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앞선 시간에 먼저 인터뷰를 했던 기자들에게 “도경수 씨 어때요?”라고 물으니 엄지를 치켜세운다. “엑소 디오를 향한 팬심은 아니고요?”라고 재차 물으니 남자 기자들마저 “정말 좋은 인터뷰였어요”라고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2층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것 같았다.
지난 2일 삼청동에서 배우 도경수를 만났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디오’로 익숙한 도경수는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순정’의 주연 배역 ‘범실’로 연기를 펼쳤다. ‘범실’은 섬에서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자신의 소중한 첫사랑을 향해 순정을 다 하는, 말 그대로 착하디 착하고 순수함을 가득 채운 인물이다. 실제로 만난 도경수의 첫 느낌이 딱 ‘범실’ 같았다. 말 그대로 바른 청년이었다. 그런데 이 청년, 마냥 착한 인물은 아니었다.
사실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아이돌의 연기 활동을 못마땅해하는 시선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연기에 대한 호평을 받아왔다 해도 배우 도경수의 길은 조금 외로웠을 터다. 그 길을 지켜준 건 연기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욕심이었다. 도경수는 주변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연기와 더 마주하는 배우였다. 연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던 감정들을 배워가는 천상 배우였다.
배우 도경수는 지금까지 진중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왔다. 이젠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관객에게 큰 걸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아직 어리지만 누구보다 연기에 대해 진지했던 배우 도경수와의 인터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영화를 본 소감은 어때요? 언론시사 때는 긴장을 많이 한 것처럼 보였는데.
맞아요. 그 땐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도 쇼케이스도 다니고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영화는 언론 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그 땐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였어요. 제가 연기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의 아쉬운 부분이 있었어요. 첫 번째로 사투리가 아쉬웠고, 두 번째는 제 감정 표현이 아쉬웠어요.
사투리 부분은 사투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괜찮다, 나쁘지 않다’고 표현해주셨는데, 제가 고흥에서 3개월 생활하면서 전라도 사투리에 귀가 많이 익숙해졌거든요. 제가 제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억양을 들으니 너무 아쉽더라고요. 만약 전라도 분들이 제 사투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많이 궁금해요. 촬영 처음과 마지막의 사투리 실력이 거의 비슷했던 것 같아요. 3개월을 통해서 ‘사투리가 늘었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조금 늘은 것 같아요.
감정 표현 부분은 제 안에서 분명 캐릭터의 감정을 100% 이해하고 있는데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말투나 행동에선 그 감정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을 풀기 위해서 항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첫 주연작이에요. 부담감은 없었나요?
‘주연의 책임감’이라는 부분은 ‘순정’을 찍기 전엔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영화를 시작하고 나니 주변에서 ‘주연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부담이 많이 됐고요. 그런데 전 제가 많이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저보다 연기를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었고, 많은 도움과 배려를 받고 많은 걸 배우고 느꼈어요. 전 제가 주연이 아니라 다섯 명이 전부 주연이라 생각하고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이번 촬영 현장, 재미있었다는 말이 자자해요.
제가 지금까지 다섯 작품을 했어요.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이번 촬영 현장은 정말 한 가족이 됐던 것 같아요. 보통 사람이 모이면 무리도 지어지고, 한 쪽과 친하면 다른 쪽이랑 덜 친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이번엔 정말 모두가 똑같았어요. 모두가 배려를 해줬고요. 그런 배려가 있으니 저도 배려를 하게 됐고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가족이 됐던 것 같아요.
5명의 배우(도경수-김소현-이다윗-연준석-주다영)가 진짜 친구처럼 지냈다면서요?
촬영 끝나고도 배우들과 스태프들하고 계속 연락하고 있어요. 특히 두 명의 남자 배우(연준석, 이다윗)와는 정말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여가 시간이 나면 밥도 같이 먹고 영화 진행 사항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영화도 같이 봐요. 촬영 끝나고 만나서도 서로 사투리를 써요. 진짜 촬영할 때처럼요. 이 친구들하고는 영화를 시작할 때 약속한 게 있어요. ‘극 안에서 진짜 친구니까 17살 친구가 되자’고요. 그래서 말도 편하게 하고 ‘범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요. 형으로서의 책임감도 있긴 했지만 정말 친구처럼 지낸 거 같아요.

‘순정’은 199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잖아요?
감독님이 저희에게 말씀하신 건 “9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지 말자”였어요.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해도 사랑과 우정에 관한 마음은 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과 우정만 생각하고 연기를 했어요. 전 영화를 촬영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귀에 익은 노래였지만 그 노래의 가수, 제목 같은 건 잘 몰랐거든요. ‘이 노래가 91년도에 유행했던 노래구나’라는 걸 배웠고요. 카세트, 과자 봉지 디자인 같은 걸 보면서 오히려 공부가 된 것 같아요.
‘첫사랑’에 대한 접근은 어땠을까요?
사실 첫사랑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지금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맞나?’싶기도 하고요. 지금 생각하기에 첫사랑이라 생각되는 건 고3 때였던 것 같아요. 사실 첫사랑에 대해 풋풋함이나 사랑보다는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많이 남았었어요. 사랑을 하면 행복했던 것만큼 슬픈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눈물이 없어서 눈물을 안 흘리는데요. 그래도 그 때 당시엔 울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이렇게 지났으니 추억이 된 거죠. 소중한 경험이에요. 이번 영화에 그 경험이 많이 도움됐던 것 같아요.
유독 업는 신이 많아요. 사실 남자들은 다 알겠지만 누군가를 업는다는 게 사실 꽤 어렵잖아요. 그러게 하고 연기까지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람을 처음 업어봤어요. 처음에는 합이 안 맞았다 할까요? 진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개덕이랑 시뮬레이션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해야 나와 상대방이 편할 수 있을까 연습했어요. 연구를 많이 해서 깨달은 게 있는데 뒤로 깍지 끼고 업으면 무게도 덜어지고 하나도 안 힘들더라고요. 사실 영화에서 자갈밭에서 걷는 신이 안 나왔어요. 그 때가 바로 처음 업었던 때였거든요.
많이 비틀거려서 편집 됐을까요?
(웃음)

