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동주' 박정민 ① "독립운동가 송몽규, 나에겐 판타지였다"
[Z인터뷰] '동주' 박정민 ① "독립운동가 송몽규, 나에겐 판타지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지난 2011년 봄, 작은 영화였지만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 있었다. 바로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었다. 아무도 잘 될 거라 예상 못했지만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며 국내 감독들에겐 “윤성현 감독을 유학 보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더 키워줘야 한다는 속셈 아래 한국에서 얼른 없애버려야 한다는 농담이었다.

굳이 2011년의 ‘파수꾼’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박정민 때문이다. ‘파수꾼’은 작품도 좋았지만 배우들의 호연도 대단했다. 이제훈, 서준영, 그리고 박정민 세 주연 배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 배우가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모두 달랐다. 특히 박정민의 행보는 조금 더뎠다. 배우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시간, 하지만 지금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통해 그간 쌓아왔던 연기 내공을 오롯하게 뿜어내고 있다.

영화 ‘동주’의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을 최근 제니스뉴스가 만났다. 언론시사회 당시 영화의 여운에 뜨거운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박정민. 그가 영화 ‘동주’와 마주하며 겪었던 감정과 에피소드들을 고스란히 이 곳에 옮긴다.

영화 ‘동주’의 개봉을 기다리는 소감은 어떤가요?
떨리죠. 또 저희 영화가 언론시사회를 일찍한 편이잖아요. 떨림의 연속이라 처음엔 마음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몸이 힘든 느낌이에요. 설날 연휴 동안 감기에 걸려서 누워있었어요. 병원에 가서 링겔 맞았고요. 혼자 택시 타고 병원 가는데 참 서럽더라고요. 그래도 영화 홍보 진행하면서 재미있어요.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고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니까요. 이 영화를 위해서 내 몸 하나 불사른다는 의미도 있고요. 물론 힘들긴 힘들어요.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이제 며칠 있으면 이 것도 끝날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막상 그 때 되면 섭섭할 거 같아요.

시사 이후 연이은 호평이 나오고 있어요. 연기 또한 호연이었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요.
제가 참여한 영화다 보니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잖아요. 대본을 봤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을 잘 표현했는 지 배우들은 잘 모르니까요. 또 전 경력이 많은 배우도 아니고요.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이번 영화는 참 많이 떨리네요.

‘동주’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땐 어떤 기분이었나요?
안 믿었어요(웃음). 일단 이준익 감독님 영화인데 무조건 가는 거죠. 스케줄이 안 맞아도 가야죠. 왜 안 맞겠어요. 맞춰야죠(웃음). 어느 날 매니저 형의 전화를 받았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영화를 하신대. 윤동주 시인의 영화를 만드신대. 대본 한 번 봐봐”라는 거예요. 처음엔 ‘대본을 본다고 뭐가 되는 건데? 보면 어쩌라는 건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대본을 받았는데 사실 전 시켜줄 거 아니면 열심히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한 번 ‘스윽’ 훑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좋은 거예요. 심지어 저보고 읽으라고 했던 ‘송몽규’가 주연이고요. ‘이건 뭘까?’라는 생각인데 ‘신연식’이라고 대본에 써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준익 감독님이 제작을 하시고 신연식 감독님이 연출하시는 줄 알았어요. 신 감독님이 독립 영화 배우들하고도 많이 작품을 하시니까요. 그래서 매니저에게 “이거 신연식 감독님 작품인데?”라니까 매니저도 “그래? 그런가?”라며 확답을 못하더라고요. 그런데 ‘국제시장’ 시사회 뒷풀이에서 정민이 형님이 “이준익 감독님이 하는 거 읽어봤어? 그거 너 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 신연식 감독님이 하시는 건데요?”라고 말했더니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전 “좋다”라고 답하면서도 캐스팅이 될 거라고 믿고 있진 않았어요.

그러고는 미팅을 갔어요. ‘미팅을 하고 나면 결정을 해주시겠지’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2대 8로 하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제작사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이 절 보시자마자 “네가 정민이냐? 송몽규 선생님하고 닮았네?”하시는데, 딱 느낌이 절 시켜주실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뒤로 말을 제대로 못했어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저 안 시켜 주실까 봐요. “대본 어땠어?”라고 물어보시는데 “제가 아직 한 번 밖에 못 읽어봐서요. 한 번 더 읽어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제가 아주 처세의 끝을 보여준, 정치적인 행동을 보였던 자리였어요(웃음).

많이 신났겠어요. 기회가 왔다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기회가 왔구나’ 생각했어요. ‘송몽규 선생님을 잘 알려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왔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게 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죠. 그런데 송몽규 선생님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맨 처음 했던 생각이 차차 없어지더라고요. 송몽규 선생님을 더 소개해드리고 설명해드리는 게 제 임무가 된 거죠.

영화를 보고 송몽규 선생님을 접하면 참 부끄럽죠. 저도 그 분의 존함을 동주를 통해 처음 알았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제가 만나 본 사람들 중에 딱 세 명 알고 계시던걸요.

실존 인물이지만 낯선 인물이고요, 심지어 독립운동가세요. 그 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참 어려웠겠어요.
그럼요. 너무 어려웠죠. 그 분의 뜻과 신념을 훼손 하면 안 되니까요. 제 행동과 목소리를 통해 그 분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어쩌면 처음 소개하는 게 된 거죠. 나중에 송몽규 선생님을 다루는 작품이 또 나온다면 항상 비교대상이 되고 표본이 될 거였어요. 아주 부담됐던 작업이었죠. 그런데 막상 그 분의 기록을 찾아보면 거의 없어요. 평전 정도 남아있고요. 윤동주 시인의 기록에 조금씩 담겨있고요.

