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이혜린 기자]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 김고은이 이제 자신의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고은은 지난 2012년 영화 '은교'로 데뷔하며 바로 주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껏 없던 마스크, 그리고 특유의 깨끗하고 맑은 분위기를 타고 충무로의 별로 떠올랐다.
'은교'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김고은은 바쁘게 움직였다.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때 많은 연기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몬스터',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 등을 거쳤고,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을 통해 로코에도 도전했다. 연기력 논락이나 캐스팅 논란도 겪었지만, 여러모로 약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와 함께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를 통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제 김고은은 또 하나의 거장을 만났다. 바로 이준익 감독과 영화 '변산'이다. '변산'은 '동주', '박열'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김고은은 고향 변산을 잊고자 하는 무명 래퍼 '심학수'(박정민 분)'를 강제 소환하는 '진선미'(김고은 분)'로 분했다.
제니스뉴스와 김고은이 지난 6월 2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제는 더 이상 신인의 자세가 아니라 모든 것에 책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김고은이었다. '변산'에 푹 빠진 듯 대화 현장까지 청춘물의 한 장면처럼 그리던 그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Q. 이번 작품을 마치며 노을에 대한 의미가 달라졌겠다.
예전에 ‘윤식당’ 속 윤여정 선생님께서 노을을 바라보며 “슬프다”고 하시는 장면을 봤다. 그 말을 듣고 노을이 슬픔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을 촬영하며, 슬픔이 황홀함으로 바뀌었다. 스크린 속 노을은 CG가 아니라 실제 장면이었는데, 자연이 주는 장엄한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Q. 전라도 사투리를 소화해야 했다. 연습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전라도 출신인 분들에게 인정받았다. 어릴 때부터 언어적인 부분을 따라 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사투리라는 것이 굉장히 미세한 차이가 있다. 흉내와 본토의 억양이 그 차이로 달라진다. 그래서 사투리 선생님을 붙잡고, 하나하나 짚어갔다. 처음에는 감정을 빼고 시작했고, 촬영에 들어가서 감정을 넣었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다시 촬영하기도 했다.
Q. 이번에 연기한 ‘선미’는 포근한 이미지가 매력적이다. 이를 위해 8kg 증량했다고 들었다.
증량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이전에 감량을 철저하게 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랬나 보다. 뭘 모를 때는 용감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Q. ‘선미’는 ‘학수’를 혼내기도 하고,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인물이다.
주옥같은 대사들이 ‘선미’의 입으로 나간다. 여러 지점에서 고민했다. ‘학수’와 비슷한 나이기 때문에 직언을 던지는 게 조금 더 타당했으면 싶었다. 그래서 선미의 성향과 성격에 집중했다.
여러 성향의 사람이 있다. 말로 표현하는 게 편한 사람이 있고, 속으로 삭히는 사람이 있다. 선미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에 존재감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 같다. 그래서 ‘학수’에게 표현하는 것이 ‘선미’에게 큰 노력이라고 느꼈다. 하나의 표현을 위해 생각과 정리가 필요했을 거다. 그러다 보니 한마디 한마디가 직언으로 다가간 것 같다.
Q. '선미'에겐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 같은 느낌은 적다. 순박한 모습에 공감 가는 부분도 있었는지.
어렸을 때 중국에서 잠시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중국은 한국의 70~80년대 모습이었다.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경 같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주판도 배우고, 붓글씨도 썼다. 안장 없이 말을 타며, 큰 호숫가를 달리기도 했다(웃음). 그리고 전라도 광주에서 중학교를 나와서 보다 선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Q. '학수'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는 순애보도 그린다.
‘선미’에게 ‘학수’는 고등학생 때는 열렬한 짝사랑 상대였다. 시간이 흘러 어른의 모습으로 만나니, 설레는 마음은 존재했을 것 같다. 하지만 ‘학수’의 변한 모습에 추억과 기억에 대한 훼손, 내가 좋아했던 ‘학수’의 본질이 흐트러진 모습에 속상했을 거다. 하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학수'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그를 돌리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Q. 실제로 이런 짝사랑을 해봤을까?
초등학교 때 중국에서 살았었고, 한인 교회에 다녔다. 거기서 드럼 치는 오빠를 짝사랑했다. 몇 년 정도 좋아했었다. 당시에 즐겨 했던 메신저 비밀번호를 그 오빠 이름으로 설정할 정도였다.
Q. 박정민과는 같은 학교 출신이다. 원래 친분이 있었는지?
서로 상담을 많이 하는 사이였다. 디테일한 기억은 안 나지만, 한 학번 차이여서 교류가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서로 고민하는 지점도 비슷해서 연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Q. 알던 사이여서 멜로 연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촬영할 때였다면 지나친 멜로가 오글거렸을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장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엄청 친한 분들과 일한 적이 없어서 걱정도 됐다. 그런데 친해져야 하는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큰 도움이 됐다. 호흡적인 면에서도 주고받기 편해서 시너지 효과가 난 것 같다.
Q. ‘변산’에서 박정민이 맡은 부분이 크다. 그에게 도움을 준 부분이 있다면?
저는 정민 오빠에 비해 반 정도의 분량이다. 정민 오빠는 가사도 쓰고, 어려운 부분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민 오빠에게 먼저 무슨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괜히 파트너랍시고 조언하는 것보다 그러지 않는 게 짐을 덜어주는 것 같았다.
Q. 박정민의 랩하는 모습만큼 김고은의 노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노래방 신은 사실 무반주로 진행됐다(웃음). 워낙 노래방을 좋아해서 ‘변산’ 속 ‘선미’ 모습 그대로다. 창도 하고, 랩도 하고, 노래도 한다. 그래서 찍기 전까지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반주다 보니까 컷을 하면 자괴감이 몰려왔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Q. 애드리브는?
애드리브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상대의 애드리브를 당황하지 않고 받아칠 때 희열을 느낀다(웃음).
사진=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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