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표면적으로는 성(性)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억압, 갈등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헤매이는 게 어디 그들 뿐이더랴. 연극 ‘프라이드’는 그러한 '소수'를 대표하는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소수’들에게 가슴 뭉클한 위로와 함께 먹먹한 울림을 전한다.
지난해 초연된 연극 '프라이드'는 당시 전혀 다른 두 시대가 교차되며 펼쳐지는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작품의 메시지로 객석점유율 90% 이상을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는 전 캐스트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 돌아와 또 다른 매력을 전하고 있다. 작품은 필립과 올리버 그리고 실비아를 중심으로 1958년과 2015년을 오가면서 그려진다.
1958년의 필립은 실비아와 부부 사이다. 올리버는 실비아와 함께 작업을 하는 동화 작가. 실비아의 초대로 만나게 된 올리버와 필립은 낯설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되고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하지만 필립은 동성애를 하나의 질병처럼 취급하는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며 침묵하려 하고, 그런 필립 때문에 올리버와 실비아는 괴로워 한다.
사뭇 달라진 분위기의 2015년,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 연인 관계이다. 실비아는 이 두 사람의 둘도 없는 친구. 올리버의 고쳐지지 않는 섹스 중독 때문에 필립은 그를 떠나고, 홀로 남겨진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위로 받으며 필립과의 '역사'에 대해 깨닫는다.

교차하는 두 시대 속에서 절묘하게 얽히는 대사와 상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품의 메시지와 감동, 그리고 재미를 전달한다.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대사들도 일품이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들 저마다의 사연 속으로 스며든다.
무엇보다 극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주는 건 실비아라는 인물이다. 1958년의 실비아는 침묵 속에서 괴로워 하다 결국 자신보다 먼저 필립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그를 떠난다. 하지만 당당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2015년의 실비아는 삶에 대한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대놓고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의 '프라이드'가 느껴진다. 관객들은 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또 필립과 올리버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극의 마지막, 1958년의 실비아는 잠들어 있는 필립에게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2015년 함께 나란히 앉아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보고 있는 필립과 올리버의 모습과 겹쳐진다. 뿐만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의 마음 속에도 가만히 내려앉는다. 작품은 그렇게 상처 입은 이들을 어루만진다.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대사와 상황들이 꽉 짜여져 3시간에 달하는 공연임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필립 역에 배수빈 강필석, 올리버 역에 정동화 박성훈, 실비아 역에 임강희 이진희, 멀티 역에 이원 양승리가 함께 한다. 오는 11월 1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사진=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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