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해어화' 한효주 ① "마지막 대사를 읊고 나니 비로소 소율이 됐다"
[Z인터뷰] '해어화' 한효주 ① "마지막 대사를 읊고 나니 비로소 소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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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충무로에 여배우가 없다 하는데, 최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성의 이야기로 그려지는 영화가 드물 뿐, 훌륭한 배우들이 언제나 자신을 위한 작품이 그려지길 바라고 있다. 2015년에도 박소담을 비롯해 김고은, 천우희 등 핫한 여배우가 좋은 연기를 펼쳐냈다. 그리고 한효주 또한 그 중심에 오롯하게 서있는 대세 여배우다.

그래서 영화 ‘해어화’는 더욱 소중한 영화다. 한 남자와 한 노래를 빼앗긴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소율’. 예인을 꿈꾸던 조선의 마지막 기생으로서 그 능력도 미모도 출중했지만 안타깝게 자신이 원하던 바를 손 안에 쥐지 못했다. 하여 자신의 친구와 사랑했던 남자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고 결국 자신마저 가슴 아픈 인생을 살아간 비련의 여인이다.

이해하기 힘들 감정이고 하여 그려내기 힘든 캐릭터이지만 한효주는 이를 능히 해냈다. 그간 밝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해왔기에, 범죄자를 쫓으면서도 ‘꽃돼지’라는 코드명으로 불렸던 한효주이기에 이번 ‘소율’은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의 호연에 박수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 한효주를 지난 11일 제니스 뉴스가 만났다. 햇빛 따뜻한 봄날, 서울 삼청동의 한 까페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질투심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두 명의 캐릭터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소감이 어떤가?
그러게요(웃음). 의도치 않았지만 비극으로 몰아가는 인물이 되어버려서 촬영이 쉽지 않았어요. 즐겁다기 보다는 괴로운 쪽에 가까웠어요. 준비 기간까지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해어화’로 보냈는데 마냥 마음 편하게 촬영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1년이라니, 촬영 기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촬영 준비를 3월부터 했어요. 노래랑 춤도 배워야 했고요. 원래 계획은 봄을 담아내자며 5월부터 들어가는 걸로 했었는데 준비 과정 때문에 1~2개월 늘어났어요. 결국 촬영이 끝난 게 10월 초였던 것 같아요.

‘소율’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을까?
일단 시나리오 자체가 여배우가 많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요즘 그런 시나리오가 많이 없잖아요? 그런 금 같은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영광이었죠. 연기적으로도 지금까지와 다른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극적으로 표현하는 연기랄까요? 그런 연기를 보여드린 적이 없었는데 제가 했던 연기 중 가장 극적인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캐릭터라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전 소율이에게서 연민을 가장 크게 느꼈어요. 처절하면서 짠했고,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어요. 어떤 분들한테는 악역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이유가 있었던 거니까 소율을 향한 연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기할 때 실제 제 마음이 그랬거든요.

박흥식 감독은 영화와 소율이에 대해 어떤 디렉션을 주었나?
사실 감독님의 첫 인상이 굉장히 강렬했어요. 감독님과의 첫 만남 때 제가 “이 영화는 관객들이 봤을 때 어떤 느낌을 가져갈 수 있는 영화인가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감독님은 “효주 씨, 전 이 영화가 모차르트와 모차르트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라고 하셨어요. 저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라 생각했었는데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처럼 확 와닿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참 강렬한 첫 인상이었어요.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미묘한 감정선을 놓지 않고 가시는 것 같았고요. 중간에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캐릭터를 끝까지 고집 있게 가져가는 걸 보면서 굉장히 감사했어요.

