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정말 후련해 보였다. 여러가지의 이유였을 거다. 촬영을 마친 후 개봉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7년의 밤'이다. 개봉이 연기되는 이유에 대해 안 좋은 말도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7년의 밤'이라 7년 걸려 나온다"는 말까지 있었으니, 배우로서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7년의 밤'은 거짓말처럼 원작 소설이 출간된 지 7년 만에 영화로 개봉했다. 은막이 걷힌 '7년의 밤'을 보고 나면 장동건의 후련함이 또 한 번 이해된다. 그만큼 장동건은 완벽한 연기를 해냈다. 난이도가 높은 캐릭터였기에 배우로서 느낄 뿌듯함과 후련함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을 일이다.
장동건이 연기한 '오영제'는 누가 봐도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다. 다른 의미로 배우라면 누구나 욕심낼 만한 역할이라는 이야기다. 타인에겐 차갑지만 복수를 위해 자신을 태워내는 '오영제'를 장동건은 모자르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딱 그 선을 지켜내며 연기했다.
그런 오영제를 떠나 보내는 장동건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 대해 아쉬움이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활짝 웃는 모습에서 그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영화 '7년의 밤'의 이야기와 함께 최근 1인 기획사를 차리며 또 다른 일에 도전하는 설렘까지, 그의 후련섭섭한 속내를 이 자리에 전해본다.
언론시사 때 영화에 대해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느껴졌다.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정말 다 해본 거 같다. 열심히 찍어 놓은 다른 버전들이 많았는데, 그게 쓰이지 않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연기해 볼 수 있다는 건 요즘 시스템에선 이제는 힘든 일이다. 막차를 탔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배우에게 많은 걸 이끌어내고자 하는 현장이었다는 이야기일까?
배우가 납득이 안 되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대화로 끝까지 설득한다. 그리고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이 나올 때까지 파고든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미운 감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버팀목이 돼주니까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치열하게 붙어 결국 좋은 것들을 만들어 내는 감독이다.

촬영 이후 개봉되기 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외부에 알려지기엔 ‘작품에 문제가 있어서 늦어진다’는 말도 있었지만, 전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감독님이 계속 만지고 계셨다. 편집 버전도 여러 개였던 걸로 알고 있다. 배우야 촬영 끝나면 다른 작품도 하지만, 감독님은 아니다. 후시 녹음 때 만난 감독님이 ‘놔줘야 하는데 안 되고 있다’는 말도 하셨다.
그만큼 후반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이야기인데, 쓰이지 않아 가장 아까운 신이 있다면?
현수를 납치해 와서 기계실 안에 감금 시켜놓고, 현수를 바라보는 감정신이 있다. 그 장면 찍었을 때 스태프들이 박수를 쳤다. 오영제의 회한과 함께, 복수를 완수했다는 감정을 담긴 눈물을 흘리는 파트였다. 현장에선 감독님이 정말 좋아하셨다. "우리가 그리고 싶은 영제의 완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1차 편집본 때부터 빠졌다. "좋다면서 왜 뺐냐" 했더니, "너무 감상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제목이 제목인 만큼 야간 촬영이 많았다.
오후에 나가서 준비하고 촬영 시작해서, 아침에 해 뜰 때 촬영 끝내고 들어가서 잠을 잤다. 개인적으론 그 패턴이 참 좋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제일 힘들어 한다.
무거운 영화인 만큼 현장 분위기도 궁금하다.
일단 현장이 분위기 자체가 다른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영화 이야기만 했다. 보통 촬영이 끝나면 영화에서 잠시 빠져 나와서 있다가, 다시 현장에 들어간다. 하지만 '7년의 밤' 현장은 촬영이 끝나도, 다음날 촬영이 없어도 영화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누가 시킨 억지가 아니다. 저절로 그랬다.
아무래도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워낙 파고 드신 작품이다. 그래서 주변이 같이 빨려 들어갔던 것 같다. 너무 감사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온화한 분위기였다. 단지 집중할 따름이었다.

원작에 대한 부담, 메시지의 묵직함,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작품 아니었을까?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영화 섭외를 받기 전부터 원작 팬이었다.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싶었고, ‘만들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영화화 된다면 오영제를 내가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제게 제안이 왔을 때 참 신기했고,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소설 속 오영제와 영화 속 오영제는 간극이 있다.
소설의 오영제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책 속에서의 오영제는 샤프하고, 섬세하고, 섹시한 면까지 있는 느낌이었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을 처음 만나 이야기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원작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소설을 읽었을 떄 지금의 오영제는 달라지긴 했다. 책에서는 샤프하고, 섬세하고, 섹시한 면도 있고, 그런 느낌이었다. 잘 해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첫날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 했을 때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처음엔 제가 설득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감독님께 설득 당했다.