물음표가 너무 많았기에 북간도까지 다녀오신 거죠?
송몽규 선생님은 뭐랄까, 판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공부하고 알면 알수록 멀어지는 허구의 인물 같았어요. 제가 그 시대를 살았으면 모를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 분의 선택과 행동, 그리고 그 당시의 선생님의 나이는, 만약 소설책에 이런 인물이 나왔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인공이야’라며 책을 덮어버릴 만한 인물이세요.

영화 초반에 송몽규 선생님이 마을 사람에게 연설을 하는 신이 있는데, 영화 속에선 고등학생이지만 평전을 보면 12살로 나와요.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건 그만큼 평소 영특하고 비범했다는 거예요.

또 고등학생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어요. 또 18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가서 군관학교에 들어가요. 지금으로 따지면 고등학생이 자원입대 하는 거예요. 정말 대단하신, 상상도 못할 인물이세요.

그런데 그 분을 제가 현실로 데리고 와서 관객들을 설득해야 하는 거예요. 제 연기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말 책 몇 권 읽는다고 되는 부분이 아닌 거죠. 그래서 북간도까지 갔었고요.

제작보고회 때 그 곳의 풍경을 설명해주셨지만, 직접 다녀오니 연기에 영향을 미치던가요?
황정민 선배님이 촬영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가신데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 번 따라 해봤어요. 잘하고 싶으니까요. 그 습관의 장점은 이래요. 예를 들자면 몽규의 집이 있어요. 배우가 촬영 시간에 맞춰 가서 분장하고 연기하는 것과 한 시간 일찍 가서 그 집 안에 거울이나 옷걸이 같은 것도 보고, 그 공기를 제 공기로 만든 뒤에 연기를 하면 많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북간도에 가서 그 분들이 마셨던 공기도 마셔보고 밟았던 땅도 밟아보고요. 제가 그 정서를 같이 느꼈다는 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사투리 연기는 어땠나요? 워낙 억양이 세서 그 속에 여러 감정들을 담기 힘들었을 거 같은데요.
저희가 쓴 사투리가 사실 완벽한 사투리가 아니에요. 진짜 사투리를 들어보면 30%는 못 알아들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의 개념이 아니에요. 그걸 완벽히 영화에서 구현하면 대사가 전달이 안 될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배우들이 모여서 ‘어느 정도는 톤을 맞춰서 들어가자’고 합의했어요. 왜냐면 누구는 많이 쓰고, 누구는 적게 쓰면 너무 설득력이 없잖아요. 사투리를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런데 다같이 적게 쓰면 ‘그 쪽 지방은 원래 그런가 보다’라는 설득력이 생기잖아요. 저희가 사투리를 쓰지 못해서 덜 쓴 게 아니고 대사 전달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었던 거예요.

사실 감독님은 연희전문학교에 갔을 땐 사투리를 안 써도 된다고 하셨어요. 전 사실 동주는 그래도 되지만 몽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실제 기록에도 몽규는 사투리를 많이 썼다고 적혀있고요. 사투리에서 보여지는 몽규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강직하고 고집 있고 직선적인 인물이라 말투 같은 걸 안 바꿨을 것 같긴 해요.
맞아요. ‘어라 얘네들 서울말 쓰네? 나도 써야지’ 했을 이미지는 아니죠. 동주는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 시를 쓰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몽규는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런 강직했던 인물이 마지막 신에선 너무도 지쳐있어요. 동주의 부고를 아버지와 숙부에게 전하는 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였어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불의와 싸우고 불나방처럼 달려가던 청년이에요. 그런데 이제 자신이 죽을 걸 알고 있어요. 그 때도 일제와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을지, 아니면 엄마-아버지가 보고 싶었을 지를 생각한다면 전 후자라고 봤어요. ‘이제 난 죽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라는 지점에서는 정말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보고 싶었을 거 같아요. 그 신에서 제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대본엔 없던 대사였어요. 그런데 정말 너무 죄송한 거예요. 제가 부모님 속을 썩이면서 해왔던 모든 행동들, 물론 부끄러운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 행동으로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앞에 아버지가 계셨어요. 그리고 또 엄마는 얼마나 보고 싶었을 거예요.

그 촬영을 할 때 아버지들을 먼저 찍었어요. 제가 아버지들 앞에 앉아서 바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너무 나는 거예요. 사실 먼저 감정을 쏟아내 버리면 제가 찍을 때 힘들거든요. ‘감정을 쓰면 안 돼’라는 게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아버지들을 안 보면서 거짓연기를 할 수도 없는 거였고요. 어린 시절 촬영할 때 선배님들이 잘 해주셨던 것들도 생각나고요. 제가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오죽하면 제가 너무 울먹거리면서 대사도 못 치고 있으니 감독님이 무전기로 조그맣게 “정민아 감정 쓰지마, 정민아 감정 쓰지마”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어요. 정말 너무 슬펐었어요. 저절로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고요. 선배님도 “버텨야 한다”는 대사가 없었는데 그런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감정 소비가 많아서 차라리 촬영 기간이 짧았던 것이 다행이겠어요.
네. 정말 한 달 찍어서 다행이에요. 짧아서 더 얻은 게 많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정적인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게, 쉬는 날에도 쉬는 것도 아니었고요. 만약 두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제가 지쳐서라기 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저희를 방해했을 것 같아요.


사진=김문희 인턴기자 moonhee@zenithnews.com, 영화 '동주' 스틸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