 촬영 전에 지민이 누나와 제게 SOS를 치길래 만나서 긴장도 풀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촬영 당일에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자신이 준비한 걸 다 못 꺼내놓다가 테이크가 거듭되면 될 수록 신을 가지고 놀았다. 아마 결과물을 보면 본인도 뿌듯해 할 것 같다.

진태를 연기하면서 의상도 직접 준비했다고 들었다.
대부분 의상팀에서 준비한 옷인데, 진태가 입은 목이 다 늘어진 옷이 저희 아버지 옷이다. 새옷을 입었는데 진태의 느낌이 안 살아서 목이 늘어난 실제 입던 옷을 가져왔다. 제 옷 중엔 그런 옷이 없었는데, 무심코 안방에 가서 장농을 열었더니 아버지 옷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 안경도 사실 제가 고른 거다. 안경집에 가서 사장님께 허락을 구한 후 50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 컨펌 받았다. 안경점 사장님께 죄송해서 안경을 하나 맞췄다. 사실 저는 눈이 굉장히 좋다. 하하.

진태의 대사 중 가장 많은 비율이 바로 “네”라는 대답이다. 각 대답마다 뉘앙스가 달라야 하는데, 수월치 않았을 것 같다.
힘들긴 했다. 그분들을 연구한 책이 있는데 그들의 “예스”는 “예스”가 아니라고 했다. 못 알아 들어도 “네”, 싫어도 “네”, 좋아도 “네”를 한다. 그냥 가장 쉬운 감정표현이 “네”인 거다. 그래서 제 대사 보다는 상대방의 대사를 더 분석해서 대답을 해야했다. 같은 “네”이지만, 스피드도, 톤도, 호흡도 달라야 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사실 그와 비슷한 유형의 연기는 앞서 여러 선배들이 보여준 바 있다.
제가 ‘말아톤’을 정말 좋아했다. 조승우 선배님 외에도 해외에도 많은 훌륭한 배우들이 비슷한 연기를 했다. 하지만 전 그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일부러 작품을 찾아보지 않았다. 아마 봤다면 그들의 연기를 피해가려고 했을 것이다. 선배들도 충분한 연구를 거쳐 연기 모델을 가지고 나오셨던 걸텐데, 그걸 피해 가겠다고 하다가 제 풀에 꺾이고 넘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책이나 다큐멘터리, 유튜브 영상들을 참고 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갈라쇼 연주신이다. 카메라, 음악, 표정 연기까지 오롯하게 진태의 세계를 표현했다.
제작진에게 감사한 게 그 신만 3일을 찍었다. 그 음악을 가장 오래 연습했던 것 같다. 진태와 같은 서번트 증후군의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상을 봤다. 먼저 인터뷰 영상을 보는데 낯선 사람과 한 자리에 있어서인지 표정이 없었다. 그 이후 피아노를 치는데, 그 아이가 ‘씨익~’하고 웃었다. 피아노 앞에서 안정을 찾고,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 영상을 감독님께도 권해드렸다. 그런 콘셉트로 촬영에 임했던 것 같다.

피아노 연주가 숙제였던 작품인 만큼 그 신을 찍고 만감이 교체했을 것 같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 신을 찍고 나면 후련할 것 같았다. 물론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아쉬운 마음도 컸다. 한 회차만 남았다는 게 섭섭했다. 떠나 보내야한다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박정민을 기다리는 관객들은 괜찮다. ‘염력’ ‘변산’ 등 많은 작품들이 남아있다. 무명의 시간으로 오랜 시간 고생했던 만큼 드디어 꽃이 활짝 피는 것 같다.
‘동주’라는 영화가 준 선물 같다. 확실히 비교적 바빠지긴 했다. 실감이 잘 안 된다. 제가 무슨 천만 영화에 나왔던 것도 아니고, 유명한 드라마에 나왔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불안할 때도 있다. 일이 없었을 때 했던 많은 고민들, 그리고 그 힘듦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는 불안이다.

그래도 ‘변산’을 찍으면서 힐링 받았다. ‘변산’은 행복하게 영화를 촬영하고 싶어서 참여한 작품이다. 사실 모든 신에 제가 나오다 시피 하는, 할 게 많은 영화다. 덕분에 제가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웠던 영화다. 행복하긴 한데 몸이 쑤시는? 그래도 이준익 감독님 덕분에 행복하게 촬영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뒤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라고 해주셨다. 정말 이준익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쓰러졌었을 거다. 너무나 감사드린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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