이제 영화에 감이 좀 잡히나요?
아니요. 너무 어려워요. 앵글 같은 스킬 같은 부분은 공부도 많이 하면서 배우고 있는데, 연기에 대해서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진짜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보통 배우들은 역할과 내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하잖아요.
‘범실’이 있고 도경수가 있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감성과 성격이 있고, 범실이 가지고 있는 감성과 성격이 있어요. 그런데 연기를 할 때 딱 들어맞는 지점이 있어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순간인데, 그 두 감정이 교집합을 이뤄냈을 때 엄청난 희열이 있어요. 제가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를 했을 때 정확히 16화에서 그걸 처음 느꼈었어요.
굉장히 인상적이었나 봐요. 구체적으로 16화라 딱 꼽는 걸 보면. 어떤 장면이었나요?
‘장재열’(조인성 분)이라는 작가가 있고 한강우라는 인물이 있어요. 제가 바로 한강우였어요. 장재열이 환시를 보는 정신분열증이 있는데, 그 사실을 알아채는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환시인 저를 떠나 보내는 장면이죠. 작품에서 제가 항상 맨발로 다녔어요. 그런데 장재열은 그걸 인식 못하다가 환시라는 걸 알아채니 제 맨발이 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제 발을 닦아주고 신발을 신겨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전 그 때 저와 강우의 교집합이 느껴졌어요.
그건 ‘울컥’이라는 감정이었어요. 평소 제가 아예 눈물이 없어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뭔가 맞춰졌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팡 터졌다’고 해야 할까요? 검은색 공이 있는데 그 공 밖엔 수 많은 띠가 있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다가 그걸 한 줄 싹 자르는 느낌, 봉인이 ‘팡’하고 풀리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내가 이런 걸 느낄 수 있나? 나에겐 전혀 없었던 감정이었는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마 한강우가 제게 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좋은 건 그 감정을 느껴본 후에는 제가 ‘울컥’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이번 ‘순정’에서도 그런 교집합이 있었을까요?
일련의 사건이 있고 수옥의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따지는 순간이었어요. 테이크를 세 번 정도 진행했는데, 첫 테이크를 진행하고 나서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감독님이 “올라온 것 같다” 고 말하시며, 바로 테이크를 더 갔어요.
다시 대사를 끝내니 등 밑에서부터 머리 뒤까지 고무줄이 쭉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못할 것 같다. 쉬었다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감독님이 “지금 감정 올라온 것 같으니 한 번 더 가봅시다”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세 번째 컷을 하고 나서는 몸이 굳어버렸어요.
그럼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눈이 커지고 호흡도 거칠어지고 몸이 굳어서 못 움직였어요. 10분 동안 스태프들이 몸을 주물러줘서 간신히 풀렸어요. 그 때도 느꼈어. 검은 공의 실이 하나 끊기는 느낌이요. 그 때 느낀 감정은 ‘광기’라는 감정이었어요..

눈물이 없는 편이라니, 나름 연기에 꼭 필요한 부분이잖아요.
전 우는 연기가 가장 힘들어요. 정말 너무 힘들어요. 눈물 연기가 가장 편하다는 분도 계시지만, 전 감정이 100% 이해되지 않으면 절대 눈물이 안 나와요. 이번 영화에서도 범실이 눈물을 안 흘리는 게 맞다고 생각되는 신이 있었어요. 감독님하고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감독님은 “우는 게 맞다”고 하셨고요. 결국 그 때는 안약을 넣었어요. 그래서 그 신을 찍는데 오래 걸리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어요.
속상했겠네요.
많이 속상하긴 했는데 ‘굳이 눈물을 흘려야 하나?’라는 게 궁금해요.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슬픈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영화를 보고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괜찮아 사랑이야’의 '울컥'을 느끼고 나서는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전엔 울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초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운 적이 없어요.
뭔가 나이를 먹어가는 거 아닐까요?(웃음)
감수성이 생겨 가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여러 사람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면 더 감수성이 커질 것 같고요.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영화 '순정'은 배우 도경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추억’일 것 같다. 제가 40대가 되어 '순정'을 다시 보면 지금 40대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아마 40대가 되도 이 친구(김소현-이다윗-연준석-주다영)들을 만날 것 같아요. '순정' 속에서 어른이 되서도 만나고 있는 그 친구들처럼요.
사진=김문희 인턴기자 moonhee@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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