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현의 필름시럽] '로봇, 소리' 불통의 시대, 서로에게 소리 내며 삽시다
[권구현의 필름시럽] '로봇, 소리' 불통의 시대, 서로에게 소리 내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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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불통’이 사회적 키워드가 된 지 오래다. 비단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내 옆 집에 누가 사는 지 모른다. 친구와 만나서 대화하기 보다는 카카오톡이나 메신저를 쓰는 것이 더 편하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만나 밥 한 끼 먹기 조차 힘들다. 이러저러하여 가족이 모였더라도 스마트폰에 더 눈을 맞추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해관’(이성민 분)도 그랬다. 딸 ‘유주’(채수빈 분)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대화가 많지는 않았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사라졌다. 그 뒤로 찾아 헤맨 것이 10년, 나라에서는 대구지하철참사의 희생자로 단정 지었다. 이젠 친구도, 아내도 그를 만류한다. 그런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전단지 속의 여자를 어느 섬에서 봤다”는 제보였다. ‘해관’은 그 길로 뱃머리에 올랐다.

그 섬에서 ‘해관’은 로봇 하나를 만난다. 사실 로봇이 아닌 미국의 도청 위성의 한 부분이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유주’가 통화를 했던 기록도, 그리고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하여 ‘해관’은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딸을 찾아 나선다.

영화를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소리’다. 제목에도 쓰여있고, 로봇의 이름도 ‘소리’지만 결국 ‘소리’란 대화이며 소통이다. ‘해관’이 쫓는 딸의 흔적에는 ‘해관’이 남겨온 불통의 행적들이 가득하다. 잘못은 아니었다. 단지 서로 ‘소리’를 남겨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비어있는 딸의 자리엔 후회 짙은 반성과 슬픔이 가득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해관’은 로봇과 소통하며 성장한다. 위성을 찾으려는 국정원의 추적을 따돌리며 로봇을 지켜나간다. 물론 그 행동엔 로봇을 지켜야 딸을 찾는다는 목적이 담겨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문득 그 셈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해관’과 로봇은 어느 새 친구, 혹은 또 하나의 부녀가 되어있었다. 그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다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다.

‘로봇’은 ‘해관’에게 여러 번 묻는다. “보호는 고마운 것입니까?”라고. ‘보호’란 한 쪽에서 다른 쪽을 지켜줌을 뜻한다. 하지만 그 행동이 받는 쪽 입장에서 고맙지 않다면 이는 ‘보호’가 아닌 ‘간섭’이며 ‘불통’의 방증이 된다. ‘유주’를 향한 ‘해관’의 보호는 간섭이었을까? 아니다. 믿음을 가지고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지 못했을 뿐, 사랑의 표현이었다. 단지 소리 - 대화 - 의 부재가 낳은 갈등이었을 뿐이다. 하여 우리가 사는 데는 소리가 필요하다.

덧붙여 영화 속엔 또 하나의 불통 인물 등장한다. 바로 국정원 직원 ‘신진호’(이희준 분)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익과 국민을 보호한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못마땅하다. 그 반대 지점엔 항공우주연구원 ‘강지연’(이하늬 분)이 있다.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소통의 노력에 우리는 따뜻함을 느낀다.

‘해관’과 로봇의 관계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건 오롯하게 배우 이성민의 힘이다. 피드백도 없을 로봇을 상대로 좋은 호흡을 이끌어냈다.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진정성을 갖추는 것 또한 이성민의 인간적인 연기 덕분이다. 특히 작품 초반에 보여주는 한 사람과 한 로봇의 합이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보여주는 뻔한 전개가 많이 아쉽다. 불통과 간섭의 아이콘에서 소통과 믿음의 아이콘으로 변화한 해관의 모습이 필요했다면, 작위적인 감동 보다는 친절한 설명이 나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끝으로 요즘 대세라는 '류준열'을 캐스팅한 이호재 감독의 선견지명에 감탄을 보낸다. 이호재 감독에 따르면 "류준열이 나온 쓸 수 있는 모든 분량을 끌어모아 담아냈다"고 한다. "분량을 더 늘리려면 슬로 모션 밖에 방법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화 ‘로봇, 소리’는 오는 27일 개봉한다.


사진=영화 ‘로봇, 소리’ 스틸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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