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12시가 되어 마법이 풀리기 전 황급히 무도회장을 빠져나가던 신데렐라가 벗겨진 유리구두를 다시 잽싸게 손에 쥐고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신데렐라’를 생각한다면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의문을 가지게 될 터. '신데렐라는 왜 유리구두를 남겨 두고 가지 않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능동성과 주체성에 있다.
뮤지컬 ‘신데렐라’ 속 등장인물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 속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 왕자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어디 한 번 날 찾아보라’는 듯 유리구두를 남겨두지 않았던 신데렐라는, 두 번째 만남에서는 일부러 왕자의 눈 앞에서 보란 듯이 유리구두를 벗어 남겨두고 무도회장을 떠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데렐라는 자신이 왕이 될 자질이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는 크리스토퍼 왕자에게 국민들이 처한 현실을 알려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을 요청하며 그가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까지 한다.
주로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는 동화와는 달리 주변의 악한 인물들조차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다. 한 예로, 신데렐라의 의붓언니 가브리엘은 어머니의 뜻대로 왕궁의 무도회에 참석해 왕자에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사랑을 선택한다. 뿐만 아니라 신데렐라의 사정을 알고 나서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뮤지컬 ‘신데렐라’는 동화 속 기본 설정에 충실하면서도 지금 시대에 맞춘 각색으로 재미를 더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갈등 구조 없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 코드와 함께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게 극이 흘러가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7세 이상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추석을 맞아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이 보러 가도 좋을 듯 하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도 볼거리다. 특히 마리가 할머니에서 요정으로 순식간에 마법처럼 변신하는 모습이라던가, 신데렐라의 평범했던 옷이 한 순간에 반짝반짝 눈부신 드레스로 변하는 장면, 호박이 거대한 마차로 변하는 장면 등은 객석에서도 감탄사가 이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뮤지컬 첫 도전인 윤하를 비롯해 신데렐라 역의 배우들과 뮤지컬 '로빈훗'에 이어 또 한 번 왕자 역을 맡은 양요섭을 비롯한 크리스토퍼 왕자 역의 배우들은 춤, 연기, 노래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준다. 후반부의 왈츠 장면에서는 힘에 부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 공연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점차 좋아지리라 생각된다. 특히 양요섭은 전작 ‘로빈훗’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출연시간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줘 한 사람의 '뮤지컬 배우'로서 또 한 단계 성장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느껴진다.
신데렐라와 크리스토퍼 왕자 외에도 마담 역의 이경미, 세바스찬 역의 김법래, 장 미쉘 역의 박진우 등의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극의 중심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비스트(BEAST) 양요섭, 빅스(VIXX) 켄, B1A4(비원에이포) 산들 등 관심을 끄는 아이돌 라인업과 무대효과로 중무장한 뮤지컬 ‘신데렐라’는 어른들에게는 조금은 유치하고 간지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동화 속 판타지를 충실하게 실현시켜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으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도 물론 좋지만 그러잖아도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이런 작품도 필요하지 않을까.
뮤지컬 '신데렐라'는 오는 11월 8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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