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전쟁의 끝은 항상 비극으로 귀결된다. 우리의 한국 전쟁도 그랬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비극들을 매일 같이 접하며 살고 있는 지 모른다.
영화 '서부전선'은 농사를 짓다 징집된 ‘남복’(설경구 분)과 책으로만 탱크 운전을 배운 인민군 ‘영광’(여진구 분)의 이야기다. '남복'은 무슨 내용인 지도 모르는 일급 비밀 문서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지만 동료는 물론 문서까지 잃어버린다. '영광' 또한 전투기의 폭격으로 부대원이 모두 폭사한다. 탱크를 잃어버리면 총살이라는 엄포에 홀로 귀환하던 '영광'은 우연히 '남복'의 비밀 문서를 손에 넣는다.

어설픈 두 명의 군인이 마주하며 코미디는 시작된다. 총 한 자루에 바뀌는 갑을 관계와 그 속에 오고 가는 욕설과 구타는 웃음을 유발하기 충분하다. 비극적인 전쟁 속에서 한바탕의 포복절도라, 영화는 그렇게 관객들을 동화 같은 판타지로 이끌어간다.
천성일 감독은 ‘서부전선’ 안에 수많은 유머 코드를 담아냈다. 전쟁 속의 판타지, 영화 전반에서 묻어나는 아이러니한 설정은 블랙 코미디를 향한 욕심이 느껴진다. 3일 후의 휴전 협정을 모른 채 고군분투 하는 두 사람의 모습, 내용 조차 모른다는 비밀 문서에 휴전의 내용이 담겼을 것 같다는 암시는 씁쓸한 웃음을 안긴다.
나아가 국군과 인민군이 한 자리에 모여있고, 아버지와 아들 뻘의 배우가 서로의 뒤통수를 날리며 욕설을 던진다. 3개월간 설계 기간과 2개월의 제작 기간을 걸쳐 탄생한 25톤의 T-3485 탱크는 바람 같이 가볍게 달리며, 우직할 것 같은 소달구지는 영화 ‘벤허’(1959)의 경주 마차처럼 질주한다. 과장된 연출 속에 두 사람이 보여주는 슬랩스틱 또한 웃음의 한 요소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여러 가지 유머코드를 연출의 묘를 통해 맛깔스럽게 녹였다고는 보기는 힘들다. 다소 늘어지는 전개는 자칫 지루함을 안길 수도 있다. 또한 전쟁 속 소시민의 삶이나 전쟁의 비장함까지 이야기하는 건 좋았으나 영화 곳곳에 묻어있던 과장된 연출과 따로 노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의 각본으로 866만을 동원했던 천성일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니 나름의 신고식으로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연출의 아쉬움은 있지만 배우들의 호연은 빛난다. 설경구는 왜 그가 우리나라에서 명품 배우로 손꼽히는지 연기력으로 입증한다. 충청도 사투리로 버무린 유머부터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한다. 이와 함께한 여진구는 연기의 과잉이 다소 보이지만,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서있는 ‘영광’을 생각하면 딱 어울리는 맞춤 연기였다.
나이나 국적 등 두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많은 차이를 감안해볼 때 ‘남복’과 ‘영광’이 함께 웃으며 서있는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서부전선’ 속 두 사람의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무척이나 따뜻하다. 미소가 그려진다. 그럼 됐다. 남과 북이 함께 웃는다는데 그것 보다 더 좋을 일이 무어 있을까? ‘서부전선’은 오는 24일 추석을 앞두고 개봉된다. 온 가족이 모여 ‘남복’과 ‘영광’처럼 모두가 웃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사진=영화 '서부전선'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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