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함정' 조한선 "베드씬 걱정? 캐릭터 표현이 더 큰 숙제"
[Z인터뷰] '함정' 조한선 "베드씬 걱정? 캐릭터 표현이 더 큰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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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참 만나기 어려운 배우였다. 다작을 했던 배우도 아니었거니와 인터뷰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커피숍에서 영화 ‘함정’을 위한 인터뷰에 기자 4명이 자리했지만 모두가 조한선과는 초면이었다. 배우 본인이 밝히기로 무려 6~7년만의 인터뷰란다. 평소 말주변이 없어서 꺼려왔던 인터뷰를 요 며칠간 몰아서 하고 있던 조한선에게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다. 오히려 재미있다고, 어색함도 없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럼 조한선이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5년 전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단다. 작품을 고르고 선택하는 자세도 달라졌고, 인터뷰를 마주함에 있어서 본인의 작품의 정보를 공유해야 영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단다. 군대도 다녀오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겨 가장이 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기도 변했다. “나이가 어렸을 땐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열심히 했다”고, 캐릭터를 분석하기 보단 이해하기 바빴다. 비록 그게 틀린 연기, 나쁜 연기는 아니었지만 공익근무를 하며 일반인과 마주하다 보니 관객, 그리고 시청자를 생각하게 됐다. 나의 이해가 아닌 관객의 이해가 중요함을 그제야 깨달았다.

영화 ‘함정’은 새로운 조한선의 각오가 보이는 영화다. 한동안 작품활동에 뜸했던 조한선이 오랜만의 주연작을 들고 관객 앞에 섰다. 조한석이 연기한 ‘준식’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배우로선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다. 아내(김민경 분)와 함께 휴가를 떠난 외딴 섬에서 ‘성철’(마동석 분)에게 무차별적인 린치를 당한다. 아내 이외의 여자(지안 분)와 하룻밤을 보내고, ‘성철’에게 아내의 몸을 빼앗긴다. 아내에게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를 끝까지 지켜줘야 했다.

“동석이 형이 나를 때린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진 않는 캐릭터였다. 살아서 탈출하는 것이 목표였고, 와이프에 대한 사랑도 지키고 싶은 캐릭터였다. 사실 촬영 중에 몸이 너무 힘들었다. 심리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비도 오고 날씨도 추웠고, 촬영 기간이 길지 않은 것도 부담이 됐다”

“사실 몸을 쓰는 연기는 괜찮다. 떨어지고 넘어지는 전문이다.(조한선은 축구선수, 그것도 골키퍼 출신이다.) 얼마든지 안 다치게 할 자신이 있다. 산에서 올무에 걸려 굴러 떨어지는 씬도 직접 다 찍었다. 액션이 욕심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다. 대역을 쓰기도 애매했기에, 리얼함과 시간절약 모두를 잡을 수 있었다. 나무에 부딪히는 씬도 대역이 하면 되지만, 시간적으로 힘들더라. 내가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함정’에서 조한선은 꽤나 위험한 베드씬을 찍었다. 단적으로 음모가 노출됐으니 그 수위를 가늠할만 하다. 하지만 베드씬은 조한선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준식’을 오롯하게 표현하는 게 더 큰 숙제였다. 그렇게 촬영에 임하다 보니 어느덧 베드씬 스케줄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제서야 걱정이 되더란다. “연기부터 합, 공사까지 고민이 많았다. 밤새 감독님하고 머리를 싸맸다. 호불호가 갈릴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꼭 필요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관계를 하는 사이 벽 하나를 두고 아내가 강간을 당한다. 극적 긴장감을 위해서도 준식의 심리적인 변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 날 밤이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 누구에게 시선이 머무는지, 그런 이야기를 감독님하고 많이 이야기했다”

“공사 같은 부분도 내가 제안을 드렸다. 사실 공사를 하면 촬영에 제약이 많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앵글이 자유롭기 위해선 음모 부분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제모도 거부하고 리얼함을 추구했다. 제모를 하게 되면 가짜 같은 느낌이 들더라”