그 고집 덕에 노인 분장까지 하게 됐는데, 모니터를 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웃으면서)감독님이 정말 확고하셨죠. 모니터를 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놀라진 않았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은 있었죠. ‘좀 더 자연스러우면 어떨까’라는 아쉬움? 선택의 기로였던 것 같아요. 이런 선택(노인 분장)을 한 이유가 분명히 있는 거죠. 아마 어떤 선택을 했어도 아쉬웠을 거예요. 감독님도 워낙 확고하셨고, 배우로서도 끝까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결국 영화의 핵심인 마지막 대사 때문에 노인 분장을 하게 됐다?
제 개인적으로는 노인 분장을 하고 마지막 대사를 촬영하는 날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분장도 분장이었지만 그 대사를 내뱉는다는 자체가 부담스러운 신이었죠. 영화 촬영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 대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소율이 된 느낌을 받았어요. 몇 개월간 소율이를 위해 준비하고 쌓아왔던 것이 마지막 촬영 날 비로소 정소율을 만난 느낌? 그 촬영을 제가 하지 않았으면 그걸 못 느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가깝게 느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이번 영화에서 노래도 불렀는데,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지? 다루는 악기도 있을까?
음악, 좋아하죠. 듣는 것도 좋아하고 노래 흥얼거리는 것도 좋아해요. 사실 예전엔 지금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예전만큼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고요. 악기는 다 조금씩만 다뤄서요. 피아노도 조금, 기타 조금, 그렇게 조금조금이요(웃음).

이번 영화에서 가장 기억나는 신은 아무래도 노래하는 장면일까?
세 남녀의 구도와 심리가 잘 나온 신이 ‘봄 아가씨’ 부르는 장면 같아요. 무대에서 연희와 소율이가 함께 노래하는 신인데, 그때까지가 딱 행복했던 때였던 것 같아요. 소율과 연희의 모습이 다정하게 담겼고요. 그걸 바라보는 윤우의 얼굴도 잘 담겨서 좋은 것 같아요.

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마음에 들었던 신은 하나의 지문이었어요. 때때로 대사로 감정 표현을 하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무언가를 주는 신들이 마음에 들 때가 있어요. ‘도시락을 달그락 달그락 거리면서 걸어오는 소율’이었는데요. 정서적으로 쓸쓸함이 느껴지는 신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시끄러워서 빈 도시락통 소리가 잘 안 들리더라고요. 열차도 지나다니고 사람들도 시끄러워서 ‘뭔가 쓸쓸하지 않아. 뭔가 더 없을까?’ 하다가 윤우와 스탭을 밟았던 것을 그 때 한 번 더 썼어요. 그 신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영화가 있을까?
참고를 했다기 보다는 여배우들이 빛나는 영화를 찾아 봤어요. 원래부터 ‘라비앙 로즈‘를 좋아해요. ‘블랙스완’이나 ‘블루재스민’ 같은 영화도 봤고요. 그냥 봤어요. 그 여배우들의 에너지를 받고 싶었거든요.

유연석 씨나 천우희 씨나 이미 같은 작품을 했었기에 친분이 쌓였을텐데, 에피소드는 없었나? 천우희 씨 말로는 유연석 씨가 그렇게 잠을 많이 잤다던데?
유연석 오빠, 진짜 잘 자요. 신데렐라의 남자 버전 같아요. 밤만 되면 그렇게 잠 들어요. 우희는 잘 웃어요. 웃음을 잘 못 참아요. 한 번 터지면 수습을 못 해요. 얼굴까지 빨개지는 편이라 가라앉히는데 애를 먹더라고요.

천우희 씨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의 기분은 어땠나? 흔히 말하는 '여배우간의 경쟁 심리'는 없었나?
영화는 영화고 연기는 연기죠. 우희가 사실 동갑 친구예요. ‘뷰티 인사이드’ 때 처음 만났는데, 그 작품을 하고 있을 때 우희의 캐스팅 소식을 접해서 굉장히 좋았어요. ‘또 같이 하게 되는구나’ 했죠. 또 우희가 했던 ‘한공주’를 굉장히 강렬하게 봤기 때문에 배우로서 호감도가 높은 상태에서 같이 할 수 있어서 더 좋았죠.

또 원톱에 대한 욕심은 가질 필요가 없었죠. ‘해어화’는 연희라는 캐릭터가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저보다는 우희 씨가 더 빛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누군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영화에 잘 담기길 바랐고요. 실제로 영화 속에서 우희 씨가 매력적으로 나온 것 같아요. ‘역시 천우희 배우가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영화가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우희 씨의 연기로 커버가 된 것 같아요. 굳이 대사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설득력이 느껴졌거든요.

 

▶ 2편에서 계속

사진=하윤서 인턴기자 hays@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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