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누구에게나 가정사는 아프다. 왕이라 해서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범인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골육상잔의 비극을 맞이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왕조인 조선 시대만을 보더라도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들을 제치고 왕이 됐던 태종,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이 됐던 세조 등 용상에 앉기 위해, 혹은 대의명분을 위해 수많은 피를 궁궐에 뿌렸다.
‘영조’(송강호 분)가 ‘사도’(유아인 분)와 함께 종묘를 거닐며 지난 왕들의 잔혹했던 역사를 이야기한 것은 그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혹은 경고였을까. 그 진의가 무엇이든 우리는 뒤주 안에 갇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영조의 세자를 떠올리며 그 안에 담긴 슬픔을 엿본다. 하여 ‘영조’는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린 아들에게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라는 시호를 내렸을 테다.

이준익 감독이 우리 역사상 가장 슬픈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2010) 등 사극에서 자신의 장기를 드러냈던 감독이다. 또한 ‘라디오 스타’(2006) ‘님은 먼곳에’(2008) ‘소원’(2013) 등 사람 냄새 가득한 영화를 만드는데도 매우 능하다. 굳이 ‘천만 감독’인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꺼내 드는 이유는 그만큼 이번 신작 ‘사도’의 만듦새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역작이 나왔다.
영화는 사도가 뒤주에 갇힌 8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감독은 시간을 넘나들며 젊은 ‘영조’와 ‘사도’부터, 늙은 ‘영조’와 ‘정조’(소지섭 분)까지 56년의 이야기를 2시간 안에 풀어놓는다. 감독의 연출적인 고민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시간의 이동은 친절한 서술과 적절한 음악의 배치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더불어 언제나 그래왔듯 감독은 ‘인간’에 집중한다. 무수리의 핏줄을 이었다는 태생적인 콤플렉스와 이복 형제인 경종의 독살설에 시달렸던 ‘영조’. 게다가 붕당 정치를 혁파하기 위해 탕평책을 펼치며 강력한 왕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왕이 칼자루를 쥐고 있고 신하가 칼날을 쥐고 있지만 한 순간 바뀔 수도 있다는 절규는 그가 왜 ‘사도’에게 강한 군주, 똑똑한 군주를 강요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도’의 인생 또한 평생을 파더 콤플렉스 속에 살아왔다. 결국 죽을 때까지 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했다. 여기엔 영조의 결벽에 가까운 사도를 향한 기대가 원인이었다. 호통과 폭언을 뒤에 두고 대리청정을 수행했으며, 영조의 유별난 양위파동 때문에 매번 석고대죄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자식 – 정조 – 앞에서도 떳떳하지 못한 아비였다. 무너져 내린 자존감 속에 자신보다 왕에 어울리는 아들을 보며 마냥 웃을 수는 없었던 사도의 삶은 그 이름처럼 슬펐다.
영화는 ‘영조’와 ‘사도’의 이야기이지만 ‘집안사’임을 강조하듯 그들을 둘러싼 가족들을 묘사하는데 많은 비중을 둔다. 손자 ‘사도’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인원황후’(김해숙 분)의 죽음은 ‘사도’가 광기의 길을 걷는 기폭제가 된다. 나아가 '사도’의 생모인 ‘영빈’(전혜진 분)은 ‘사도’가 일생에 걸쳐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상처다. 시아버지의 눈 밖에 난 남편 대신 아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혜경궁 홍씨’(문근영 분), 아비의 죽음을 지켜보고 감내해야 했던 ‘정조’까지 모두의 상황이 관객에게 공감을 일으키며 뒤주에 갇힐 수 밖에 없었던 ‘사도’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준익 감독이 잘 만들어 놓은 판에 배우들의 연기는 화룡점정을 찍는다. 유아인은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 중 하나인 송강호에게 꿀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인다. ‘사도’라는 다양한 감정의 캐릭터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다리가 됐다. 그리고 역시 송강호다. 젊은 영조의 아들 바보 모습부터 엇나가는 아들을 바라봐야 했던 영조, 그리고 나아가 아들에게 죽음을 명하며 끝내는 눈물을 흘리는 노년의 영조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고저를 넘나들었을 영조의 감정들을 가장으로서, 나아가 왕으로서 잘 갈무리하며 표현해냈다. 특히 뒤주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왕과 세자,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남자 대 남자로 대사톤이 바뀌어가며 진한 교감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연기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영화다.
영화 ‘사도’는 오는 16일 개봉된다.
사진=영화 '사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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