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는 1903년에 창설된 사이클 대회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투르 드 프랑스'는 매년 7월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를 코스로 3주간 펼쳐진다. 제1회 경기는 약 19일에 걸쳐 총 467km의 거리로 구성됐는데 60명의 참가자 중 21명이 완주했다. 그만큼 어려운 경기라는 방증. 장기간 레이스인데다가 산악 코스 등 난코스가 많아 ‘지옥의 레이스’라고도 불린다.

그런 ‘투르 드 프랑스’를 7연패 한 남자가 있다. 그 이름은 ‘랜스 암스트롱’. 그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우승하며 ‘투르 드 프랑스’를 ‘투르 드 랜스’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 F1 레이싱의 슈마허와 함께 자신의 스포츠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표 인물로 꼽혔다.
특히 랜스 암스트롱은 1996년 고환암 판정을 받았다.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세계 최정상에 올라선 그에게 온 세계는 찬사를 던졌고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추악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랜스 암스트롱은 2012년 10월 약물 복용 혐의가 인정되면서 1998년 이후 모든 수상을 박탈당하고 영구 제명 당했다. 타락한 챔피언이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은 랜스 암스트롱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스포츠 기자 데이빗 월쉬가 쓴 『일곱 가지 대죄: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나의 추적』이다. 실제로 랜스 암스트롱의 활약에 대해 무수한 의문을 던졌던 데이빗 월쉬 기자는 영화에서 주연 캐릭터로 등장하며, 크리스 오다우드가 그를 연기한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화에서 그려낸다는 건 쉽지 않다. 특히 랜스 암스트롱은 추문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자칫 수많은 말들이 나오기 십상이다. 무거운, 그리고 조심스러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밝은 분위기 속에서 랜스의 시선을 통해 당시 상황을 그려낸다.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랜스의 심리 묘사를 최소화 했다는 점이다. 단거리는 가능하지만 장거리는 불가하다는 평가, 하여 팀원들과 약물을 시작, 그리고 찾아온 고환암 판정, 분명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을 투병 과정, 이후 다시금 약물에 손을 대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 승승장구, 그리고 은퇴 등 사건의 전개와 상황이 모두 드라마틱하지만, 작품은 랜스의 행동을 그려낼 뿐 뿐 그의 심리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관객에게 맡긴다. 즉, 약물에 손을 대는 랜스를 보며 연민을 느끼든, 실망을 느끼든, 분노를 표출하든 그 것은 관객의 몫이라는 말이다.

이 같은 연출이 가능했던 이유는 벤 포스터라는 배우의 힘이 크다. 랜스 암스트롱의 인생 굴곡이 심하게 휘어진 만큼 담담하게 연기하기 힘들었을 터다. 하지만 벤 포스터는 메소드 연기를 펼치며 본인 자신이 랜스 암스트롱이 되어 그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진실된 표현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며, 랜스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감정에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준다. 대중을 기만한 사기꾼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힘내라고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은 건 랜스의 대한 동정이 아닌 인간에 대한 연민일 터다. 그 감정의 배경엔 역시 벤 포스터의 연기가 자리한다.
끝으로 랜스가 복귀하고 영화 속에서 비춰지는 마지막 질주엔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가 흘러나온다. “A job that slowly kills you / bruises that won’t heal / You look so tired-unhappy”(그대를 천천히 죽여가는 직업 / 낫지 않을 멍 자국 / 그대는 너무도 피곤하고 불행해 보이네)라는 가사는 나른하게 종국으로 치닫는 멜로디와 함께 랜스의 끝을 관객들에게 나지막히 읊조린다.
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은 오는 29일 개봉된다.
사진=영화 '챔피언 프로그램'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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