조한선이 ‘준식’을 마주하는 각오는 그만큼 진지했다. 비단 액션, 노출 부분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인물의 키부터 몸무게, 발사이즈 같은 외형부터 장면과 장면마다 준식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과연 옆 방에서 와이프가 자고 있는데 다른 여자와 그런 행위를 할 수 있을까’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만약에 소연이 ‘가지말라’고 했다면 가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소연의 행동엔 ‘다녀와’라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담배 피는 씬을 일부러 넣어달라고 했다. 담배를 피우고 다시 들어가다 끌려 들어갔고, 분위기에 압도 당해 흘러갔다”

“감정이나 혼란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동료들이랑 술 먹고 담배 피우다 온 씬이 있었는데 그 부분도 감독님께 부탁 드렸다. ‘준식’은 와이프의 유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관계가 안 되고 소통이 없어지고, 배려가 없어진 캐릭터다. 그렇다고 아픔을 이야기하고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고 그 고뇌를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씬이었다. 절박한 상황을 드러내줘야 할 것 같았다." 

공을 쏟았던 만큼 ‘준식’과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촬영 끝나고 집에 갔는데 공허했다. TV를 틀어놨는데 초점은 안 맞는 멍한 느낌이었다. 그 잔상들이 너무나 기억에 남아서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친구들이랑 술 먹고, 놀고, 여행도 가고 낚시도 갔다. 사실 영화의 엔딩에 두 가지로 찍자고 건의했었다. ‘와이프의 모든 것을 용서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것’ 하나와 ‘와이프를 배려는 하되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표정을 보여주자’고 했다. 과연 이들이 이런 일을 겪고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싶었다. 나라면 절대 용서 못할 것 같다”

현재 조한선은 가을 개봉 예정인 또 다른 영화 ‘마차타고 고래고래’의 촬영을 마쳤다. 영화는 고등학교 친구 네 명이 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목포에서 자라섬까지 당나귀 ‘짱아’를 데리고 20여일 간의 도보 버스킹 여행을 떠나는 음악 로드무비다. 안재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조한선 외에 한지상, 박효주 등이 출연한다. “‘준식’을 털어버리고 만난 ‘호빈’은 ‘준식’과는 상반된 캐릭터다. 10년 무명 배우, 저랑 비슷한 상황이다(웃음). 관객들이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다”  

‘준식’을 이야기하다 ‘호빈’을 말하는 조한선의 표정은 좀 더 밝았다. 그만큼 ‘준식’으로 살았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가늠케 했다. “다음 작품으로 스릴러를 또 찍을 생각이 있냐”고 묻자 손사래를 친다. “사이코패스를 하라면 하겠지만 그에게 당하는 역할은 (잠시 생각하다) 조금 있다 하고 싶다. 지금도 자다가 놀라서 깬다. 맞는 장면도 많았고, 무엇보다 환경 자체가 압도적이다. 촬영한 곳이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곳임에도 불구하고 널브러진 기기들과 음산함, 피비린내가 있다. 고양이들에게 닭모가지를 던져 주는 것도 실제 상황이었다. 닭을 데리고 오는 순간 고양이들이 몰려오더라”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백숙을 못 먹는데 맛있게 먹어야 했다. 결국 체했다. 지네술도 그 안에 지네가 있는 걸 알았지만 일부러 그 안을 보지 않았다. 미리 보고 놀라면 연기가 리얼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곤계란이 장난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다 먹겠는데 이건 때려 죽여도 못 먹겠더라”

사실 이날 만난 조한선은 많이 수척해 보였다. 영화 촬영 전부터 계속 다이어트 중이란다. 베드씬도 베드씬이었지만, ‘준식’이 그렇게 몸이 좋으면 안 됐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살을 뺐단다. 일반 직장인처럼 보이기 위해, 마동석과 함께 있을 때 보다 왜소해 보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덕분에 촬영 도중 빈혈도 오고, 집에서도 아이의 무등을 태워주다 기절한 적도 있단다. 실로 아찔했던 기억, 하지만 보다 진지하게 연기와 마주하는 조한선의 모습이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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