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그놈이다' 윤준형 감독 ① "한국 스릴러에 호기로운 도전"
[Z인터뷰] '그놈이다' 윤준형 감독 ① "한국 스릴러에 호기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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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지난 2003년 한 편의 페이크 다큐가 화제가 됐다. 여관방 몰카에 찍힌 귀신을 쫓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였는데 신선한 소재와 연출, 남다른 공포와 몰입 그리고 반전까지 갖추며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목두기 비디오’의 메가폰을 잡은 사람이 바로 윤준형 감독이다. 많은 호평을 받으며 상업 영화 데뷔를 점쳤지만 그가 ‘그놈이다’로 데뷔하기 까지는 무려 12년이 걸렸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윤 감독이 이번에 연출한 ‘그놈이다’는 대학 다닐 당시 들었던 지인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한 여대생이 살해를 당했고, 그 영혼을 달래기 위해 넋건지기 굿을 했더니 바다에 던졌던 놋그릇이 한 남자의 앞에 가서 멈췄다’는 단순하지만 무언가 미심쩍은, 의심해볼 법한 팩트가 ‘그놈이다’의 골자가 됐다. 덕분에 ‘그놈이다’는 토속 샤머니즘부터 ‘귀신을 보는 소녀’라는 오컬트적인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 미스터리 스릴러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놈이다’의 윤준형 감독을 지난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까페에서 만났다. 개봉 하루 전에 만났기에 설렘을 가득 안고 있던 감독이지만, 순박한 외모와는 다르게 이번 영화를 ‘호기로운 도전’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신인 감독의 패기도 느껴졌다.

5년이나 집필했던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어 드디어 개봉했다.
아직까지는 얼떨떨하다.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이 순간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런데 현실에 ‘짠’하고 펼쳐지니까. ‘이래도 되나?’하는 기분이 든다. ‘이게 진짠가?’ 싶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다. 오랫동안 준비한 것을 선보이고 1~2주 만에 평가를 받는 자리라 스트레스 받는 부분도 있다.

화제가 됐던 ‘목두기비디오’ 이후 12년이 지났다. 그 당시만 해도 빠르게 상업 영화에 데뷔할 거라 기대를 모았는데?
영화계를 한 번도 떠난 적은 없었다. ‘목두기 비디오’를 만들고 나서 쇼필름에서 기획실장으로 있으면서 ‘주먹이 운다’(2005) ‘야수와 미녀’(2005) 등의 기획을 해왔다. ‘사나이픽쳐스’의 한재덕 대표가 본부장으로 있던 ‘옐로우엔터테인먼트’에서 상업영화도 준비했었다. 그런데 2009년도부터 ‘프로듀서만 하지 말고 원래 하고 싶었던 걸 해보자’고 용기를 냈다. 일종의 전직이다. 그런데 이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또 귀신이 연관됐다. 상업 영화 데뷔작인데 흥행과는 조금 거리가 먼 소재를 선택했다.
‘상업영화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지 않느냐’를 따지기 전에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교 때 놋그릇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소름 끼치는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가족과 딸이 생기다 보니 그 때 그 이야기가 가족 이야기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절절함이 얼마나 엄청났으면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려 했을까’ 싶었다. 그 때 가족을 잃은 슬픔,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 그려졌었다. 또 한국적인 소재이다 보니 색다른 스릴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화라는 부분. 제작발표회 때 들었지만 보다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해서 쫓아다녔는데 결국 증명하진 못했다. 영화처럼 추적한 개념은 아니었다. 조금 따라다니다가 ‘아닌 것 같다’며 바로 포기를 하셨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는 계신 것 같다. 사실 정말 범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선 아마 가해자를 한 명 세워놨어야 살아가는 힘을 받으셨을 것 같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심정이다.

장우도 그런 심정이 있었을까?
장우는 살아가는 이유가 은지 뿐이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날 한시 돌아가셨을 때 남겨준 게 집과 동생 뿐이었다. 가장으로서 그걸 꼭 지켜야했던 거고. 하지만 그 중 집을 포기했던 날 동생마저 잃게 됐다. 살아가야할 이유가 한 순간에 없어졌다.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나갔다’는 죄책감도 심했을 거다. 

토속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눈길이 간다.
교회를 다니시는 분, 성당을 다니시는 분, 절에 다니시는 분들도 종교와 상관 없이 점집에는 한 번씩 가보시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봤던 점괘가 맞으면 정말 소름이 돋는다. 저는 예전에 ‘교통사고가 날 건데 사람이 크게 다치지는 않아’라는 말을 들었는데 3개월 후엔가 주차장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아이들까지 다 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도 안 다쳤다.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하다’면서 소름이 확 돋았다. 그 때 ‘이 느낌을 영화적으로 잘 풀어나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일까? ‘천도재’ 씬은 굉장히 공들인 티가 났다.
이 영화 만들 때 모든 선택의 기준은 ‘사실적인가’였다. 장소를 섭외할 때도 그랬다. 천도재를 촬영 장소는 헌팅하러 갔을 때 실제로 돗자리를 깔아놓고 7~8팀이 굿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영험한 곳이라 소문이 난 곳이었다. 경남권에 있는 사람은 전부 그 곳으로 굿하러 간다고 했다. 촛농 같은 것도 군데군데 녹아있고, 재도 많이 묻어 있는 곳이라 굉장히 무서우면서도 ‘아 여기다’라고 생각했다. 

‘천도재도 사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사실적이면, 이를 테면 할머니 무당들이 색동옷입고 굿한다고 뛰어다니면 오히려 가짜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실적인 부분을 살리면서 유려한 수채화처럼 보여주기 위해서 가공을 했다. 음악도 한국적인 악기를 많이 썼다. 노력은 많이 했지만 지형적인 제약이 심해서 ‘더 잘 찍을 수 있는데’라며 아쉬운 점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작두 타는 씬이 꽤나 섬뜩했는데, 15세 관람가가 나왔다.
저도 궁금하다. 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사실 모니터링 때 어린 친구들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막연히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일부러 과장시켜 잔인하게 찍을 필요가 없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잘 하면 받을 수 있겠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서 참 기분 좋다. 영상등급위원회에 정말 많은 감사를 드린다.(웃음)

오컬트적인 요소와 스릴러가 부합되면서 미스터리 스릴러의 모양새가 됐다. 일본에서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인데 한국에선 크게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다.
‘장화,홍련’(2003)으로 한국 영화판에 공포붐이 불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싹 사라졌다. 제 생각엔 너무 장르 영화로만 공포를 그려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투자사에서도 ‘공포 영화는 여름에 4~50만 정도 드는 영화’로 규정됐다. 저는 그걸 깨고 싶었다. 공포의 장르나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를 어찌 푸느냐에 따라 충분히 한국 관객들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호기로운 도전이다. 

호기로운 도전, 어쩌면 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방향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
사실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치욕적인 이야기가 재탕한다는 이야기다. 마음 다친다.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다른 것들을 접목하는 시도는 많았다. 그런 면에서 굿이나 샤머니즘 관련된 것들이 종교를 떠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이를테면 한을 풀어준다는 느낌들이 있다. 뼛속 깊은 곳에 뭉쳐있는 정서다. 색다른 스릴러라고 봐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사진=서예진 기자 syj@zenithnews.com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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