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국가부도의 날' 유아인 "나 역시 기회주의자, 후회도 한다"
[Z인터뷰] '국가부도의 날' 유아인 "나 역시 기회주의자, 후회도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배우 유아인은 언제나 거침이 없다. 덕분에 SNS 상의 논쟁 등 여러 여파를 겪기도 했다. 하여 유아인은 어떠한 현상에 있어 가장 앞장 서서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다소 오해다. 유아인은 그저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게 한쪽에 치우쳤을 땐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날을 세울 때도 있고, 한없이 인내할 때도 있다. 그렇게 보다 나은 삶, 애써보는 삶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방향을 잡고 오롯하게 나아간다는 건, 좋은 연기자가 되는 밑거름일 터다. 하여 배우 유아인은 억울할 때도 있다. 연기보다는 다른 이슈로 조명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연기에 다른 이의를 제기할 일이 없다는 뜻도 된다. 그만큼 그는 좋은 연기를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도 그랬다.

유아인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IMF의 고난 속에서 그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 ‘윤정학’을 연기했다. 혹자는 그를 혐오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남 몰래 공감할 캐릭터다. 보는 이마다 복잡한 공감을 일으켜야 하는 역할, 유아인은 이를 능히 해냈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열연한 유아인과 제니스뉴스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특유의 길고 화려한 언변을 만끽할 수 있었던, 즐거웠던 시간을 이 자리에 전한다.

부산영화제 당시 발언이 화제가 됐다.
“자신 있다”는 말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정확한 단어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작품에 참여한 일원으로서 만족스럽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만족스러웠을까?
밸런스가 참 좋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보자는 게 아니다. 우리 영화의 상황, 캐스팅이나 현실 여건 등을 고려했을 때 그 안에서 잘 길어 올린 작품 같다.

‘국가부도의 날’을 선택한 이유는?
IMF라는 현대사는 공감대를 이끌기에 충분한 소재다. 어떤 계층에 있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이 시기를 살아간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마 ‘돈’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삶에 빗대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 여전히 신인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작품 선택에는 제 의지가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앞장서거나 주목 받기보다는 그저 좋은 작품에 제 자리를 소화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저 역할만 소화하겠다는 건 아니다. 작품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한 거 같다. 

‘국가부도의 날’엔 연기 외에 어떤 부분의 기여가 있는 걸까?
저와 동세대, 혹은 더 어린 세대에게 IMF 위기를 전하는데 있어 무언가 역할이 있을 거 같았다. 상당히 무겁고, 진중하고, 진지한 이야기다. 하지만 윤정학이라는 인물은 영웅도 아니고, 방관자도 아니다. 오히려 욕망을 대입시키는 아주 현실적인 캐릭터다. 그런 지점이 지금 세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거라 생각했다.

전작 ‘버닝’과 사뭇 다른 결이다.
본래 ‘버닝’을 종료하고 들어가는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스케줄이 바뀌면서 ‘버닝’의 여운이 끝나기 전에 참여했던 것 같다. 역할에서 빠져 나오느라 다음 작품에 몰입하는데 방해 받는 건 없었다. 다만 현장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창동 감독님의 현장은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현장 같다. 정말 저를 무쟁해제 시켰다. 알몸이 돼버린 경험이었다. 그렇게 나름의 순발력을 키워왔다고 생각했는데, 보편적인 환경으로 바로 투입됐다. 그 감각을 다시 살리려다 보니 첫 촬영에 정말 많은 NG를 냈다. 할 수 없이 두 번째 촬영은 하루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연습이 더 필요했다. 만약 그렇지 못 한다면 정말 불성실한 배우가 될 상황이었다.

어떤 촬영이었을까?
첫 등장신이었다. 신입사원들 앞에서 제가 여러 설명을 하고, 장난도 치는 장면이다. 대사가 긴 장면도 아니었는데, 쉽지 않았다. 빠른 호흡 아래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현장에 반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 난 그런 수준의 배우가 아니구나’라는 반성을 하고 촬영에 임했다. 연습도 많이 했다. 제 주변에 각종 친구들을 불러놓고 연설을 해보기도 했다.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일까? 칭찬에 후한 편? 혹은 혹독한 편?
굉장히 칼날 같다. 하하. “괜찮은데 보다 신선하게 해봐” “조금만 다르게 해봐” “너무 뻔한데? 다른 느낌은 없어?” 이런 식이다.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 해주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더 좋은 연기를 펼치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만, 분명 제겐 스트레스였다. 하하. 그 누구보다 냉정한 친구들이다. 하지만 덕분에 도움은 된 것 같다.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준다는 건, 고마운 친구들인 거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다.
정말 고맙다. 제가 배우 동료가 많은 편이 아니다. 그리고 비교적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술자리를 가지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제 주변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이 많은 조력자가 된다. 조언과 충고는 물론, 그냥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윤정학은 아비규환 속에서도 기회를 잡는 지독히 현실적인 캐릭터다.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제 마음 속에서 길어 올렸던 것 같다. 저 역시 기회주의자의 면모가 있다. 놓치기 보단 쥐고 싶고, 잃기 보단 가지고 싶다. 그런 마음의 선택을 하고 살아갈 때, 온전히 행복하거나 유쾌하진 않다. 죄책감이 들 때도 있고, 후회도 있고, 회한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고민을 한다. 