설득의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사이코패스라는 걸 염두에 두지 말자”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줄어든다. 사람으로 이해시키는 작업을 해보자”고 했다. 그 말이 정말 와 닿았다. 감독님 자체가 ‘본인이 모르는 건 가짜’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더 설득 당한 것 같다.
원작을 읽은 사람에겐 ‘오영제를 사람으로 이해시키는 작업’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 거다.
‘누가 제일 나쁜 놈일까’를 생각해봤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결론이었다. 법적으로 나쁜 놈도 있고, 도덕적으로 나쁜 놈도 있다. 귀책사유로만 보면 승환(송새벽 분)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답이 없다는 관점에서 오영제 보다 현수가 더 큰 범죄를 저질렀다. 그게 바로 ‘7년의 밤’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이 달라진 오영제에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아이러니 때문에 '7년의 밤' 속의 인물들은 모두 딜레마에 빠져있다.
다행이다. 전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딜레마에 빠지기를 원했다. 텍스트가 영화적으로 매력적이었던 것도 선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고, 악한 사람이 피해자가 되는, 악인이 선인에게 복수를 한다는 아이러니에 있었다.
그래서 오영제가 관객을 설득 하는 지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지의 딜레마에 빠지셨으면 좋겠다. 현수는 상식적인 감정이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 큰일을 저지른다. 명확한 이유가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오영제는 다르다. 자기가 학대하던 딸을 잃었는데 복수를 한단다.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영제'라는 사람 속 심리의 큰 본질은 '자기 세계의 침범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안에 그릇된 부성도 있다고 본다. 잘못된 방식으로 딸을 사랑했던 인물이다.
‘7년의 밤’은 결국 성악설에 기초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점은 누구나 다른데, 어떤 쪽일까?
성선설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어 뉴스의 사회 면을 바라보면 ‘성선설은 잘못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어렸을 때 “성선설이 맞다”면서 들은 이야기가 “아무리 흉악한 사람도 운전 중에 아이가 뛰어들면 브레이크를 밟는다”였다. 그땐 ‘아 맞는 이야기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건 반사신경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이야기에서 벗어나 보자. M자 탈모 분장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감독님이 먼저 제안 하셨다. 정말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셨다. 하하. 처음엔 그 제안을 듣고 농담이라 생각했다. 감독님은 제게 가면을 씌우시고 싶었던 것 같다. 헤어스타일도 바꿔보고, 안경도 써봤다. 그런데 뻔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테스트 해봤는데, 제 얼굴이 낯설어 보였다. 그래서 하게 됐다.
M자 탈모의 자신의 모습에 언제쯤 적응이 됐는지?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적응 됐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홍보를 하면서 만나는 스태프들이 ‘오히려 지금 모습이 낮설다’고 할 정도다.
걱정은 없었는지?
일단 윗머리를 앞으로 내리면 탈모 부분이 덮어졌기 때문에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몇 달 동안 이마 라인을 내놓고는 못 다녔다. 걱정이라 하면 ‘원래의 라인이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면도를 매일 하니 오히려 더 많이 자랄 수도 있다”라는 말에 희망을 가졌다.
가족들은 뭐라고 했을까?
촬영 때 찍은 스틸 중에 제가 볼 땐 ‘멋있게 나왔네’라는 나온 사진이 있다. 그래서 핸드폰 바탕화면에다 넣어놓고 다니다가 제 딸에게 보여줬다. 그 당시만 해도 제 딸이 말을 잘 못할 땐데 “괴물, 괴물”이라고 했다. 아빠를 못 알아봤다. 하하.
결국 자녀들이 영화에서 확인할 모습이지만, 꽤 긴 시간 보여줄 수 없을 영화다.
큰 애가 지금 12살이고, 둘째는 5살이다. ‘연풍연가’는 보여줬었는데, 굉장히 오글거려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는 조금만 더 크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들에게는 ‘친구’를 꼭 보여주고 싶다.
딸이 있는 입장에서 이레 양을 대하기가 어떠했을 지 궁금하다. 영화 속에서 정말 나쁜 아빠니까 마주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서 촬영 이외의 시간엔 따뜻하게 잘해주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그런데 이레가 정말 똘똘하고 연기도 잘 하고, 준비도 많이 해왔다. 작품을 거의 다 이해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대본을 같이 본적이 있다. 깜짝 놀랐다. 지문 옆에 서브텍스트까지 빼곡하게 쓰여있었다. 앞으로 잘만 자라면 대배우가 되겠다 싶었다.
최근 SM에서 나와 1인 기획사를 차렸다. 앞으로의 행보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SM에 있을 땐 울타리 안에서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젠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느낌이다. 덕분에 일은 바빠졌는데, 편해졌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의미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작고 자잘하게 해보고 싶었다. 지금 가장 설레는 일은 제가 좋아하고 발굴해낸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일이다. 휴머니즘이 있고, 감동도 있고, 완성도도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소개하고 싶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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