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인터뷰] '조류인간' 소이 "시나리오 보고 펑펑, 내 얘기 같았어요"
[ZEN인터뷰] '조류인간' 소이 "시나리오 보고 펑펑, 내 얘기 같았어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니스뉴스=최민지 기자] 소이(35)에게는 이제 배우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가수로 데뷔해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영화 ‘조류인간’(신연식 감독, 루스이소나도스 제작)은 그에게 무척이나 깊은 울림이었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그 어느 순간에 발을 디디고 있는 소이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한 발 더 그 ‘무언가’에 다가가고 있었다.

소이는 ‘조류인간’에서 비밀을 품고 있는 묘령의 여인 소연 역을 맡았다. 소연은 아내의 행방을 쫒고 있는 소설가 정석(김정석)에게 접근해 길잡이가 되어준다. 소연은 소이의 본명으로 신연식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소이를 염두에 두었음을 증명한다. 가수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은 소이를 보며 배우의 재목이라고 생각했다던 신연식 감독. 정말 두 사람은 잘 만났다.

- 이제 배우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10년 동안 나름 열심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더라. 그런데 ‘조류인간’을 통해 이제는 자신 있게 배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있었다. 배우의 자긍심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걸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 작품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고른 게 아니라 신연식 감독님께 선택을 당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나를 염두에 두고 쓰는 건 100만 분의 1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연기가 검증이 된 것도 아니고 그동안 해왔던 작품이 흥행을 한 것도 아닌데 나를 믿어줘서 정말 감사했다. 흥행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신연식 감독님은 나에게 이미 커다란 사람이다.”

- 영화 스토리를 듣고 조금 놀랐을 것 같다.
“미팅을 하자는 말에 오디션 준비를 좀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만 나누었다. ‘언제 나보고 연기를 하라는 거지?’ 그런 생각도 했었다. 신연식 감독님이 ‘이미 너를 주연으로 정했다. 이제 쓸 건데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하시더라. 그 이야기만 듣고도 정말 흥미로웠다. 정체성이라는 자체가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대한 기대가 컸다.”

-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동화책을 읽듯이 읽어나갔다. 그러고는 펑펑 울었다. 이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소연이라는 캐릭터에 공감을 했다. 소연에게서 나를 봤다. 소연이 부러웠다. 소연은 어릴 때 정체성이 확립돼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그걸 알아가는 과정도 엄청나고. 그게 정말 부러웠다.”

- 영화를 찍으면서 정체성은 좀 찾았는지.
“소연만큼은 아니다. 소연이 새라는 정체성을 찾았다고 하면 나는 ‘사람이 아닌 동물’ 이 정도다. 아마 죽을 때까지 정체성에 대한 싸움을 할 것 같다. 그렇게 쉽지 않은 길이 될 것 같다. ‘나는 이래’라고 결정을 짓는 순간 또 다른 길이 열릴 것만 같다.”

- 그래도 조금은 찾은 그 방향이 궁금하다.
“티티마로 연예인이 됐을 때도 내가 누군지 몰랐다. 정체성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활동을 하니까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라디오 PD를 꿈꿨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도 깨졌다. 난 누군가의 창작물을 전달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매체라도 상관없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느꼈다. 2005년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의 느낌이 그랬다.”

- 그 중 하나가 연기였던 건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당시 연극을 처음 시작했다. 미국에 있었을 땐데 적응이 필요해 연극부에 들어갔다. 스스로 힘든 점이 많아서 무작정 연극을 올린다는 말에 오디션을 봤다. 주연이 됐고, 연기로 인해 외롭지 않았다. 속감도 생겼다. 정말 위로가 됐다. 사실 그 때만 해도 평생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영화 ‘가발’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맡았을 때, 그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름 암흑시대의 시작점이라 역할도 어두웠는데, 그 때 날 발견하게 됐다.”

- 이미 신연식 감독은 소이 씨의 연기 본능을 알고 있었다는데.
“감독님이 나를 봤던 2000년에 난, 연기에 대해서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감독님의 천재성에 대해서 여러 번 반하게 됐는데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그 때도 그랬다. 감독님은 사람을 만날 때 1차적인 것뿐만 아니라 2차적, 3차적인 것을 본다. 계속 감독님과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 감독님이 자꾸만 졸업하고 다른 사람이랑 하라고 하는데 감독님과도 계속 하고 싶다.”

- 독립영화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꼭 그런 건 아니다. 나와 맞는 색깔의 영화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 예를 들어 벽돌이 쌓여져 있는데 그걸 멀리서 찍어 다 보여주는 게 상업영화라면, 벽돌 사이에 끼인 이끼들을 보여주는 게 독립영화라고 생각한다. (웃음) 기회가 닿질 않아 상업영화를 못하는 것뿐이지 당연히 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연기를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감정의 촉을 다 열어놓는다. 눈을 뜨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넘어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는 모든 게 열려있다.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 경험을 하고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한강에 앉아 다리를 지나가는 지하철을 보며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도 참 좋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게 굉장히 벅차다.”

 

사진=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