땅을 사면 두 배로 오른다는데 안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건 안 사면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런 사회와 투쟁하고 싶다는 마음도 담아 봤다. 잘 사는 것에 대한 다른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여러 마음을 담았고, 그걸 공감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중잣대를 보여준다. 류덕환 씨가 연기한 캐릭터에게 괜한 분풀이도 한다.
윤정학에게도 죄책감이 있는 거다. 그 상황에 화도 났을 거다. 하나의 국민으로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권력자들에게 분노했을 거다. 돈을 쫓는 현실과 죄책감 사이에 서있는 윤정학의 심리를 표현한 거 같다. 사실 경제 위기는 늘 있었다. 형태가 다를 뿐이다. 정치적, 국가적 위기 속에 긴박하게 펼쳐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느끼는 허탈함과 분노의 표출일 거고, 그렇기에 더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속지 않으며 내 삶을 이끌겠다는 다짐도 보여준 것 같다. 류덕환 씨를 때리며 두 가지를 요구한다. “반말하지마, 그리고 돈 벌었다고 좋아하지마” 관객에게 작게나마 울림을 줄 수 있던 대사라고 본다. 

그나마 윤정학이 정당성을 갖는 건, 결국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부도의 날’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이 없다. 그래서 무력감이 든다. 다만 의문을 가진다면, 그걸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더 나은 내일을 갈 거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을 살아온 기성 세대들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을 제시한다고 본다. 지금 살기 힘든 청년층은 기성세대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기성 세대들이 어떤 식으로 지금의 형태를 이루게 됐을까를 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문득 궁금해진다. 유아인은 윤정학처럼 제테크에 강할까?
하하. 전혀 안 강하다. 제테크도 안 한다. 덕분에 이번 연기를 위해 경제 뉴스를 많이 찾아봤다. 때마침 비트코인이 화제가 됐던 시기였다. 그 뉴스에 사람들의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업도 하고 있는데.
4년 전쯤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시작했다. 동료와 파트너들을 끌어들여 했던 독특한 사업이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하하. 

주연으로 이름을 올린 김혜수-허준호-조우진과 다른 무대에서 활약하기에 서로 마주할 일이 없었다.
김혜수 선배님 인터뷰를 보니 “아인이가 외로웠을 것 같다”고 하는데 전혀 외롭지 않았다. 송영창 선배님은 벌써 세 번째 만나 함께 했다. 덕환 씨도 꼭 만나고 싶던, 제가 신인일 때 저보다 더 성취를 이뤄 젊은 배우의 열정을 보여줬던 배우다. 특히 ‘천하장사 마돈나’ 같은 작품을 굉장히 동경했었다. 서로 도와가며 영감을 받았다. 나이도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엄청 깍듯했다. 제가 운영하는 갤러리에도 놀러 오고, 재미있게 작업했다.

현장에서 바라본 선배들은 어땠을까?
정말 프로페셔널이다. 김혜수 선배님은 정말 내공이 느껴졌다. 또 다른 차원의 에너지와 능력을 보여주셨다. 허준호 선배님은 경우엔 존재 자체가 만드는 감정이 있다. 아무 말을 안 해도 인물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조우진 선배는 정말 날카롭다. 정말 예리하다. 표현의 형태가 섬세하고 뚜렷하다. 

만약 현장에서 선배들의 연기를 명확하게 봤다면, 오히려 더 걱정하고, 불필요한 긴장도 했을 것 같다. 존재만 느끼면서 적당한 긴장을 가지고 연기를 한 게 정학을 그리는데 더 도움됐던 것 같다. 저 정도의 경력을 가진 배우 중 저만큼 다양한 선배님과 호흡을 맞춘 배우도 드물 것 같다. 덕분에 저만의 방식이 생겼다. 이번엔 어차피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닌 내 갈 길을 가는 마이웨이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 쉽게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의 흐름을 그리면서 늙은 분장을 해야했는데, 유독 윤정학만 얼굴이 늙지 않았다. ‘역시 돈의 힘이 좋은 건가?’라며 웃었다.
‘육룡이 나르샤’ 때도 많은 세월의 흐름을 표현해본 적이 있는데, 제 힘만으론 힘든 부분이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런 리스크에도 세월의 간극을 표현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사도’ 때도 어색한 게 느껴져서 편집을 한다, 안 한다의 논쟁이 있었다. 늙음을 표현하는 게 있어 분장, 연기, 연출 등 리얼리티를 살린다는 건 어려운 부분이다. CG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존재하는 한국 영화의 숙제라고 본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